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사동 가로수길 뒷골목에 얽힌 소문을 들어봤는지. 올해 9월부터인가. 자꾸 비명소리가 들려온다고 한다. 다급한 외침과 뒤범벅된 채로. 대부분 흉흉한 소문엔 과장이 있는 법. 비밀을 캐내려 근원지엘 갔다.

미세하게 들려오는 소리에 의존해 한 장소에 다다랐다. VR존 시네마(VR ZONE CINEMA). 여기가 확실하다. 오싹한 마음을 억누르고 문을 두드렸다. 용도를 알 수 없는 제법 넓은 공간. 캄캄함 속에 단정한 풍경이다.

강한 척 물었다. 뭐하는 곳이냐고. 관계자로 보이는 사람이 부드럽게 응했다. “시네마 VR(가상현실) 체험 공간이에요. 올해 9월 23일에 오픈했습니다.” 한 줌의 의심이 가시지 않았다. 그가 갑자기 좁고 어두운 방으로 날 데려갔다.

▲ 사진=노연주 기자

 

공포영화 주인공이 되는 경험

“VR 체험해본 적 있어요? 시네마 VR은 달라요. 단순 체험이나 관찰 위주 VR 콘텐츠와는. 당신이 영화 같은 스토리에 등장하는 주인공입니다. 몰입도가 차원이 다르죠. 지금 체험할 콘텐츠는 ‘헌티드(Hunted)’. 공포 체험이죠.”

그 남잔 영상 하나를 틀어주고 사라졌다. 스크린에 나오는 애니메이션 내용이 꽤나 심각하다. 이야기에 빠져든다. 병원 원장이 죽은 딸을 살리려고 악마와 거래한다. 조건이 살벌하다. 병원 환자를 제물로 바쳐야 딸이 산다.

탐정 잭이 냄새를 맡고 수사를 시작한다. 겁도 없이 그 병원엘 갔다. 갑자기 의식을 잃는다. 눈을 뜨니 기괴한 방에 놓인 원탁에 낯선 이들과 둘러앉아 있다. 몸이 묶여 도망칠 수도 없다. 악마가 나타난다. 제물을 고른다.

▲ 사진=노연주 기자

사라진 그 남자가 다시 왔다. 옆문을 열더니 들어오라고 손짓했다. 믿기 어려운 풍경이다. 방금 영상에 나오던 모습 아닌가. 붉고 어두운 조명이 밝힌 자욱한 연기 사이로 원탁과 의자가 자리한다.

심령사진이라도 찍힐 듯한 분위기다. 같이 온 사람들과 의자에 앉아 VR 헤드셋을 착용했다. 그 순간 난 ‘탐정 잭’이 됐다. 꼼짝없이 제물로 바쳐질 운명인가. 소름끼친다. 살아나갈 방법이 있긴 할까.

옆에 다가온 악마를 정면으로 응시해야 한다. 그래야 산다. 악마의 모습은 너무나도 끔찍하다. 악몽을 꾸고 있는 느낌이랄까. 생존하려면 둘러앉은 사람끼리 힘을 모아 서로에게 악마의 위치를 일러줘야 한다. 비명소리와 다급한 외침이 공존하는 현장.

 

현실과 가상을 잇는 스토리의 힘

악마의 제물로 죽을 운명은 아니었나 보다. 체험이 끝났다. 평소 공포영화로 단련한 몸인데 자꾸 실눈을 뜨게 되더라. 돋아난 닭살을 감추기도 전에 다시 직원이 나타나 옆방으로 데려갔다. 에피소드2의 시작이다.

이야기가 이야기로 이어진다. 역시 영상 시청이 우선이다. 이번엔 악마사냥 특수부대가 병원엘 간다. 병원 사람들은 이미 좀비로 변했다. 죽지 않으려면 무찔러야지 어쩌겠나. 영상이 끝나고 옆방에 들어가니 이번엔 총을 쥐어준다. VR 헤드셋도 착용했으니 가상세계 진입 완료.

