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6일 농식품부 측이 두 가지 정책 방향을 발표했다. 하나는 내년부터 적용되는 ‘쌀 생산 조정제’다. 이 제도는 쌀 재고량을 줄여 가격을 안정시키고 농민들이 다른 작물로 관심을 돌리게 하기 위해 개발됐다. 또 다른 정책 방향은 김영록 농식품부 장관이 농업법학회 기조연설에서 ‘경자유전의 원칙’을 확인한 것이다. 농민이 아니면 농지를 소유할 수 없다는 헌법ㆍ농지법상 규정을 농식품부 장관이 다시 한 번 강조한 것이다. 그 동안 ‘경자유전의 원칙’은 있으나 마나 한 원칙이라는 비판을 많이 받았다. 시골에 가 보면 농지의 60%가 도시민 소유이고, 농사를 짓지 않거나 불법으로 소작을 주는 땅이 허다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농식품부 장관은 농지 구조조정보다는 농업계의 공익성을 수호하는 데 더 무게중심을 뒀다.

쌀 생산 조정제도 결국 정책 주도 사업

한 농대 교수는 “쌀 생산 조정제도 결국에는 국가 예산으로 작목을 전환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국가가 쌀 가격을 안정시키기 위해 비싸게 쌀을 사 줬던 수매 정책과 결이 같다는 것이다. 농식품부는 내년부터 논에 벼 대신 다른 작물을 심으면 헥타르 당 최대 400만원까지 주는 정책을 시행하기로 했다. 쌀 생산 감축 예상 규모는 5만 헥타르로 1368억 원이 들어갈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농식품부 계산에 의하면 “2년 간 총 2700억 원이 쌀 생산 조정 예산으로 소모되지만 쌀 변동 직불금도 줄이고 재고관리비용도 줄일 수 있어 8100억 원의 비용절감 효과가 난다”고 한다.

그런데 농식품부가 간과하는 부분이 있다. 벼농사 대신 다른 농사를 짓는 농가들이 늘어날 경우 해당 작물의 판매가격이 급격하게 출렁거릴 수 있다는 사실이다. 쌀 생산 과다로 인한 불확실성을 다른 작목으로 전가하는 셈이다.

가장 근본적인 대책은 농업ㆍ농촌의 구조조정

가장 근본적인 대책은 농업ㆍ농촌의 구조조정을 자연스럽게 이끌어 내는 것이다. 얼마 안 되는 벼농사 직불금이나 생산조정 장려금에 의존하지 않고 농민들이 제대로 소득을 올릴 수 있는 시장 구조를 만들어 줘야 한다. 이 구조가 만들어지려면 자본 참여가 필요하다. 일부 농민 운동가들이 배척하지만 기업가들의 진출이 절실한 이유다.

몇몇 전문가들은 ‘경자유전의 원칙’을 합리적으로 바꿀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아직은 농업계에서 소수지만 이 주장이 최근 들어 꽤 설득력을 얻고 있다. 농산물 가격이 높지만 농업의 생산성이 떨어지는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비즈니스 전략’이 필요하다. 한 국립대 농경제사회학부 교수는 “파편화된 농업 구조를 깨야만 농업 종사자가 죽도록 고생하고 대가를 받지 못하는 구조를 개선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 교수는 “산업 안에 작은 기업, 큰 기업, 소농 등이 고루 섞여 있어야 하는데, 지금은 소농이 생산 비용을 낮추고 보조금으로 연명하는 수준”이라고 꼬집는다. 

▲ 대표적인 벼농사 지대인 김제평야(출처=Visit Korea)

기업의 농업 진출 허용으로 청년 실업 문제ㆍ인구 편중 문제 구상도

농업공동체 전문가인 김광남 박사(경상남도 6차산업지원센터 전문위원)도 비슷한 주장을 내놨다. “기업이 농업에 진출함으로 인해 당장 작은 농가에 위험을 초래하는 것은 맞지만, 단기간 구조조정은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김 박사는 “보수적인 농지 정책 방향을 바꿔서 마을 주민들이 직접 경작을 하는 게 아니라 농업에 지분을 갖는 구조로 개편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의 논리에 따르면 기업이 취득 가능한 농지와 공공용 농지로 농촌의 구조조정이 필요하다. 공공용 농지는 주민과 지자체, 농업 전문가들이 함께 참여해 농사를 짓고 소득을 분배하는 땅이다. 농가소득이 매우 낮은 일부 지자체는 아예 기업의 농업 투자를 유치하고 현지인들을 직원으로 고용해 생계를 보장할 수도 있다. 이렇게 되면 청년 실업 문제도 해결하기 쉬워 지고 도시에 치우친 인구 구조도 개선될 수 있다.

▲ 농업인의 권리를 헌법으로 명시한 스위스의 한 목장(출처=스위스 관광청)

유일한 장벽은 농업계 정서

이런 혁신적인 주장들이 현실화되기 어려운 이유는 ‘농업을 장사수단으로만 보느냐’는 농업계의 시각 때문이다. 농촌이 단순히 돈벌이의 현장이 아니라 식량안보ㆍ환경 보호 등 다원ㆍ다면적 가치를 지닌 공간이라는 주장도 뒤따른다. 기업화로 수반되는 농민들의 고통도 정치인과 정책 당국 입장에서는 고민스러운 부분이다. 그러나 언제까지 농촌을 비효율적인 공간으로 내버려 둘 것인지를 생각하면 꼭 해결해야 할 과제다. 사실 경자유전의 원칙은 한국 이외에도 스위스, 덴마크, 프랑스, 독일 등 다양한 나라의 헌법 조문에 언급되어 있다. 그러나 이들 국가들은 기업이 농업 진출을 희망할 시 지방정부 허가를 얻는 절차를 따로 지정하거나 예외규정을 두는 등 어느 정도 틈을 주고 있다. 우리나라처럼 "농민 이외에 농촌에 들어 와서는 안 된다"는 보수적인 규정을 가진 국가는 거의 없다. 

일본 아베 표 농업 개혁 참고할 필요

우리 농업계가 항상 눈여겨보고 있는 일본은 지난 5년간 급진적인 농업개혁을 추진해 왔다. 2차대전 패전 이후 농지 독과점을 법으로 규제하면서 일본도 농업의 영세화ㆍ고령화ㆍ일손 부족에 시달려 왔다. 아베 정권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농지 규제 완화 ▲기업의 농업 참여 규제 완화 ▲농협 개혁 등을 골자로 한 정책을 계속 내놓고 있다. 청년들이 농촌을 찾게 하기 위한 대책도 함께 모색되고 있다. 우리 농업 당국이 계속해 온 쌀 수매제도ㆍ쌀생산조정제 등도 결국에는 일본에서 정책을 참고해 온 것들이다. 10년 뒤에 어쩔 수 없이 일본 정책을 또 베껴 올지, 아니면 우리 실정에 맞는 농업 개혁을 도모할 지 선택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