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공정거래위원회가 지난 11일 반독점 법 위반 혐의로 퀄컴에 234억대만달러의 과징금을 부과하기로 결정한 가운데, 대만 경제부(Ministry of Economic Affairs)가 17일 대만 공정위의 판단은 존중하지만 산업 측면에서 깊은 우려를 표해 눈길을 끈다.

대만 경제부는 경제 산업을 담당하는 정부 기관으로서 경제적 안정과 번창의 고려가 필요하며, 해당 건과 관련해 산업 발전과 공정 거래를 위한 조정안을 기대하고 있다고 밝혔다.

대만 경제부의 이 같은 우려는 퀄컴반독점에 대한 대만 공정위의 판단과는 별개로, 퀄컴이 자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력을 고려하는 한편 대국적인 실익을 추구하려는 정책 방향으로 읽힌다.  퀄컴은 대만 정보통신기술(ICT) 반도체 산업의 중요한 파트너며 모바일 생태계 전반을 아우르는 사업 영역을 보유하고 있다.

시장조사 회사 MIC(Market Intelligence and Consulting Institute)에 따르면, 2016년 퀄컴이 대만 반도체, 패키징, 그리고 시범(테스팅) 산업 관련 주문한 물량은 총 1557억대만달러에 이르며 대만 ICT 산업 부문에서 총 3147억대만달러의 매출을 창출했다. 

올해 퀄컴 주문을 통해 예상되는 대만 지역 매출액은 약 4324억대만달러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런 이유로 대만 경제부는 대만 공정위의 판결이 산업 전반에 대한 퀄컴의 기여도를 비롯해 향후 자국 산업에서 발생할 다양한 협력 기회를 고려하지 못했으며, 해당 판결은 외국 기업이 향후 대만으로의 투자를 확대하는 데 있어 바람직하지 못한 결과로 이어질 것으로 봤다.

▲ 출처=픽사베이

대만의 미묘한 판단...철저한 실익 추구

대만 공정위의 판단을 존중한다는 전제가 깔렸지만 대만 경제부의 발표는 퀄컴과의 경제협력을 전제로 ‘큰 그림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는 화두로 좁혀진다.

정부의 부처가 서로를 존중하면서도 과감하게 이견을 피력하는 장면도 신선하다는 평가다. 업계 관계자는 “한국의 정부 부처들은 공무원 사회의 특성상 서로를 향한 이견을 공개적으로 표출하지 않는다”면서  “대만 정부도 부족한 면이 많겠지만, 최소한 국익을 위한 장기적 관점을 견지하며 논의를 거듭하는 장면이 흥미롭다”고 평가했다.

대만 공정위의 과징금 처분은 국내에서 벌어지고 있는 공정위-퀄컴 공방전과 결을 함께 한다. 시장독과점 문제를 지적하고 있는 공정위가 지난해 12월 퀄컴에 1조300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했고, 퀄컴에 칩 공급을 볼모로 특허권 계약을 강요하는 행위를 멈추라는 시정명령을 내렸기 때문이다.

이후 퀄컴은 공정위를 상대로 낸 시정명령 효력정지를 신청했으나 최근 법원은 이를 기각했다.  서울고법 행정7부는 지난달  "신청인들이 제출한 자료만으로는 시정명령으로 인해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가 발생할 우려가 있거나 이를 예방하기 위해 처분의 효력을 정지할 긴급한 필요가 있다고 소명되지 않는다"며 기각 결정했다. 시정명령으로 퀄컴이 심각한 피해를 입지는 않을 것이라며, 금전 손해도 제한될 것으로 봤다는 뜻이다.

시정명령 자체에 대한 법리적 공방은 계속되지만 '시정명령 중단'을 요구하는 퀄컴의 요구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는 뜻이다.

퀄컴은 즉각 입장자료를 발표하며 "공정위의 의결이 사실관계 및 법리적 모든 측면에서 근거가 결여되었을 뿐 아니라, 적법절차에 관한 퀄컴의 기본적인 권리들을 부정한 심의 및 조사의 결과라는 입장"이라고 강조했다. 퀄컴은  "퀄컴은 공정위의 결정이 미국을 포함한 다른 국가들의 법률 하에서 부여된 지식재산권에 대한 부적합한 규제를 추구함으로써 공정위의 권한과 국제법의 원칙을 벗어났다는 입장이며, 이러한 점을 계속해서 제기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 출처=픽사베이

“우리 판단에 문제는 없을까?”

