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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덕영의 오행으로 풀어본 난중일기] 눈물 머금고 軍 거두다丁巳일의 부산포 해전(3)
김덕영 사주학자  |  expert@econovill.com  |  승인 2017.11.12  19:11:09
   

“네, 맞습니다. 그렇게 사납게 공격하는 장군의 명령하에 모든 장병과 장수들은 혼연일체의 힘으로 싸우니, 적병은 견디지 못하여 토굴 속에 몸을 숨기고 머리를 내밀고 총과 화살을 쏘아 대고, 게가 구멍을 들랑거리듯이 속에 숨기를 반복하는 사이에 아군의 화살에 맞아 언덕에서 굴러 떨어지는 자도 있고, 땅에 엎어지는 자는 다른 군사가 끌고 토굴에 들어가고 하기를 여러 번 하는 사이 토굴 속은 피로 젖고 아군의 배도 피로 젖지 않은 배는 없었습니다.”

“음! 그렇게 종일을 상대한 전투에서 석양이 되자 부산 선창이 온통 불과 연기였고, 이따금 바람에 흩어지는 연기 속으로 뱃머리에서 장군은 손수 북을 울리고 깃발을 휘두르는 가운데 바닷물은 피에 젖어 붉은 무늬를 이루었다.”

“네, 부산성 안과 작은 성의 여러 곳에 진을 친 적은 점점 조총과 화살을 쏘는 것이 줄어들어 해가 서산에 걸린 때의 다섯 곳의 참호는 완전히 고요해지고, 부산성도 문을 굳게 닫고 아무런 대항이 없었습니다.”

“그러는 사이, 우부장 녹도 만호 정운장군은 적병이 진을 친 곳을 마지막으로 깨뜨리려고 홀로 배를 저어 적선이 수풀처럼 늘어선 틈을 뚫고 들어가며 분전하다 적의 탄환이 오른편 가슴 부분을 관통하여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배를 젓던 군사들이 놀라서 배젓기를 멈추자 정운장군은 왼손으로 가슴의 피를 움켜쥐고 일어나 칼을 휘두르며 피를 뿜는 입으로

‘어서 저어라! 어서 저어라!’

하고 싸움을 재촉하였다. 이때에 또 탄환 한 개가 정운장군의 왼편 가슴을 맞혀 등을 관통하니, 정운장군은 그만 갑판 위에 쓰러졌고 군사들이 정운장군을 안아 일으키려 할 때에 그는 벌써 숨이 멎었다. 정운장군은 이날 싸움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앞장을 서서 싸우고 그의 손으로 깨뜨린 적선만 해도 30여 척이나 되었으며 장수들 중 제일 큰 공을 세우고 종사를 위하여 전사하였다.”

“네, 통탄할 일입니다. 정운장군의 배가 홀로 적의 진중으로 깊이 들어가는 것을 본 장군은 귀선돌격장 이언량을 시켜 그를 구하려 하였으나 거북선이 도착하기 전에 이미 정운장군은 전사하였고, 정운장군의 배에 탔던 녹도 군사들도 개미떼같이 달려드는 적병과 단병전을 벌였지만 3, 4명을 남기고 모두 다 전사하여버렸다. 이런량은 좌우로 모여 있는 적선을 거북선으로 좌충우돌하며 마구 부숴버리고 정운장군의 배를 끌고 나왔습니다.”

“원통하게 정운장군의 시신을 실은 배가 장군의 배 곁에 다다랐을 때는 아군과 적군의 진영은 사실상 휴전상태가 되었다. 태양은 이미 서산으로 넘어가고 싸움에 지친 아군의 함대에 자주색 노을이 벌겋게 비추었다.”

“네, 적진에서 아군의 큰 장수가 종일토록 가장 무섭게 전투하였지만, 전사한 것을 알고 황혼이 가까워 오는 것을 본 적군은 아군의 화살과 돌이 미치지 아니할 만한 곳에 수천 명의 장졸이 말을 타고 칼을 번쩍거리며 시위하듯 도전하였지만 그것은 아군을 육지로 끌어올리려는 계교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전투에서 전략이란 계교를 말함인데, 아군진지에서 곧 상륙이라도 해서 적과 최후의 결전할 것을 주장하는 소장 군인도 많았으나 장군은 육지에서 싸운다 하던 김수의 군대는 해가 다 지도록 오지 않았고, 또 말도 없고, 장검도 부족하고 임진왜란이 발발한 이래로 육전에 경험도 없는 수군을 데리고 오랜 동안 준비한 적의 소굴 속에 낮이 아닌 달도 없는 초하루 밤에 상륙하는 것은 백번 싸워 백번 지는 것을 알고도 싸운다는 것은 모험적 행동이라고 말하며 자제를 시켰다.”

“네, 무리함은 부족한 것만 같지 않습니다. 각지에 흩어져 있던 적병들이 모여들어 부산진 성내에 있는 관청 건물을 헐어다가 성 동문 밖에 100여 호나 되는 소굴을 지었고, 또 동쪽과 서쪽의 산기슭에도 적병들의 가옥이 즐비하여 300여 호나 되었고, 그 중에 2층집도 있고 벽을 칠하고 담장을 조각한 절과 같은 큰 집들이 많은 것을 본 장군은 이런 소굴을 단번에 무찌르지 못하는 것을 한스럽게 생각하였으나 육상에서 협공해 줄 아군이 없는 상태에서 피폐한 군사를 데리고 다시 전투를 한다는 것은 섶을 지고 불속에 뛰어드는 것과 같다는 생각을 한 장군은 정운장군과 모두를 위하여 눈물을 머금고 쇠를 울려 군을 거두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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