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미남 박사(57)는 이색 경력의 소유자다. 국내 최초로 연료전지 개발에 도전해 성공한 두산퓨얼셀의 전 대표다. 그는 또 국내 30대 기업 최초의 여성 전문 경영인이었다. 미남이라는 남자 이름을 가졌지만 여성이다. 남성의 전유물인 여러 영역에서 당당하게 성공을 거둔 그는 수많은 역경을 이겨내고 최상의 고지에 오른 백전노장다운  카리스마가 물씬 풍기는 인물이다.

그는 한양대학교를 졸업하고 미국 노스웨스턴대에서 재료공학 박사 학위를 취득한 뒤 1998년부터 삼성종합기술원 전문연구원으로 일하다가 경영 분야로 옮겨갔다. 이어 세계적인 컨설팅회사인 맥킨지앤드컴퍼니에도 몸담았다. 신 박사는 2001년 연료전지 회사 퓨얼셀파워를 설립해 장장 14년간 경영자로 일했다. 이 회사가 2014년 두산에 합병되면서 30대 그룹에서 유일한 여성 전문 경영인으로 변신했다. 산학연을 두루 거친 그였기에 할 말이 많았다. 그렇기에 4차 산업혁명 시대의 변화와 일자리 이동에 대한 책을 쓰다가 과감히 방향을 틀어 속에 든 생각을 <여자의 미래>로 묶어냈다.  최근 서울 시내 한 호텔 커피숍에서 <이코노믹리뷰>와 인터뷰한 신 박사는 "일터에선 전문가만 있을 뿐이며 여성은 일과 가정 둘 다를 선택해도 성공할 수 있다"고 말문을 텄다. 그의 철학과 여성론을 자세하게 들어봤다. 

일과 가정 둘 다 선택할 수 있다

그는 일하는 어머니로  30여년을 살았다. 그는 “함께 일했거나 내가 멘토링한 많은 여성들이 일터를 떠나는 모습을 수도 없이 봤다. 한 분야의 전문가이자 조직의 리더로서 성공할 능력이 충분한데도 그 사실을 미처 깨닫지 못하고 포기하는 게 몹시 안타까웠다”고 사표를 던지는 많은 유능한 여성에 대한 아쉬움을 표시했다. 자기 인생이 아닌 타인의 기대에 삶을 맞추는 선택을 잘 생각해보라는 의미였다.

물론 그는 여성이 일하면서 겪는 어려움을 냉정하게 꼬집었다. 여성이 넘어야 할 산은 세 가지라고 그는 잘라 말했다. 첫 번째는 여자이자 엄마이기 때문에 넘어야 하는 ‘출산과 육아’라는 산이고, 둘째로 사회가 만들어낸 ‘편견’ 도 극복해야 할 산이며, 세 번째 산은 여성 스스로가 갖는 ‘심리적 장벽’이라고 했다. 그는 "스스로 여자의 역할에 한계를 정해두고 그것을 뛰어넘지 못한다”고 질타했다. 여성 스스로 정한 한계는 돌부리에 불과할 만큼 작을 수도 있다고 역설했다. 

▲ 신미남 박사. 출처=이코노믹리뷰 박재성 기자

그는 여성들에게 “일과 가정 중에서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는 전제를 바꿔볼 것”을 제안했다. 그 역시 작은 아이가 초등학생 시절, 학교에서 거의 말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을 때 큰 상처를 받았다고 했다.  엄마로서 아이에게 전념하기 위해 일을 그만둬야 하느냐는 고민도 깊이 했다.

신 박사는 “두 아들이 성장했을 때 ‘너희가 어릴 때 정말 어려웠지만, 그래도 엄마가 계속 일할 수 있게 잘 자라주어 고맙다’고 말하는 엄마가 되고 싶었다. 그래서 계속 일을 하기로 선택했고, 내가 감당해야 할 수많은 결과가 뒤따랐지만, 그때마다 고민하고 해결책을 찾아냈다”고 소개했다. 그가 일을 그만두지 않는다는 것, 즉 '육아도 일도 둘 다 해야 한다'는 새로운 전제를 제시하자 답은 가능한 방법을 찾는 쪽으로 옮겨갔던 것이다.

신 박사는 직장인이 근무하는 행태도 점점 달라지고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과거 일하는 엄마가 아침에 출근하기 위해서는 아이를 떼어놓기 위한 힘든 시간을 보내야 했다. 그러나 클라우드 컴퓨팅 기술이 발전하면서 반드시 정해진 시간에 회사에 출근하지 않고도 일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신 박사는 “2025년에는 프리랜서가 전체 고용의 70%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도 있으며,  재택근무 방식이 조금 더 보편화될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이러한 정보기술(IT)의 변화를 적극로 받아들여 그것을 이용해 자기의 전문성을 키울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4차 산업혁명, 여성에 더 유리하다

신 박사는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일자리는 여성에게 더욱 유리하다는 다소 색다른 주장을 폈다. 제조업 중심의 과거 일자리는 인간의 육체 노동력이 중요한 ‘하드웨어 역량’에 의존했다면 이제는 ‘창조적 소프트웨어 역량’이 중요한 시대가 됐다고 그는 설명했다.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에 참여하면서 이러한 생각을 더욱 굳혔다. 여성의 특성이 유리하게 작용하는 부분을 창의성, 공감력, 소통력, 윤리성, 유연성, 적용력 6가지로 꼽았다.

