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세기 자본>. 출처=구글 북스

2014년 전 세계엔 ‘피케티 열풍’이 불었다. 프랑스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의 저서 <21세기 자본>이 가져온 이른바 세습자본주의와 부(富)의 분배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은 전 세계에서 심화되고 있는 불평등 문제를 돌아보게 만들었다.

피케티는 저서에서 전체 자산가치(자본)를 국민소득으로 나눈 ‘피케티 지수’로 불리는 불평등지수를 제안했다. 한 나라의 전체 자산 가치를 그 나라 국민이 벌어들인 소득으로 나눈 것으로, 일반적으로 이 지수가 높을수록 노동으로 벌어들이는 자산가치가 줄어든다. 쉽게 말해 일 해서 버는 것보다 금융자본·부동산 등 일하지 않아도 돈을 버는 구조가 고착화되는 셈이다.

 

우리나라 ‘불평등지수’ 세계 최고 수준

피케티의 공식에 따르면 한국의 불평등지수는 지난해 기준 8.28(배)로 세계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즉 한국 GDP(국내총생산) 대비 부동산이 주류를 이루는 국가 자산 총액이 8.28배에 달한다는 의미다.

국민 총소득 대비 국가자산(부동산) 가격이 높으니 소득만으로 주택을 구입할 수 없는 것은 자명하다. 가계부채 없이 주택을 구입할 수 없다는 얘기다. 이런 상황이라면 구약시대 솔로몬이 현세에 등장해도 가계부채를 막을 길은 없다.

제윤경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한국은행이 발표한 ‘2016 대차대조표’를 분석한 결과 한국의 불평등지수(자본/소득 비율)는 8.28배였다. 일본(6.01배), 프랑스(5.75배), 영국(5.22배) 등 주요 선진국보다 훨씬 높았고 특히 미국(4.10배), 독일(4.12배)보다는 두 배 가까이 높았다.

▲ 2016년 전 세계 주요국 불평등지수. 출처=제윤경 의원실, 한국은행

계산 방식은 이렇다. 지난해 자본의 감가상각을 더한 국부의 연말 잔액을 평균 잔액으로 계산하면 1경911조원이며, 국민총소득(GNI)에서 자본의 감가상각을 뺀 국민순소득(NNI)은 1318조원으로 나타났다. 이에 따라 작년 가계 및 비영리단체와 정부가 보유한 순자산을 국민순소득으로 나눈 결과값이 8.28로 나온 것이다. 즉 국민순소득의 8.28배가 순자산이라는 뜻이다.

불평등지수는 지난 2012년 8.02배, 2013년 8.09배, 2014년 8.18배, 2015년 8.20배에 이어 지난해 8.28배로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이는 1990년대 일본 버블경제(6.9배)와 2007년 스페인 부동산버블(8.19배) 때보다도 더 높은 수준이고, 심지어 역사상 가장 불평등이 심했던 시대로 불리는 프랑스 레미제라블 시대의 7.5배보다도 높은 수치다.

우리나라의 불평등 수준이 그만큼 심각하다는 뜻이다. 제 의원은 “불평등 지수가 높게 나타나면 (소득상위) 소수가 고가의 자산을 많이 점유하고 있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 시장소득분위별 순자산점유율. 출처=통계청

통계청이 발표한 소득분위별 자산점유율을 보면 결과는 비슷하게 나타났다.

2015년 기준 우리나라 상위소득 2분위의 순자산점유율은 40.90%, 상위소득 3분위로 넓히면 52.06%로 소득이 많은 사람이 전체 자산의 절반 이상을 점유하고 있었다. 반면 하위소득 2분위의 순자산점유율은 11.2%로, 3분위로 범위를 넓혀도 17.08%에 불과했다.

▲ 65세 이상 고령인구의 소득불평등. 출처=OECD

특히 불평등은 노년으로 갈수록 심해졌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가 10월 18일(현지시간) 발표한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65세 이상 인구의 지니계수(소득불평등지수)는 전 세계에서 4위로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멕시코, 칠레, 미국에 이은 높은 순위였다. 경제적 불평등을 계수화한 지니계수는 1에 가까울수록 불평등, 0에 가까울수록 평등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자산 불평등의 이유, ‘토지자산’

우리나라 불평등 지수가 높은 이유 중 하나는 부동산 가격을 꼽을 수 있다. 우리나라 자산의 대부분이 부동산 등 토지자산이기 때문이다. 제 의원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내총생산(GDP) 대비 토지자산의 규모는 4.26배로 지난 3년 동안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일본, 프랑스, 호주 등 주요 선진국의 2.4~2.8배, 캐나다(1.3배), 네덜란드(1.6배) 등에 비해 매우 높은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나라의 토지자산 총액은 지난해 말 기준 6981조원으로 전년보다 무려 410조원 가까이 더 늘어났다. 이는 지난해 늘어난 국부 715조원의 절반을 넘는 57.3%에 해당하는 규모다. 특히 박근혜 정부 들어 토지자산은 21.9% 증가해 4년 동안 1254조원이 불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정부가 최저금리 수준으로 빚 내서 집 사기를 독려한 결과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가계부채대책, 세계 최고 수준 ‘불평등지수’ 개선 가능할까

10월 24일 발표된 가계부채 종합대책으로 세계 최고 수준에 달하는 우리나라 불평등 구조가 개선될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우리나라 가계 빚의 대부분이 부동산으로 흘러가고 있는 시점에서 정부가 대대적인 부채 관리에 나섰기 때문이다. 신DTI(총부채상환비율)로 투자목적의 추가 주택담보대출을 조이고, DSR(총체적상환능력비율)로 전 금융권 대출을 통합 관리해 ‘빚 내서 집 사기’를 어렵게 하겠다는 계획이다.

이번 대책이 추가 대출 억제와 부동산시장 안정화에 성공한다면 불평등 구조 개선에도 도움이 될 가능성은 있다. 이우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지난해 발표한 연구에서 “자산 불평등 완화를 위해서는 부동산 자산 불평등 완화에 집중해야 한다”면서 “특히 가계 주택 구입 부담을 줄여주는 정책과 더불어 부동산 가격 안정화를 위한 정책이 우선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일부 긍정적인 효과는 있겠으나 거시경제 측면에서는 부정적이라는 시각도 있다.

이한영 중앙대 경제학과 교수는 “대출을 조이면 투기든 투자든 부동산 수요는 점차 줄어들고, 수요가 줄면 가격 역시 하방 압력을 많이 받을 것”이라면서 “이로 인한 건설 부문의 타격은 불가피하다고 본다”고 우려했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실장은 “이번 대책으로 부동산 경기가 예상보다 급랭하게 되면 위험할 수 있다”면서 “미시적인 대책이기 때문에 전체 부채에 영향이 클지는 미지수”라고 분석했다.

다주택자 대출 규제가 불평등 구조 개선에 기여하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임진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원은 “다주택자라고 해서 반드시 소득이 많다고 볼 수는 없다. 불평등 해소와 직접적인 연결고리는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똑같이 10억을 가진 사람이더라도 10억짜리 집 한 채를 가질 수도 있고 3억짜리 집 3채를 가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조영무 LG경제연구원 연구원은 “소득 상위 계층 등 소득 증빙이 용이한 이들은 (신DTI·DSR 등으로) 대출 규제가 강화되더라도 영향이 크지 않은 반면 취약계층은 상대적으로 그 영향이 클 것”이라면서 “소득이 적은 실수요자는 내 집 장만이 어려워져 결국 대출시장 양극화가 부동산시장 양극화를 불러올 위험도 있다”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