2017년 10월 26일. 이날은 인공지능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날로 기억될 것이다. 사우디아라비아 정부가 리야드에서 열린 국제투자회의 ‘미래 투자 이니셔티브(FII)’에서 인공지능 로봇 소피아에게 최초로 시민권을 부여했기 때문이다.

▲ 인터뷰하는 인공지능 소피아. 출처=픽사베이

사물에 영혼이 깃들 때

인공지능에게 인격을 부여하고, 존엄과 존중의 보장을 통한 존재의 이유를 명확하게 규정할 수 있을까. 소피아에 대한 시민권 부여는 이 모호한 질문에 대한 과격한 답안이다.

소피아는 미국 로봇 업체 핸슨 로보틱스(Hanson Robotics)가 제작한 인공지능 휴머노이드 로봇이다. 소피아는 여성의 외모와 목소리, 자연스러운 표정을 구현하는 것이 특징이다.

시민권 부여와 더불어 소피아의 과거 행적도 눈길을 끈다. 핸슨 로보틱스 최고경영자(CEO)인 데이비드 핸슨(David Hanson)은 지난해 3월 소피아 로봇과 인터뷰하며 “인간을 파괴하길 원하는가, 제발 ‘아니오’라고 말해”라고 말하자 소피아가 “나는 인간을 파괴할 것이다”고 답했기 때문이다. 물론 소피아는 자신의 과격한 행적을 농담으로 치부하는 여유도 보여줬다. FII에서 사회자 앤드루가 소피아의 과거 행적에 대해 우려하자 소피아는 “당신은 너무 많은 할리우드 영화를 봤다”면서 “당신이 나에게 친절하다면 나도 당신에게 친절할 것이다”고 답했다.

다만 농담이었다고 해도 ‘인류를 파괴하겠다’는 말을 했던 인공지능이 최초의 시민권을 받았다는 점은 묘한 시사점을 남긴다. 인공지능 포비아에 대한 진지한 고찰이 나오는 이유다.

사실 인공지능이라는 개념은 최근의 것이 아니다.

1943년 워렌 맥클록(Warren McCulloch)과 윌터 파츠(Walter Pitts)는 인공지능의 기원이 되는 인공신경망에 대한 최초의 연구성과를 발표한다. 마치 그물처럼 인공신경망을 연결해 사람의 두뇌와 같은 환경을 만들어주는 방식이다. 이후 1950년 소위 인공지능 검사법이라 불리는 튜링 테스트(Turing test)까지 등장한다. 튜링 테스트는 1950년 영국의 수학자이자 암호 해독가인 알랜 튜링(Alan Turing)이 발표한 ‘Computing Machinery and Intelligence’란 논문에서 처음 소개됐다. 기계가 인공지능을 갖추었는지를 판별하는 실험으로 지금까지도 널리 사용되고 있다. 이어 1956년 다트머스 칼리지에서 10명의 과학자가 모여 최초의 인공지능 학회를 연 후 인공지능 황금기는 1970년대까지 이어졌다.

▲ 튜링 테스트 장면. 출처=픽사베이

그러나 1970년대 중반부터 인공지능 기술력에 대한 회의가 제기되었고, 자연스럽게 연구성과도 축소되는 암흑기를 맞이하게 된다. 결정타는 역시 기술력 부족, 특히 데이터 확보의 어려움이었다. 당시 기술로는 인공지능의 필요충분조건인 데이터를 확보할 수 없었고, 확보해도 이를 정제해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또 다른 반전 모바일 시대, 초연결 시대가 도래하며 1970년대 중반부터 제기되던 인공지능 암흑기는 현재에 이르러 서서히 걷혀나가고 있다. 무엇보다 플랫폼 사업자를 중심으로 기술의 발전, 데이터의 확보와 활용이라는 삼박자가 절묘하게 맞아떨어진 대목이 주효했다.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구글과 애플, MS를 비롯해 부동의 강자 IBM의 로드맵도 새로운 전기를 맞았다.

이제 글로벌 ICT 기업들의 미래 슬로건은 ‘모바일 퍼스트(Mobile First)’가 아닌 ‘인공지능 퍼스트(AI First)’로 좁혀지고 있다.

그러나 인공지능의 발전과 더불어 일자리 축소와 같은 사회적 문제가 제기되며 최근 다시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물론 강(强) 인공지능과 약(弱) 인공지능의 구분이 필요한 대목이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인공지능의 추상적 개념은 거의 강 인공지능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현재 인공지능은 냉정히 말해 고속 계산기, 혹은 고속 포털 사이트의 역할에 국한되어 있는 것이 사실이다. 구글과 IBM, 애플, 페이스북 등 많은 ICT 기업이 인공지능 기술력에 집중한다고 해도 전체적인 기능을 보면 아직 인공지능은 대부분 ‘엄청나게 방대한 데이터를 빠르게 해결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

다만 약 인공지능의 초입에도 들어서지 못했다고 해도, 앞으로 도래할 기술의 발전속도를 고려하면 강 인공지능의 등장에 따른 인공지능의 인격화에 대비해야 한다는 말이 나온다. 문제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 해결을 위한 선제적 조치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나아가 관련 가이드라인도 필요하다는 주장이 지속적으로 나오고 있다.

