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언론에서 해마다 빼놓지 않고 거론되는 것이 한국인의 영어 능력 문제다. 영어 공부를 위한 사교육비 지출은 세계 최고 수준인데 영어의 말하기와 듣기 등 실질적인 회화가 되지 않는 고질병이 고쳐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외국어 학습은 조기에 하는 것이 좋다는 의견에 발맞춰 초등학교 3학년부터 교육과정에 영어를 포함한 것이 지난 1998년이니 벌써 20여년이 됐다. 하지만 초등학교 때부터 영어수업을 듣고 자란 어린이들은 대학생, 어른이 되고도 영어를 말하는 것에 불편함을 토로한다.

한국인들의 영어 구사 능력은 여전히 전 세계에서도 하위권을 맴돈다. 초등학교에서부터 대학교까지 10여년이 넘는 시간을 영어를 배웠지만, 아직도 많은 한국인이 여러 나라의 언어를 구사하는 사람들에 대한 막연한 열등감과 함께 외국어에 대한 공포감을 가지고 있다.

자신감이 넘치는 미국인도 외국어 문제에 있어서는 예외다. 미국에서 사람들을 만나다 보면 곧잘 받는 질문이 모국어인 한국어 말고 영어를 언제부터 배웠고 얼마나 배웠는지다.

한국에서는 초등학교에서부터 영어가 교과목으로 포함되어 있고 중·고등학교는 물론 대학교에서까지 총 14년간 영어를 배우며, 중·고등학교 때는 거의 매일 1시간씩 수업이 있다는 대답에 미국도 외국어를 어릴 때부터 학교에서 가르쳐야 한다고 맞장구치는 사람들이 많다.

한국에서 그렇게 오랫동안 영어를 가르쳐도 대부분은 사교육을 통해서 또 영어를 배우는 문제가 있기는 하지만, 미국에서 외국어에 대한 교육의 관심과 강도가 약한 것만은 사실이다.

전 세계에서 이주한 사람들로 구성된 나라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대부분의 미국인은 영어 외에 다른 언어를 구사할 줄 모른다. 마켓 리서치 컴퍼니 유가브(YouGov)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약 75%의 미국인이 모국어 외에 다른 언어를 구사할 줄 모른다고 답변했다.

모국어 외에 외국어를 구사할 수 있다고 답변한 사람들 중에서도 외국어를 ‘유창하게’ 말할 수 있다고 답변한 사람은 20%에 불과했다.

언뜻 굉장히 높은 숫자인 듯싶지만 많은 미국인이 이민자 출신으로, 집에서는 부모나 조부모의 언어로 대화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을 감안하면 사실 높은 수치는 아니다. 미국인들이 외국어를 배우지 않는 가장 큰 이유이자 핑계는 “대부분 사람들이 영어를 쓰기 때문”이다.

설문조사에 참가한 28%의 미국인들은 “내가 아는 모든 사람은 영어를 쓴다”면서 외국어 학습의 필요성이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외국어 학습이 아예 필요 없다는 것은 아니고 43%의 미국인들은 “가능하면 많은 외국어를 학습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그러나 13%의 미국인들은 “외국 여행을 갔을 때 필수적인 표현 정도면 된다”고 밝혔고 15%의 미국인들은 “외국어가 국제적 통용어인 경우에는 배울 필요가 있다”고 외국어 학습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다.

외국어 학습에 대한 소극적 태도는 학교의 외국어 수업에서도 나타나서 미국 초등학교의 15%만이 외국어 수업을 제공하며 중학교에서는 58%에 그쳤다. 고등학교에서는 91%의 학교가 외국어 수업을 포함하고 있지만 대학에 들어가면 고작 7%의 학생들만이 외국어 수업을 신청한다.

고등학교 3년간의 짧은 수업만으로 외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한다는 것은 사실 불가능에 가깝다. 학생들이 선택하는 외국어는 거의 천편일률적으로 불어와 스페인어라는 점도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