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일본 총리가 이끄는 자민당이 21일 열린 중의원 선거에서 압승을 거두면서 아베 정권의 농업개혁에도 한층 가속도가 붙게 됐다. 아베 정권은 2013년부터 농업의 기업화와 규모화·농협 개혁·농지규제 완화를 외치는 한편 TPP(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와 EPA(일본-유럽경제동반자협정) 등을 통해 농산물 시장 개방에 앞장서 왔다. 일본 야권은 ‘농업 개방은 신중해야 한다’고 비판했지만 아베 정권은 ‘농업 분야 혁신과 농업 개방은 동시에 추구할 수 있는 목표’라고 맞서 왔다. 개방과 혁신을 양대 축으로 하는 아베 표 ‘농업 재생 정책’은 앞으로도 한층 강화할 전망이다.

▲ 농산물 국제화와 시장화에 앞장서는 아베 신조 일본 총리(출처=아베 총리 트위터)

농업 개방 추진하는 아베 정권

아베 총리가 이끄는 자민당과 공명당이 312석을 확보하면서 ‘아베 표 농업 정책’에도 힘이 실리게 됐다. 이번 일본 중의원선거에서 핵심 농업 현안은 TPP(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와 EPA(일본-유럽 경제동반자 협정) 대책이었다. 일본 농산물 시장의 급격한 개방이 불가피한 상황에서 농민들의 생활 안정을 위한 추경예산이 얼마나 풀리냐가 이번 선거의 핵심 이슈였다.

우선 EPA의 경우 유럽산 치즈를 일본 내에 저관세로 들이는 한편, 유럽산 파스타·와인·초콜렛관세도 대폭 줄이거나 장기적으로 없애는 방향이다. 일본 정부와 자민당은 축산업의 경영안정화대책과 우수 품목 경쟁력 강화로 농산물 개방에 대응하겠다고 주장해 왔다. 신생 야당 희망당(希望の党)을 이끄는 고이케 유리코(小池百合子) 도쿄도지사는 “직불금 확대와 쌀 수매 정책 강화가 필요하다”며 반론을 제기했다.

사민당은 개별 농가소득을 법으로 보장하는 ‘호별소득보상제’(戶別所得報償制) 도입을 주장하고 “일본농협(JA그룹)의 개혁은 아베 정권의 주장처럼 급진적으로 할 수는 없다”는 입장을 내놨다.

그러나 아베 정권의 시장친화적 농업개혁 노선은 이번 중의원 선거 승리로 인해 더욱 강화할 것으로 보인다. 역대 자민당 정권의 경제자문역을 지내온 시마다 하루오(島田晴雄) 게이오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농업을 성장과 혁신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정책이 앞으로도 우세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 일본 아베 정권이 농업 특구로 홍보해 온 홋카이도 후라노의 화훼단지(출처=Tripadvisor.com)

아베 농업개혁 핵심은 쌀보조금 폐지, 일본농협의 주식회사화

아베 정권은 지난 2013년부터 쌀 보조금 폐지를 공언해 왔다. 1970년대부터 일본 국민들의 식생활이 서구화되면서 쌀의 ‘과다생산’이 농업의 핵심 문제로 대두되자, 일본 정부는 소규모 농가의 삶을 보장하되 쌀 생산량을 조정하는 ‘감반’(減反) 정책을 시행해 왔다. 아베 정권은 지난 2013년 “5년 뒤에는 쌀 생산량 조정을 위한 농가 보조금을 폐지하겠다”고 발표했다. TPP와 EPA 등 농산물 개방 조치로 벼농사를 짓는 농민들에게도 국제 경쟁력이 필요하다는 게 골자였다.

당시 야당은 “농산업을 기업 우위로 재편하는 조치”라며 반발했지만 아베 정권은 내각부 안의 규제개혁회의 핵심 현안에 ‘쌀 보조금 페지’를 포함시켰다. 그리고 “암반규제(岩盤規制 : 구속력이 강해 누구도 깨뜨리기 힘든 법제)를 깨 농업 혁명을 이룩하겠다”는 말까지 일본 여권 내에서 나왔다. 도치기 현, 고치 현, 홋카이도 등 농업 비중이 높은 지역의 정치인들에게는 위험천만한 대책이었다. 그러나 아베 정권은 “생산성 강화와 수익성 강화로 농산물 개방에 대응할 일”이라며 정면 돌파를 선언했다.

또 2014년에는 일본농협의 개혁안도 발표됐다. 그동안 일본농협 중앙회는 지역농협 위에 군림하는 거대한 조직이었다. 일본 내각부 산하 규제개혁회의는 일본농협중앙회가 지역농협에 행사할 수 있는 지도권과 감사권을 폐지시키는 데 앞장섰다. 중앙회를 주식회사로 바꾸는 대책도 나와 실행됐다. 지역농협들은 신용사업을 농림중앙금고에 대거 매각하고 경제사업만 맡게 됐다.

농지정책 전환을 통한 기업화 방향도 촉진 예상

일본이 2차대전 이후 지주들을 약화시킬 목적으로 실행해 온 ‘농지법’도 아베 표 농업개혁의 대상이다. 농지법은 소수 대지주의 농지 독점을 막기 위한 대책이었지만 ‘절대 다수의 영세농’을 만들어 내는 효과도 낳았다. 또 영세농가 대부분이 고령화로 농업을 더 이상 지속하지 못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기업이 농업에 진출하기 위해 반드시 참가해야 하는 ‘농업회사법인’제도를 개혁했다. 과거에는 기업이 농업회사법인에 출자할 수 있는 자본 한도가 25%였지만 새 체제 하에서는 50%까지 한도가 올라갔다. 토지거래를 중개할 수 있는 농지은행(農地バンク) 도입도 가속화될 전망이다. 히구치 유이치 일본 타마정보대학 명예교수는 “아베 정부는 젊은이들이 농업에 더 많이 참여하기 위해서는 기업화가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라며 “홋카이도 후라노 지역 같이 특화된 농업 생산 지역도 기업화를 통해 더 효과적으로 추진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