단기관점으로는 약 인공지능까지 포함된 고속연산능력(High-Speed Operation Ability)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는 것이다. 기후문제를 예로 들면, 종전 인간의 두뇌와 슈퍼 컴퓨터가 방대한 데이터를 통해 도출할 수 없는 문제를 인공지능은 말 그대로 순식간에 해결할 수 있다. 인간의 연산능력과 비교할 수 없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 이는 자연스럽게 일자리 문제와 연결된다. 세계경제포럼(WEF) 보고서는 5년 후 인간의 일자리 약 710만개가 인공지능으로 대체될 것이라고 전망하기도 했다. 특히 제조 분야의 파괴적인 변화가 예상된다. 로봇의 발전과 더불어 다양한 관련 영역에서 인공지능이 인간의 일자리를 빼앗을 것이 확실시된다.

장기 관점으로는, 기술발전의 측면에서 강 인공지능의 등장에 대비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인공지능 소피아의 등장에서 ‘공포’를 읽어낼 수 있는 사람들이 나오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공포의 시작은 인공지능의 ‘능력’에서 촉발된다. 온라인 과학매체인 <피에이치와이에스>에 따르면 최근 미국 워싱턴대학 연구진은 아기처럼 학습하는 인공지능의 가능성을 발견하는 데 성공했다. 특정 현상에서 단순한 반복에 의한 학습이 아닌, 스스로 알아가는 인공지능에 대한 가능성이다. 나아가 실리콘밸리의 페녹스VC가 지난해 발표한 ‘8대 투자 관심 분야’에는 로봇의 형태를 가지고 있으나 인간과 교류할 수 있는 소셜로봇이 등장하기도 한다. 국내에서도 의미심장한 성과가 나왔다. 네이버의 클로바를 비롯해 통신 3사의 인공지능 스피커 등이 모습을 드러내는 가운데 SK텔레콤 T브레인이 개발한 디스코간(DiscoGAN)은 관련 알고리즘 논문 ‘Learning to Discover Cross-Domain Relations with Generative Adversarial Networks’를 통해 데이터 간의 연관관계를 발견, 자동으로 학습하는 탁월한 기술을 보여줬다.

인공지능 공포의 저변에는 ‘인간처럼 배울 수 있다’는 가능성이 도사리고 있는 셈이다.

자연스럽게 두 번째 공포는 인공지능 ‘능력의 발휘’로 좁혀진다. 페이스북의 마크 저커버그 CEO(최고경영자)와 테슬라의 엘론 머스크 CEO가 인공지능의 미래를 두고 설전을 벌인 장면이 주효하다.

둘은 SNS를 통해 인공지능 공포에 대한 다른 생각을 보여 눈길을 끌었다. 엘론 머스크는 트위터와 언론 인터뷰를 통해 인공지능을 두고 “선제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문제가 생기고 대응하는 것은 늦다”고 우려했고, 저커버그는 즉각 반박하고 나섰다. 그는 “인공지능에 반대하거나 종말론적 시나리오를 만드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다”면서 “그러한 생각은 너무 부정적이고 무책임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반박했다. 그러자 머스크가 재반박했다. 그는 저커버그의 말에 대해 “제한적인 생각”이라면서 “인공지능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트위터에 추가로 “인공지능은 북한보다 더 많은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는 글을 남기기도 했다.

재미있는 대목은 인공지능 회의론자인 엘론 머스크도 그 누구보다 인공지능 기술력 강화에 나서는 지점이다. 대표적인 인공지능 회의론자지만 역설적이게도 인공지능에 공격적인 투자를 아끼지 않는 인물이라는 뜻이다. 실제로 엘론 머스크의 테슬라는 자율주행차의 기술을 핵심으로 둔 상태에서 기간 에너지 인프라 사업까지 진격하며 그 중심에 인공지능 기술력을 최우선으로 개발하고 있다. 엘론 머스크는 ‘오픈 AI(인공지능)’를 설립해 인공지능 기술개발에 나서고 있고 올해 초에는 ‘뉴럴링크(Neuralink)’를 통해 전자두뇌 연구도 추진하고 있다. 뉴럴링크는 인간의 뇌에 초소형 칩을 심어 컴퓨터와 연결하는 기술을 집중적으로 개발하고 있다.

세계적인 물리학자이자인 스티븐 호킹도 대표적인 인공지능 회의론자다. 그는 올해 초 <비즈니스인사이더>와의 인터뷰에서 “인공지능이 급성장하며 사람의 힘으로 통제할 수 없는 시점이 다가오고 있다”고 경고했다. 이어 8월에는 <더타임즈> 인터뷰에서 “세계가 총괄정부를 만들어 인공지능의 대재앙을 막아야 한다”고 재차 주장했다.