공정위가 퀄컴에 대한 전방위적 압박에 나서는 상황에서, 대만 공정위도 비슷한 조치를 내렸으나 대만 경제부가 ‘온건한 제동’을 걸고 나선 이유부터 찾아볼 필요가 있다. 시장독과점에 대한 판단은 두 나라 공정위가 모두 비슷한 결정을 내렸고, 그에 따른 논란은 차치한다고 해도 ‘고민의 깊이’가 다르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과 대만은 제조업을 중심으로 기간산업을 발전시켰으며, 자원이 풍부하지 않기 때문에 글로벌 ICT 기업과 협력, 경제의 활로를 찾았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 대목에서 퀄컴과 같은 ICT 기업과의 협력은 필수며, 이는 미래에도 마찬가지라는 것이 중론이다. 올해 5월 대만에서 열린 컴퓨텍스 2017 현장에서 본지와 만난 월터 예 타이트라 사장은 “한국과 대만은 전통적으로 제조업이 강하기 때문에 갑자기 초연결 모바일 서비스로의 변신이 어렵다는 말이 나올 수 있다”면서 “많은 글로벌 기업과 협력해 상생의 기회를 찾자는 것이 우리의 목표”라고 말하기도 했다. 결국 협력과 연대가 필요하다.

▲ 월터 예 타이트라 사장. 출처=타이트라

여기에서 퀄컴 사태로 돌아오면, 한국과 대만의 온도차이가 위험하다는 결론이 나온다. 현재 삼성전자는 스마트폰 모바일 AP인 스냅드래곤 시리즈에서 퀄컴과 협력을 강화하고 있으며 LG전자는 VC사업본부를 중심으로 퀄컴과 함께 자율주행차 부품 시장에서 보폭을 맞추고 있다.

한국도 시장독과점에 대한 문제제기만 맹목적으로 파고들 것이 아니라, 5G 시대의 강자로 부상하고 있는 퀄컴과의 연결을 통해 철저한 국익을 추구하는 대만의 고민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물론 시장독과점 문제를 집중적으로 공략해 퀄컴이 삼성전자와 LG전자, 애플 등 제조사들과 새로운 라이선스 계약 협상에 돌입하도록 유도하는 것도 자국 이기주의 원칙에 부합될 수 있다. 다만 이러한 행보는 지식재산권에 대한 원천적 가치판단 문제와 연결된다. 퀄컴은 CDMA(code division multiple access) 시절부터 연구개발에 박차를 가해 현재의 라이선스 비즈니스 모델을 구축했다. 그 과정에서 갑질에 대한 잘못이 있다면 당연히 책임을 져야 하지만 이를 지나치게 확대해석해 지식재산권의 본연적 가치를 흔드는 것은 분명히 지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공정위와 퀄컴, 대만 공정위의 판단과 대만 경제부의 이견은 모두 ‘퀄컴과 애플’이라는 두 공룡의 헤게모니 싸움 일부에 불과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퀄컴과 애플의 독점협상이 리베이트 문제에서 스텝이 꼬이기 시작했고, 두 회사는 미국에서 동원할 수 있는 모든 법적인 수단을 망라하며 치열하게 싸움을 전개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공정위의 퀄컴 과징금 부과는 애플의 어깨에 일방으로 힘을 더해주고 있다는 평가다. 단기로 보면 삼성전자와 LG전자도 퀄컴과 계약을 맺은 제조사이기 때문에 애플의 퀄컴 압박이 이득이 될 수 있으나, 장기로는 대만 경제부의 판단과 비슷한 신중한 상황판단이 필요하다는 말이 나온다.

대만 공정위 퀄컴 과징금 부과에 이은 대만 경제부의 유감 소식이 알려지며, 전방위적으로 번질 기미를 보인 퀄컴 압박전이 잠시 소강상태에 빠질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이는 국내 공정위의 판단에 일정정도 영향을 미칠 수 있고, 퀄컴 압박에 나서고 있는 애플의 전략도 숨 고르기에 돌입할 것이라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