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협이 지난 1일 ‘농업가치 헌법 반영 1000만 서명운동’을 시작해 그 이유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농협중앙회 측은 “농업은 농축산물 생산 기능 이외에도 식량 안보, 농촌 경관 보전, 지역 사회 유지 등의 공적 책임을 갖고 있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농협이 지자체 급식ㆍ조달 등 핵심 사업에 위협을 받으면서 영역 지키기를 위한 개헌 운동에 나선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농민 운동가들은 “이제부터라도 농협이 농민을 위한 조합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일침을 가했다.

▲ 1일 '농업가치 헌법 반영 1000만 서명운동'을 발표하는 농협 중앙회 임원들(제공=농협중앙회)

농협은 1일 서울 중앙회 대강당에서 ‘농업가치 헌법 반영 1000만 서명 운동’을 선포하고 500여명의 임직원이 결의대회를 열었다. 농협은 내년 지방선거와 연동될 개헌에 대비해 소비자단체ㆍ학계 등과 함께 서명운동을 시작했다.

김병원 농협 중앙회장은 “농업은 생산 이외에도 식량 안보, 지역 사회 보존, 수자원 확보와 홍수 방지 등의 기능을 갖고 있다”고 주장했다. 농협은 내년 지방선거가 치러지는 6월까지 1000만명의 서명을 받기 위해 ‘사력’(死力)을 다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농협이 주도하는 개헌 운동에 대한 농업 전문가들의 시각은 조금씩 갈린다. 한 농대 교수는 “농업ㆍ농촌의 구조조정이 필요한 이 시점에 농촌의 ‘다원적 가치’를 빙자해 서명을 주도하는 것은 자기 나름의 영역 보호 일환 아니겠냐”고 꼬집었다. 이 교수는 “쌀 생산 조정제와 직불금 등 각종 정책들이 ‘백약이 무효’라는 말이 나오는 시점”이라면서  “농업인의 가치를 모든 법의 상위법인 헌법으로 규정하면 어떤 개혁도 발이 묶일 것”이라고 일침을 가했다.

김광남 경상남도 6차산업지원센터 전문위원은 “농협이 지금부터라도 ‘농촌 살리기’에 앞장선다면 유의미한 개헌 운동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김 위원은 “농협이 최근 들어 사회적 경제나 마을 재생 등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으로 안다”면서  “오랫동안 조합원의 자금으로 쌓아 올린 잉여 자본을 조금씩 소셜 벤처 등에 투자한다면 헌법의 농업 가치 반영도 어느 정도 이해가 된다”고 지적했다.

농촌재생 전문가인 김영민 제주폐가살리기협동조합 대표도 “농협이 더 이상 말로만 농촌 살리기를 할 것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농촌 살리기에 도움 되는 사업에 자본 투자를 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김 대표는 “농협은 50~60대 이상이 중심을 차지한 전형적인 기성 조직”이라며 “산업계 통틀어서 가장 수준 있는 엘리트들이 더 이상 ‘보호의 대상’으로서 자처하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고 주장했다.

한국농어촌빅텐트 총괄간사인 조용환 실장은 “농협이 이번에 개헌까지 적극 나서게 된 이유는 국가계약법 상 우대규정 일몰로 급식ㆍ조달 과정에서 특혜를 받을 수 없었던 측면도 있다고 본다”고 주장했다. 조 실장은 “각 지역 농협 별로 경제 사업을 줄이고 신용 사업에만 의존하고 있는 상황에서 농업ㆍ농촌을 보호하겠다고 외치는 것은 비판받기 쉽다”며 “농촌은 보호의 대상이지만 농협은 변화를 직접 기획해야 할 주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