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균이 역모를 꾸몄다지만 실제로 역모를 꾸몄는지에 대한 확실한 증거는 없다. 다만 그가 역모 이상의 혁명, 즉 조선이라는 국가를 병들게 만들던 신분제도를 없앰으로써 능력만 있으면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행복한 세상을 만들겠다는 꿈을 실현시키려 했다는 것은 그가 스스로 자신을 고발한 것으로 볼 수 있는 남대문 벽서 사건에서 알 수 있다.

남대문 벽서사건은 광해임금 10년(1618) 8월 10일, 허균의 심복이던 현응민이 남대문에 “포악한 임금을 치러 하남 대장군인 정00이 온다.”는 내용의 벽서를 붙인 것이다. 정말로 허균이 역모를 주도하는 중이었다면 도저히 납득이 가지 않는 일이다.

그 당시는 이이첨 등이 허균을 제거하기 위해서 온갖 음모를 상소하고, 1617년 인목왕후 폐위에 적극적으로 나섰던 허균 등에 맞서다가 유배를 간 기자헌의 아들 기준격이 허균이 역모를 꾸미고 있다는 상소를 무려 9개월에 걸쳐서 끊임없이 올리던 시절이었다. 정말 역모를 할 것이면 가담한 자들끼리 약속한 날 한 밤중에 궁궐을 습격하는 것이 반정의 기본인데 허균은 ‘나는 역모를 하고 있다’고 광고를 한 셈이다. 그리고 그 주체는 정00장군이고 자신은 전달자라는 것이다. 이것은 조선시대 깊숙이 박혀 있던 정도령 사건을 연상케 하는 것으로 허균 자신의 역모가 아니라 이 세상을 바꿀 사람을 기다린다는 의미였다. 그리고 그 정00은 광해임금을 지칭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물론 정감록으로 정리된 정도령의 의미와는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그 당시 민간에서 애타게 기다리던, 행복한 세상을 만들어 줄 정도령을 지칭했다는 것은 역모가 아니라 백성들이 도탄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사회를 뒤집을 혁명이라는 것을 피력한 것이다.

이렇게 유추할 수 있는 근거는 바로 왕조실록의 기록이다. 광해임금이 허균의 역모사건에 대응했던 애매모호한 태도 때문이다.

허균이 역모를 꾸민다는 상소가 1617년 말부터 시작되어 1618년에도 계속 이어졌지만 광해임금은 상소를 무시하고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는다. 광해임금이 허균을 엄청나게 신뢰하고 중용 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역모에 대한 상소를 9개월이 넘도록 방치했다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다. 그리고 1618년 8월 10일 벽서사건 때도 허균을 곧바로 잡아들이지 않는다. 공공연하게 혁명을 할 것이라고 밝혔음에도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다가, 허균 자신의 문집을 모두 딸의 집에 옮겨 놓고 추석명절을 지내고 난 후인 8월 16일에야 허균을 잡아들이게 한다. 그리고 역모에 대한 국문을 불과 1주일 만에 끝내고 8월 24일에 능지처참을 집행한다. 역모에 대한 국문은 그 배후를 밝히고 관계자들을 색출하기 위해서 참혹하면서도 끝을 보는 것인데 의외로 빨리, 그리고 쉽게 사형을 집행한 것이다. 게다가 더더욱 의심이 가는 부분은 허균의 사위와 조카들이 관련자로 지목되어 국문을 받았으나, 평소에 허균과 친하게 지내지 않았다는 이유로 모두 방면되었다는 사실이다.

역모는 3대를 멸해서 반역의 싹을 자르는 것이다. 그런데 허균의 경우에는 아주 특이하게 처리되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허균은 광해임금의 묵계나 혹은 직접적인 지시에 의해 조선의 근본을 바꾸기 위해서 혁명을 준비했던 것이고, 그것이 혁명이라고는 생각도 못하던 당시의 양반 나부랭이들에게는 역모로 보였을 것이라는 추측을 낳게 하는 것이다.

비단 유추에 의한 해석이 아니더라도 광해임금이 백성들을 사랑했던 모습은 여러 군데에서 찾아볼 수 있다. 대표적인 예를 들자면 대동법의 실시로 인해서 백성들이 세금의 잔혹한 부담을 벗어나는 방법을 제시한 것이라든가, 명나라가 후금과의 전투에 파병할 것을 요청하자 파병은 하되, 장군 강홍립에게 싸우는 척만 하라는 밀명을 내려서 우리 군사들이 화살촉을 뺀 화살을 쏘다가 명나라의 모문룡이 전투에서 패하자 강홍립은 재빨리 항복하고 싸울 의사가 없었다는 것을 전함으로써 화를 모면하게 하는 등, 명나라에 대한 사대로부터 독립하고 파병된 백성들의 목숨을 아끼기 위해서 극진하게 노력했던 왕이다. 그런 광해임금이기에 명나라에 대한 사대가 뼛속까지 젖어있던 서인들은, 그렇지 않아도 대북에게 권력을 빼앗기고 있던 터인지라, 목에 걸린 가시 같았고 결국은 인조반정으로 이어졌던 것이다.

입만 열면 나라와 종묘사직을 위해서라던 양반․사대부들이 아니라 진심으로 백성을 사랑하는 정치인과, 백성을 위해서라면 용상을 버려도 좋다는 각오로 혁명을 꿈꾸던 진짜 왕 광해임금 같은 최고 권력자가, 지금 이 시대에 존재하는지 광해임금을 만나면 여쭤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