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을 극적으로 다루는 영화는 많지만, 2013년 개봉한 영화 <그녀(Her)>만큼 많이 회자되는 것도 드물다. 스파이크 존스가 감독하고 호아킨 피닉스가 주연을 맡은 <그녀>는 다른 사람의 편지를 대필하는 대필 작가가 인공지능 운영체제와 사랑에 빠지는 내용을 담아내고 있다. 아날로그의 극치인 손편지라는 소재와 최첨단 인공지능의 감정이 수평을 이루며 현대사회의 고독과 만남의 의미를 제대로 보여줬다는 평가다.

<그녀>가 사람과 인공지능의 감정적 교류, 이에 따른 인간관계의 극적인 단절을 담담하게 담았다면, 2001년 개봉한 영화 <에이 아이(A.I. Artificial Intelligence)>는 다소 격정적인 문법으로 소년 인공지능 로봇 데이비드의 여정을 펼쳐보인다. 피노키오처럼 사람이 되고 싶었던 데이비드는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 긴 모험을 떠나고, 영화는 관객에게 끊임없이 사람과 인공지능의 차이가 무엇이냐고 되묻는다. 인류의 종말이 찾아오고 푸른요정이 나타났을 때, 마지막으로 남은 것은 데이비드였다.

우리는 지금 인공지능 레토릭의 시대에 살고 있다. 인공지능이 무엇인지에 대한 추상적인 관념은 가지고 있지만 기술의 속도와 화려한 미사어구에 넘어가 방황만 거듭하고 있다. 길을 잃어버린 양떼와 다름없다.

여기에서 조금은 색다른 질문을 던져야 한다. 관점을 달리 해야 한다. 우리 인류가 인공지능을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인공지능이 우리를 발견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그녀>처럼 인공지능 운영체제 사만다를 철저하게 타자화해 그 여파를 곱씹어보는 것도 좋지만, <에이 아이>처럼 평범하게 사랑받고 싶어 하는 어린 아이의 눈망울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지도 고민해야 한다. 방향은 인류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닌, 180도 다른 인공지능에서 시작될 수 있다.

인류는 항상 관찰하고 발견하는 만물의 영장이었지만, 이제 관찰당하고 발견당하는 상황에도 대비해야 한다. 이것이 인공지능 인격화를 이해하는 최고의 키워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