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러닝 수업에서는 학생들의 전략적 선택을 가능한 한 제한하지 않는다. 약탈이나 강도(게임 내에서는 가능한 행위이기는 하다), 사기 등 범죄 행위는 금지하지만 그 외에 현실 경제에서 금지된 제조에 필요한 원자재의 독점이나 매점매석, 플레이어 간 담합 등의 행위는 가능하다.

물론 다른 기업을 모방하는 미투(Me Too) 전략도 가능하다. 미투 전략이란 시장에서 이미 성공한 제품의 이름, 모양이나 디자인 등을 모방해 소비자를 유인하는 마케팅 전략이다. 대표적인 예로 롯데의 자일리톨과 해태제과의 자일리톨, 오리온 초코파이와 롯데의 초코파이, 광동제약의 비타500과 동화약품의 비타1000 등이 있다.

미투 전략은 후발자가 선발기업의 축적한 자산에 편승하는 행위다. 소비자들은 유사한 브랜드나 제품 디자인이 등장할 경우 구별하기 쉽지 않다. 이름이 똑같은 초코파이인데 제품을 이리저리 돌려보며 제조사가 누구인지 파악하는 소비자는 흔하지 않다.

그러나 반대로 선발기업 입장에서 미투 전략의 기업은 거의 ‘도둑’으로 인식된다. 오랜 기간 자신이 축적해온 브랜드나 소비자의 신뢰라는 막대한 자산에 편승하는 것은 거의 절도와 다름없다고 인식한다. 지금은 고인이 된 애플의 스티브 잡스도 삼성전자를 ‘카피캣(도둑고양이)’이라 부르며 비난하기도 했다. 전략 역시 마찬가지다. 오랜 시간을 들여 시장을 분석하고, 전략을 수립했는데 이 전략을 모방당한다면 기분은 동일할 것이다.

G러닝 수업에서 매주 공개하는 정보와 공개하지 않는 정보가 있다. 공개하는 정보는 각 팀의 실적이다. 매출과 영업이익, 순이익 등 각 팀의 성과 지표는 공개된다. 그러나 각 팀이 어떤 전략을 취하고 있는지는 마지막 발표 때까지 공개되지 않는다. 하지만 필자는 각 팀의 전략적 의사결정에 대한 조언을 해야 하기 때문에 각 팀은 매주 필자에게 현재 취하고 있는 시장과 제품 전략에 대한 브리핑을 한다. 브리핑을 할 때는 해당 팀을 제외하고 모든 팀이 강의실 밖으로 나가고 오직 필자만이 남아 해당 팀과 모든 전략을 공유한다.

경쟁하는 각 팀 중에 미투 전략을 구사하는 팀이 있었다. 그 팀은 처음부터 1등을 하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고 가장 성과가 좋을 것 같은 팀을 모방하는 전략을 수립했다. 하지만 모방을 당한 팀은 분노한 듯했다. 어느 날 브리핑을 하던 팀장이 필자에게 말했다.

“교수님!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어떤 팀이 저희 전략을 흉내 내는 것 같습니다. 이건 상도의상 너무한 것 아닌가요?”

그를 포함해 팀원 네 명이 다가와 씩씩거렸다. 무슨 일인가 들어보니 사정은 이랬다. 학생들은 랜덤으로 아이디를 배분받기 때문에 아이디만으로 어느 팀의 누구인지를 분간하지는 쉽지 않다. 다만 초기에 팀원들이 게임 내 맵을 파악하기 위해 몰려다녔거나, PC방에서 우연히 만나 상대편의 모니터를 보고 아이디를 확인하는 경우에는 노출될 수밖에 없다.

어쨌든 어느 경로로 상대편의 아이디를 파악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자기 팀의 전략과 행동을 누군가가 파악하고 그대로 흉내 내고 있다는 것이었다. 흉내만 내면 좋았겠지만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예를 들어 게임 속에서 자신의 아이디를 누군가가 지속적으로 확인, 추적하고 있다고 상상하면 일반 게임 유저도 그리 유쾌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수업은 PC방에서 재미로 하는 게임이 아니다. 학생들에게는 취업 등 자신의 인생에서 중요하게 작용하는 학점과 직접 관련이 있다. 그러니 경쟁은 치열하고 모두들 예민해 있었다. 더구나 매주 각 팀의 성과지표가 엑셀로 공개되니 이건 정말 죽을 맛이었다. 한번 생각해 보라. 자신의 시험성적이 매주 전체 학생에게 공개된다면 그 기분은 어떨까? 15개 팀 중 자기 팀의 성적이 14등이나 13등에 머물고 있고, 그 등수가 변하지 않는다면 절망적일 것이다.

이건 성적을 떠나 자존심과 자존감의 문제이기도 했다. 인간은 자존감을 가진 동물이다. 자존감(자아존중감, 自我尊重感, Self-Esteem)이란 ‘자신이 세상에서 가치 있는 소중한 존재이고 원하는 성과를 이루어 낼 수 있는 유능한 인간이라고 믿는 신뢰감’이다. 그런데 아무리 노력해도 자신의 등수가 변화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자존심과 자존감에 큰 상처를 입는 것을 의미한다. 이미 G러닝 수업은 성적을 넘어 자존감에 대한 경쟁으로 번지고 있었다.

그런데 여기서 누군가 정당하지 못한 방법으로, 예를 들어 시험에서 컨닝으로 좋은 성적을 받는다면 참을 수 없을 것이다. 적어도 해당 팀에게는 자신의 전략을 모방하는 팀이 커닝을 하고 있다고 느끼고 있었다.

필자는 쿨하게 대답했다.

“미투 전략은 수업에서 허용되는 것이네. 실제 시장에서는 흔할 일이기 때문에 당연한 상황이라고 생각하고, 경쟁자가 자신의 전략을 모방할 수 있다고 전제하고 차별화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네. 이 수업은 윤리나 도덕을 가르치는 수업이 아니라 현실 경제에서 생존할 수 있는 전략을 가르치는 수업이네. 자네들도 필요하면 미투 전략을 취해도 되네.”

학생들은 머리로는 납득했으나 마음은 납득하지 못한 듯했다. 하기야 머리와 가슴이 같이 움직인다면 세상 일은 참 쉽고 간단할 것이다. 그들은 더 이상 문제 제기를 하지 않았으나 그렇다고 모방자에 대한 추적을 포기한 것 같지도 않았다. 하기야 자신이 철괴나 금괴 같은 재료를 판매하려고 시장에 내놓는 순간 누군가가 재빨리 매물을 쏟아 부어 가격이 폭락한다면, 그리고 그러한 행위가 반복된다면 열받지 않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물론 필자는 미투 전략을 구사하고 있는 팀이 누구인지 알고 있었다. 그리고 매주 그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도 알고 있었다. 문제는 수업이 끝날 때까지 필자가 그들의 비밀을 지켜줘야 한다는 것이었다.

‘가톨릭 사제들이 모든 고해성사를 듣고 난 후 신자들을 보면 얼마나 불편했을까?’

조금이나마 이해가 되는 순간이었다. 수면 밑 인간 사이의 애증을 알고 있다는 것은 행복한 일은 아니다. 이제 수업은 종강을 향해 치닫고 있었다. 마지막 발표 시간이 되면 판도라의 상자가 열리고 모든 것이 어둠에서 나온다.

‘무슨 일이 생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