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의 시대를 넘어 모바일 패러다임이 시작된 2000년대 후반, 글로벌 ICT 업계는 안드로이드의 구글과 iOS의 애플로 재편됐다. 스마트폰이라는 디바이스를 중심으로 운영체제에 기반을 둔 경쟁구도다.

구글은 삼성전자와 같은 하드웨어 동맹군을 이끌고 안드로이드 진영의 오픈된 양적 팽창을 이뤄냈고, 애플은 독자적 iOS 생태계를 프리미엄 스마트폰의 대명사인 아이폰을 활용해 '나만을 위한 플랫폼'으로 키워냈다. 양쪽의 점유율은 8대2정도지만 수익으로 보면 iOS도 만만치않은 장악력을 보여준다.

▲ (자료사진) 출처=픽사베이

그러나 시대가 모바일에서 초연결로 중심축이 이동하기 시작하며 글로벌 ICT 업계의 판도가 급변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중국의 알리바바, 텐센트, 바이두 등이 강력한 플랫폼 경쟁력을 바탕으로 초연결 패러다임에 필요한 빅데이터를 쉽게 확보해 도전장을 내미는 등 초연결 시대의 패권경쟁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이제 구글과 애플로 대표되는 모바일 시대는 저물어가고 있으며 모든 것이 연결되는 초연결 시대가 부상하고 있다. 중요 플레이어도 포털(구글)과 스마트폰 제조사(애플)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전자상거래, SNS, 게임 등 다양해졌다. 초연결 시대의 핵심이 빅데이터와 생활밀착형에 있다는 전제로 자연스럽게 유력 플랫폼 사업자들이 각광받고 있다. 물론 포털과 스마트폰 제조사도 데이터 접근이 가능하지만, 초연결 시대를 노리는 플레이어의 숫자는 점점 늘어나고 있다는 뜻이다.

급변하는 초연결 시대의 맹주를 결정할 전초전은 클라우드다. 4차 산업혁명을 무인(無人) 시스템에 기반, 인공지능이 중심을 잡고 빅데이터를 확보해 생활밀착형 연결 플랫폼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으로 정의한다면 가장 근원적 배경이 되는 인프라가 바로 클라우드이기 때문이다. 물론 화웨이처럼 하드웨어 칩에 자체 인공지능을 탑재해 클라우드와의 연결고리를 약하게 만드는 실험에 나서는 곳도 있지만, 초연결 시대의 두뇌는 클라우드 내부에 있다는 것이 업계의 정설이다.

▲ (자료사진). 출처=픽사베이

바로 여기에서 ICT 기업들의 격돌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25일(현지시간) 구글과 시스코가 전략적 파트너십을 맺고 클라우드 합종연횡을 단행, 아마존의 AWS에 대항하기로 결정했다고 보도했다. 실리콘밸리 원년멤버인 시스코와 모바일 시대의 패권을 장악한 구글이 의기투합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구글과 시스코의 협력을 이해하려면 현재 클라우드 시장의 판세를 알아야 한다.

글로벌 클라우드 시장의 '알짜배기'인 기업용 클라우드는 AWS 천하다. 이어 마이크로소프트, 구글이 추격하는 분위기다.

문제는 구글이나 MS 등이 AWS의 아성을 넘을 수 있는 묘책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아마존은 26일 3분기 실적을 발표한 가운데 AWS 매출은 45억8000만달러라고 발표했다. 아마존 전체 매출의 10% 수준이지만 영업이익은 11억7000만달러에 이른다. 저비용 고효율의 교과서다.

아마존은 더 큰 그림도 그리고 있다. 알렉사 스킬을 2만5000개까지 늘리는 등 강력한 투자를 단행하는 한편 인공지능 스피커 에코의 파생 라인업을 5개나 늘려 촘촘한 거미줄 전략까지 구사하고 있다. 이를 통해 전자상거래 플랫폼의 경쟁력을 올려 AWS에서 수익을 창출하고 있다. 소위 '알렉사 에브리웨어 전략'이다. 어느 하늘이나 구름(클라우드)이 존재하듯, 아마존은 AWS를 통해 클라우드 인프라를 세상 곳곳에 심어두기를 원한다. 당연히 인공지능 알렉사와 AWS는 선순환 생태계의 도구와 목표가 된다.

구글과 시스코가 손을 잡은 이유는 이러한 아마존의 큰 그림에 적극적으로 대항하기 위함이다. 클라우드 시장에서 아마존 AWS의 공세를 막아내는 것이 단기적 목표며, 장기적 목표는 클라우드 시장 쟁탈전에서 승리해 모바일 시대의 구글 vs 애플에 버금가는 초연결 시대의 맹주가 되는 것이다.

자세히 살펴보면 시스코와 협력한 구글의 속내를 파악할 수 있다.

구글은 개인용 퍼블릭 클라우드 시장에서는 나름의 강세를 보이고 있으나 기업용 클라우드 분야에서는 AWS에 철저히 밀리고 있다. 여기서 네트워크 업체 시스코는 자사가 보유한 데이터를 구글과 연동해 자연스럽게 기업용 클라우드 시장을 공동으로 키울 수 있다. 한때 독자적인 클라우드 플랫폼을 운영했으나 실패했던 시스코도 구글과 손을 잡고 재차 클라우드 시장 공략에 나서는 것이 부담이 덜하다. 23일(현지시간) 시스코는 미국 소프트웨어 업체 브로드소프트를 인수하며 클라우드 엔드단 인프라 구축에도 손을 뻗친 상태다. 준비는 거의 끝났다는 뜻이다.

물론 아마존도 현재에 안주하는 것이 아니다. 최근 몇년간 굵직굵직한 협력을 발표했던 MS와 함께 일찌감치 공동전선을 꾸렸기 때문이다.

▲ 제프 베조스 아마존 CEO. 출처=이코노믹리뷰DB

두 회사는 지난달 30일 올해 말을 목표로 인공지능 알렉사와 코타나를 통합해 알렉사에서는 코타나를, 코타나에서는 알렉사의 기능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아마존의 알렉사는 인공지능 스피커 에코에 담겨 미국 시장에서 점유율 1위를 기록하고 있으며, MS는 코타나를 탑재한 인공지능 스피커 인보크를 하만카돈과 공동으로 제작하고 있다. 각자 로드맵을 가지고 있는 상태에서 전격적인 결합을 추구한 결정적인 이유는 클라우드부터 인공지능까지 아우르는 종합 플랫폼의 강화에 있다는 것이 정설이다.

아마존이 알렉사 에브리웨어를 통해 클라우드와 인공지능을 묶은 상태에서 MS의 생태계까지 더하는 장면은 초연결 시대 패권경쟁 전초전으로 평가받는 클라우드 시장이 얼마나 중요한지 잘 보여주는 단서다.

모바일 시대가 구글과 애플의 구도였다면, 이제는 신진 세력인 플랫폼 강자 아마존이 모바일 시대 패권경쟁에서 탈락했던 MS와 손을 잡는 형국이다. 그리고 모바일 시대의 큰 축이던 구글은 실리콘밸리의 터줏대감인 시스코가 가진 기본적인 네트워크 경쟁력과 데이터베이스를 확보하려 한다.

모바일 시대와 비교하면 경쟁에 나서는 이들은 훨씬 다양해졌고, 싸움의 시작은 클라우드로 좁혀졌다. 여기서 승기를 잡는 플레이어가 초연결 시대의 패권을 좌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