빌 게이츠 MS 창업주는 다소 독특한 관점으로 접근한다. 그는 인공지능의 존재감을 인정하면서 제3의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논리를 내세우고 있다. 감정적으로는 인공지능의 역효과를 견제해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이를 현실로 인정하고 대안을 찾자는 취지다. 소위 로봇세 도입 주장이 대표적이다. 그는 <쿼츠>와의 인터뷰에서 로봇에 세금을 부과해 세수 부족을 충족하고, 이를 활용해 공동체의 균등한 발전을 주장하고 나섰다. 인공지능이 인류를 지배할 것이라는 전제까지 나아가지 않아도, 인간의 일자리를 빼앗는 인공지능의 존재감에는 충분한 우려감을 보였다는 평가다. 이에 래리 서머스 전 미국 재무장관이 “빌 게이츠의 의도에는 동의하지만 로봇세를 매길 확실한 논리적 근거가 없다”며 로봇세 논쟁은 한때 모든 ICT 기업들의 화두가 됐다.

또 유럽의회는 지난 1월 인공지능 로봇의 법적인 지위를 ‘전자인간’으로 규정하는 결의안을 통과시키며 로봇세 논쟁에 불을 당겼고, 이 논란은 지금도 현재 진행형이다.

물론 업계의 면면을 살펴보면 회의론자보다 예찬론자가 더 많은 것이 사실이다.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도 대표적인 인공지능 예찬론자다. 그는 지난 2월 MWC 2017 기조연설에서 “인공지능은 우리의 훌륭한 파트너”라고 단언했다. 슈퍼인텔리전스(Super Intelligence)를 강조하며 30년 후 IQ 1만의 슈퍼인텔리전스 컴퓨터가 등장해 싱귤래리티(특이점, Singularity)의 시대가 올 것이라 장담했다. 마윈 알리바바 회장도 인공지능이 새로운 기회를 열어줄 것이라는 주장을 거듭하고 있다.

이들은 인공지능 공포가 과대포장되어 있으며, 현재 우리는 약 인공지능의 초입에도 들어서지 못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옥스퍼드 대학교 인류미래연구소(Future of Humanity Institute)의 카티야 그레이스(Katja Grace) 연구진이 최근 세계 최고의 인공지능 석학들에게 “인공지능이 인류를 뛰어넘는 시기는 언제일까?”라는 질문을 던지자 “인류의 일자리가 완전히 인공지능에 넘어가는 시기가 20년 내 찾아올 것”라고 답한 사람은 10%에 불과했다는 결과가 나온 것이 의미심장한 이유다.

감정과 교류, 인간의 조건으로 오는 그들

앙드레 말로가 쓴 소설 <인간의 조건>은 1927년 상하이 쿠데타를 배경으로 한다. 처음에는 단순하게 묘사되는 혁명 이야기를 점점 비극의 경지로 끌고 와 고독과 죽음을 아우르는 감정의 경계로 독자를 안내한다. 앙드레 말로에 따르면 인간이 인간다운 인간이 되려면, 끊임없이 고뇌하고 방황해야 한다고 봤다. 인간은 불완전하기 때문에 길을 찾고, 시도하기 때문에 고뇌한다.

앙드레 말로의 인식에서 인공지능을 바라보면, 냉정히 말해 인공지능은 인간이 될 수 없다. 초인간, 즉 인간을 초월한 그 무언가로 인공지능이 규정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인공지능은 실수를 최소화하고 빠르게 해답을 찾아 나간다. 그 과정에서 감정을 가진다는 것 자체가 일종의 자기모순이 된다. 모든 것이 완벽하고 빈틈없는 존재가 인간의 방황 중 하나인 감정을 가진다면, 앞뒤가 맞지 않는 해석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인공지능 업계에서는 감정의 교류만을 전제로 둔 실험적 시도들이 여럿 등장하고 있다. 약 인공지능의 초입에도 들어오지 못했으나, 자신감이 붙은 빅데이터 기술력을 바탕으로 감정의 교류를 흉내, 일종의 인지적 오류를 불사하는 대체재를 구하고 있다는 뜻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소프트뱅크의 페퍼, 소니의 아이보 등 시작부터 인간과의 감정을 목표로 만들어진 로봇이다. 이들은 로봇이라는 기본적인 하드웨어 인프라를 포기하지 않은 상태에서 철저하게 감정을 중심으로 설계된 인공지능이다. 상업용 로봇 시장보다 개인용 로봇 시장의 크기는 상대적으로 크지 않지만, 인공지능과 로봇의 결합을 감정의 교류에서 찾으려는 시도는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물론 감정의 교류라는 전제조건을 활용하지 않아도 인공지능은 산업영역에서 충분히 활용되고 있다. 세분화된 인공지능 사용자 경험을 통합해 하나의 거대한 플랫폼으로 구축하는 것이 바로 스마트팩토리의 기본정신으로 볼 수 있다. 제조업의 개념을 ICT 영역으로 가져와 공장이라는 플랫폼을 일종의 거대한 컴퓨터로 구동하는 방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