그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정보와 지식, 아이디어를 모아 만든 새로운 생각·기술·제품의 혁신이 경제 성장을 창출한다. 여기에는 혁신을 이끌어내는 능력, 즉 창의성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신 박사는 또 다른 사람의 감정을 이해하는 공감력은 여성이 남성보다 높다는 연구 결과가 이미 많으며, 이 능력은 소통과 협업이 중시되는 업무 환경에서 매우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미래에는 생각을 공유하고 발전시키는 네트워크적 사고방식이 필요한데, 여기에는 소통하는 능력이 빠질 수 없다고 그는 덧붙였다.

그는 또 "윤리성은 원칙을 우선하는 자세로, 여성이 남성보다 더 투명하고 윤리적이라는 명백한 근거는 없다. 그렇지만 여성이 더 꼼꼼하고 세심한 편이다. 또 조직은 실패를 용인하는 자세를, 개인은 실패를 받아들이는 유연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면서 "마지막으로 적용력은 IT 기술을 이해하고 활용하는 능력으로, 직장이라면 필히 갖추어야 할 역량”이라고 강조했다.

물론 이런 능력들이 반드시 여성에게 한정된 것만은 아니다. 여성이 기본적으로 이 역량들을 조금 더 가지고 있고, 따라서 비교적 쉽게 성취할 수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그렇기에 그는 “여성들은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더 넓은 시각으로 바라보고 편안하게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일터에는 남성도 여성도 아닌 오직 전문가만 있을뿐

신 박사는 경영자였을 때  신입사원 오리엔테이션 자리에서 늘 한 질문이 있었다.  신입사원들에게 “회사에서 남성 직원을 좋아하겠습니까? 여성 직원을 좋아하겠습니까?”라고 물으면  대부분  ‘남성 직원’이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그가 했고 지금도 하는 답은 “남성도 여성도 아니다. 회사는 일 잘하는 직원을 가장 좋아한다”이다.

▲ 신미남 박사. 출처=이코노믹리뷰 박재성 기자

이는 회사에서는 성과를 내는 게 가장 중요하고 성과를 내는 데는 남녀가 따로 있을 수 없다는 그의 철학의 결과물이다. 신 박사는 “내가 일하기 시작한 30년 전에는 여성이 아이를 키우면서 일하기가 더 어려운 환경이었다. 그러나 나는 일과 함께 육아도 선택했기 때문에, 한정된 시간 안에서 더욱 높은 성과를 내기 위해 노력했다”고 회고했다.

이런 성과지향은 그가 학생일 때 터득한 지혜의 결정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신 박사는 미국 노스웨스턴대학교에서 박사 과정을 밟을 때, 일터에서는 여성이라는 생각을 지우기로 결심했고 이를 실천했다고 한다.  그는 “직장이라는 공간에서는 남성도 여성도 아닌 오직 전문가만이 존재한다. 여성 직원은 자기가 여성이라는 사실보다 전문가임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라고 역설했다. 

그는 아울러 모든 일하는 여성에게 연대의 힘을 강조했다. 그는 "여성에게 차별 없는 근무 환경, 나아가 평등한 세상을 만들기 위한 책임은 여성 모두가 나눠 가진다. 한 명의 여성은 모든 여성을 대표한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일했으면 한다. 비록 지금은 일하기가 힘들지라도, 앞으로의 여성 후배들이 더 좋은 환경에서 일할 수 있도록 기여한다고 생각했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신 박사는 한 달 전 두산 퓨얼셀의 대표 자리에서 내려왔다. 직함도 내던졌다. 그는 “회사에 이노베이션을 주기 위해서”라고 이유를 말했다. 신 박사는 “자기가 떠나야 할 시기를 알고, 그것을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 리더의 덕목”이라며 안식년을 즐기고 있다고 담담히 말했다. 그는 “지금 이 시기는 결코 경력단절이라고 말할 수 없으며 인생의 절반을 남겨두고 앞으로 30년간 몰두할 새로운 분야를 찾고 있다”고 말했다. 여성가족부의 청년여성 멘토링 사업의 대표 멘토와 아름다운재단의 이사를 맡으며 벌이는 활동도 탐색과 모색의 과정이다. 그에겐 끝이 없어 보였다. 오직 '새로운 시작'만 있는 것 같았다. 그것이 세상의 절반을 책임지고 있는 여자의 미래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