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지난 2008년 조준웅 삼성 특검이 발견한  4조4000억원대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차명계좌 1199개에 대한 세금 부과 여부를 놓고 검토에 들어갔다. 

30일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이 회장 차명계좌가 과세대상이라고 보는 입장을 밝혔고, 한승희 국세청장은 관계당국이 긴밀히 협의해 적법하게 처리하겠다며 과세 가능성을 높였다.

이 회장의 차명계좌 재산에 적용될 수 있는 과세 방법은 크게 두 가지다.

정부가 검토 중인 과세 방안은 90%의 소득세 차등과세와 50% 과징금 징수다. 금융실명제법 제5조에 따르면 금융실명제 실시 이후의 비실명자산에 대해 계좌 개설일 이후 발생한 이자 및 배당소득에 대해 90%의 세율로 소득세를 과세한다.  

금융실명법 부칙 제6조 및 제7조는 금융실명제 실시 이전의 비실명자산에 대해 이자 및 배당소득에 대한 90%의 소득세 차등과세는 물론 추가로 금융실명제 실시일 당시 가액의 50%를 과징금으로 징수하도록 하고 있다.

따라서 이 회장의 차명계좌 1199개의 개설 시점과 이후 발생한 이자 및 배당소득의 규모에 따라 적용되는 과세율과 과징금 징수여부, 전체 세금 규모가 결정된다. 금융실명제법 시행 이전과 이후 모두 ‘비실명자산’인 경우 90%의 과세율이 적용되고, 금융실명제법 시행 이전에 개설된 차명계좌의 경우 50%의 과징금이 추가로 징수될 수 있는 것이다.

90% 과세율, ‘비실명자산’ 해석 여부가 관건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박찬대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30일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제출받은 1021개 계좌에 대한 연도별∙금융회사별 제재 내역을 단독 입수해 공개했다.

박 의원에 따르면, 금융실명제 상의 실명확인 의무를 위반해 금감원으로부터 제재를 받은 계좌는 총 10개 금융회사에 걸친 1021개 계좌에 달했다. 이들 계좌 중 20개 계좌는 금융실명제 실시 이전에 개설됐으며 나머지 1001개 계좌는 모두 금융실명제 실시 이후 개설된 차명계좌였다. 이 때 금융실명제 이전 개설된 20개 계좌는 과징금 대상이고, 이후 만들어진 1001개를 포함한 1021개는 금융실명제법에 따른 90%의 소득세 차등과세 대상이 될 수 있다.

 
▲ 박찬대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30일 공개한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차명계좌 리스트. 금융기관별 분포를 보면 은행 계좌가 64개, 증권계좌가 957개였다. 출처=박찬대 의원실

실명자산 유권해석시 금융실명제법 위반 피할 수도

관건은 금융 당국의 ‘비실명자산’ 유권해석 여부다. 금융당국은 차명계좌에 든 자산을 실명자산으로 간주해왔다. 차명계좌는 실소유주가 아닌 다른 사람의 실명의 명의로 만들어진 계좌를 의미하는데, 가상인물에 의한 것이 아닌 실제 인물이 만든 형식상의 실명계좌이기 때문에 그 안에 자산 역시 실명자산이라는 것이다. 그동안 금융위는 차명계좌는 모두 실명계좌라는 취지로 유권해석을 내려온 것으로 알려졌다.

박찬대 의원은 이들 1021개 계좌가 금감원으로부터 금융실명제 위반으로 제재조치의 대상이 된 이유는 ‘실명확인의무 위반’이라며 “실명 확인이 되지 않은 거래는 차명 여부를 따지기 이전에 실명 확인 자체가 되지 않은 비실명 계좌”라고 지적했다.

이에 금융위는 “금융당국은 금융실명법 제5조와 관련해 사후에 객관적 증거에 의해 확인된 차명계좌는 차등과세 대상이라는 원칙을 유지해왔다”고 반박했다. 2008년 금융실명제 종합편람에 ‘타인명의로 신규예치된 사실이 사후 확인된 차명계좌는 차등과세 대상’이라는 유권해석을 기재하는 등 동일한 취지의 다수 유권해석이 있다는 주장이다.