▲ 사진=노연주 기자
▲ 사진=노연주 기자

정신 똑바로 차려야 한다. 사방에서 좀비가 달려든다. 심장이 쫄깃해진다. 총에서 진동이 느껴지니 사실감이 더하다. 에피소드1이 잔잔하게 엄습해오는 공포감을 선사했다면 에피소드2는 오락성 짙은 액션 영화 주인공이 된 기분이다.

가상과 현실 사이 벽이 기술과 스토리텔링 앞에서 무너진 현장이다. 결과는 전에 없던 깊은 공포감이다. 헌티드 에피소드3는 11월에 열리는 게임박람회 지스타 2017에서 최초 공개한다. 가로수길 뒷골목 비명소리는 한동안 끊이지 않을 듯하다.

 

#그곳에서 만난 사람

“가상세계로 좀 더 깊이 들어가는 방법 고민”

VR존 시네마는 VR 전문기업 예쉬컴퍼니가 운영한다. 그곳에서 남영시 예쉬컴퍼니 부사장을 만났다.

▲ 출처=예쉬컴퍼니

#스마트폰 이후 비즈니스 ‘스마트폰 다음을 뭘까?’를 고민했어요. 답을 찾으려고 사물인터넷(IoT)부터 공부하기 시작하다가 VR을 접했죠.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VR이 단순 게임이 아니라 현실을 뛰어넘는 가치를 전하는 일상생활의 한 부분이 되지 않을까.’

2016년 1월 회사를 설립했습니다. 그해 5월 자체 제작 VR 콘텐츠와 시뮬레이터를 들고 C페스티벌(C-Festival)에 참여했어요. 결과는? 엄청났습니다. 사람들이 1시간씩 대기하며 우리 VR을 체험하고 만족하며 돌아갔어요. 여기서 비즈니스 가능성을 봤습니다.

#집 근처 작은 VR 극장 VR존 시네마는 연령 상관없이 누구든 올 수 있어요. 집 근처에 작은 극장 하나가 생긴다고 이해하면 됩니다. 주요 타깃은 콘텐츠에 따라 달라집니다. 어린이부터 성인까지 우리 타깃이죠. 대표 콘텐츠 헌티드는 유령과 좀비가 나와 12세 이상부터 이용 가능합니다.

#주인공으로서 개입하기 올해 초부터 많은 고민을 했어요. 좀 더 가상 세계로 깊이 들어갈 순 없을까? 단순하게 보여주는 방식이 아니라 유저가 가상현실과 소통할 부분이 있지 않을까? 고민 끝에 VR존 시네마를 만들었어요.

1시간 분량 스토리 영상을 영화처럼 보다가 가장 중요한 장면에서 직접 주인공이 되는 형태죠. 단순히 보여주는 방식이 아닌 내가 가상현실 한 부분이 되는 겁니다. 진정한 의미의 가상현실에 다가갔다고 볼 수 있겠죠.

#종합 VR 기업 꿈꾸다 IP(지식재산권)를 이용한 콘텐츠도 제작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또 라이프스타일에 적용되는 VR 콘텐츠도 준비 중이고요. VR 쇼핑 같은 콘텐츠 말이죠. 우리 회사는 올해 초 45억원 규모 투자 유치에 성공했습니다. 동종업계에서 흔치 않은 규모입니다. 이를 바탕으로 종합 VR 기업으로 성장할 겁니다. 2019년 기업공개가 목표입니다.

 

#나의 기술×문화공간 답사기

①VR존 시네마_악마는 가로수길 뒷골목에 산다

②트릭아이 뮤지엄_트릭아트가 철 지난 유행이라고?!

③DJI아레나_드론 타고 증강현실 탐험하기

④스트라이크존_가을야구는 끝나지 않았다

⑤몬스터VR_놀이공원 뺨치는 VR테마파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