이 회장의 차명계좌 건과 관련한 금융당국의 유권해석이 ‘비실명자산’으로 결론내려질 경우, 계좌 개설일과는 관계없이 이 회장의 계좌 1021개는 모두 90%의 소득세 차등과세 대상이 될 수 있다. 최 위원장은 이날 금융당국 종합감사에서 “차등과세 대상이 되는 차명계좌를 보다 명확하게 유권해석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소득세 과세 규모는 얼마나 될까?

금융실명법 상의 비밀보장 조항 때문에 이 회장이 차명계좌에 있던 예금과 배당을 찾아간 2008~2009년 당시 있던 잔액의 구체적인 내역을 알 수 없다. 다만 비실명자산 인정 시 90%의 고율을 부과받을 수 있고, 금융실명제법 이전에 개설된 계좌 20개에 대해서는 50%의 추과 과징금 징수도 가능한 만큼 과세 규모는 1000억원대에서 수천억원대까지 높아질 수 있다. 과세를 위해 그동안 예금 이자와 배당 등에 따른 수익이 먼저 파악돼야 하는데 아직까지 차명계좌는 발견했지만 이를 통한 소득규모는 밝혀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소득세법 129조는 실명계좌에서 발생한 이자와 배당소득에 대해 38%의 단일 세율을 부과하고 있는데, 비실명자산의 경우 금융실명제법이 적용돼 90% 세율이 적용될 수 있다. 금융당국이 향후 객관적 증거를 토대로 이 회장 차명계좌를 금융실명법 제5조의 차등과세 대상으로 인정할 경우, 과세율은 90%로 결정되는 것이다.

소득세 과세시 원금에 과세되지 않아 

이 때 과세 대상은 이 회장 차명계좌에 있던 4조 4000억원이 되지는 않는다. 4조 4000억원의 원금으로 생겨난 예금이자와 주식 배당금이 과세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또한 이 회장 측은 2008년 삼성 특검 이후 누락된 세금은 모두 납부했다고 주장하고 있기에 납부한 세금을 제외한 차액이 추가로 과세될 가능성도 높다.

삼성의 한 관계자는 “2008년 당시 적법한 절차에 따라 내야할 돈은 다 지불한 상황”이라면서 “앞으로 금융당국의 권고 사안이 있다면 성실히 따를 것”이라고 답변했다.

원금 4조4000억에 대한 증여세 부과 가능성은

2001년 이후 개설된 증권 계좌의 경우 상속세 및 증여세법 상의 ‘명의신탁재산의 증여 의제’ 규정에 따른 증여세 부과 가능성도 있다. 상증세법 제45조의2 제1항은 ▲주식처럼 등기나 명의개서가 필요한 재산의 실제 소유자와 명의자가 다른 경우에는 명의자가 마치 그 재산을 실제 소유자로부터 증여받은 것으로 간주해 증여세를 부과하도록 하고 있다.

이 조항은 자신이 소유한 주식을 타인의 명의로 등기해 재산을 은닉하고 조세를 포탈하려는 행위를 규제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이 때 증여의제일(주식등변동상황명세서 등의 제출일)은 ‘소유권취득일이 속하는 해의 다음해 말일의 다음 날’로 정해져 있다.

이를 이건희 회장의 경우에 적용하면 2001년 이후 삼성증권 등에 개설된 증권계좌에 대해서는 증여세를 부과할 수 있다. 소유권취득일이 2001년에 있었던 경우 증여세 부과 기준일은 2001년의 다음해 말일의 다음날인 2003년 1월 1일이 되는데, 기타 부정한 행위가 있는 경우 증여세 부과는 최장 15년까지 가능하므로 올해(2017년)말일까지 증여세 부과가 가능한 것이다. 이에 해당하는 계좌는 삼성증권의 464개를 포함해 총 492개에 달했다.

즉 증여세를 부과 시효가 올해말까지 남아있는 계좌는 차명계좌로 발견된 총 1199개 가운데 41%인 492개이다. 시효가 남아있는 492개 계좌 금액에 따라 증여세율과 증여세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현행법은 증여규모가 30억원이상일 경우 50%의 세율을 적용하고 있다.  

박찬대 의원은 “이건희 차명계좌의 경우 소득세의 차등과세나 과징금 징수 또는 증여 의제를 적용한 증여세 부과 등이 전혀 없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건희 차명 재산 은닉이 금융사를 이용해 얼마나 오랫동안 치밀하게 이뤄져 왔는지를 잘 보여주는 근거”라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