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정적으로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으면
이미 상대방에게 30%의 위축감을 주게 된다.
‘질문을 하면서 듣는 것이 최고의 아첨’이라는 말도 있다.

서울대 국제경제학과를 졸업하고 프랑스 팡테옹 소르본대학에서 국제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산업자원부 국장, 대통령경제수석실, 외교부 정책자문위원 등을 거쳤으며, 현재는 서강대 국제대학원 원장으로 있다. 저서로 《이기는 심리의 기술 트릭》 《CEO는 낙타와도 협상한다》 등이 있다.

엘버트 메르비안이라는 미국의 사회학자는 7%가 언어, 38%는 목소리, 35%는 상대가 눈으로 보는 표정, 20%가 태도, 옷차림의 순으로 협상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캘리포니아대학의 폴 에크만 교수의 몸짓 이론에 의하면 사람들에겐 협상을 할 때 당황하고 초조해하는 모습을 상대방에게 보이면 불리하기 때문에 이를 감추려는 습성이 있다. 이때 보통 위쪽을 감추려 하지만 가장 잘 나타나는 것이 ‘발 떨기’이다. 그런 면에서 협상은 종합예술이다.

청와대에서 일할 때 남북한 2차 쌀 협상을 하며 북한의 정금철이라는 나이 70세가 넘은 노령의 협상가와 협상을 한 일이 있다.

당시는 우리 어선인 ‘동진호’가 억류된 상태였다. 정금철 씨는 줄담배를 피우는 사람이었다. 우리가 ‘동진호’ 이야기를 하지 않자 정금철 씨가 먼저 “동진호 이야기는 안 하냐”고 물었다. 그래서 “필요 없다”고 하자 노련한 협상가는 당황하기 시작했다.

담뱃갑에서 담배를 꺼내 물 때 거꾸로 물고 라이터로 불을 붙이는 데 3번의 시도를 해도 왜 담배에 불이 안 붙는지를 모르는 상태였다. 그때부터 우리는 협상을 유리한 쪽으로 끌어갔다. 밀고 당기는 협상을 할 때 이렇게 상대방의 태도를 유심히 살필 필요가 있다.

언어의 중요성도 무시 못한다.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은 후보 시절 연설에서 단문을 단순하게 반복하며 이야기를 했다.

그래서 듣는 사람이 쉽게 알아듣고 이해했다. 반면 맥케인 후보는 복문을 쓰며 ‘and’ 와 ‘if’를 자주 넣어 말했다. 청중들에게 무슨 말인지 확실하게 전달하지 못했고, 결과는 선거 패배로 이어졌다.

떠벌이는 협상가가 되지 말라
협상 전문가들이 가장 자주 하는 말은 ‘떠벌이는 협상가가 되지 말라’는 것이다. 말하기 능력보다 듣기 능력이 엄청나게 중요하다.

그래서 협상가와 만났을 때 대개 자신의 회사를 자랑하며 기선을 제압하려고 하는데, 그러지 말고 상대 협상가로 하여금 말을 많이 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그러면 그 회사의 정보가 노출되기 마련이다.

일반적으로 칭찬을 통해 상대로부터 말을 끌어낸다. 또한 긍정적인 듣기를 해야 한다. 부정적으로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으면 이미 상대방에게 30%의 위축감을 주게 된다. ‘질문을 하면서 듣는 것이 최고의 아첨’이라는 말도 있다. 그 다음에 내 정보를 알려주는 것이 좋다.

동양의 협상법에는 본인이 100% 우월한 입장에 있더라도 상대방을 완패시키지 말라는 법칙이 있다. 동양의 협상은 관계 지향적이기 때문에 100을 다 먹을 수 있다고 하더라도 다 먹지 말고 상대방도 10~20%는 먹을 수 있게 하는 문화가 있는 것이다.

하지만 어려운 경제시기에 무자비한 경제 협상가를 만나 매우 불리한 상황이 된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이럴 경우에는 상대방을 들이받는 경우가 생기기도 한다. 비즈니스 협상에서는 100% 승자도 약자도 없다.

프레더릭 더글러스라는 사람은 19세기의 인권 운동가다. 당시 미국의 남부는 노예제도를 인정하였고, 북부지역은 노예제도를 인정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 프레더릭은 젊어서 노예생활을 했다. 당시에는 ‘노예조련업’이라는 사업이 유행하였으며, 이것은 말 안 듣고 반항적인 흑인 노예를 한 달간 위탁교육 시키면 말 잘 듣는 노예로 만드는 것이었다.

당시 잭슨이라는 악명 높은 노예 조련사가 있었다. 프레더릭이 이 잭슨에게 교육을 받게 되었고, 2주간 받게 되니 실신 직전까지 갔다. 그래서 2주가 지났을 때 프레더릭은 아무도 없는 창고에서 악명 높은 잭슨을 들이받았다.

1시간의 몸싸움을 벌인 것이다. 그 당시는 흑인 노예가 백인에게 달려들면 법률상 그 자리에서 죽일 수도 있었다.

잭슨은 어떻게 했을까. 이 사건이 알려지면 잭슨의 비즈니스는 끝나게 된다. 농장주들은 다른 경쟁 노예 조련업체에 노예들을 보낼 것이다. 그래서 잭슨이 취할 수 있었던 행동은 없던 일로 하고 프레더릭을 돌려보내는 것이었다. 이 방법을 통해 마지막에 단판으로 승부수를 정할 때 예상치 않은 결과를 얻을 수도 있다.

양보하는 협상 방법으로 ‘주은래’식 협상방법이 있다. 주은래는 중국의 정치가로 협상을 아주 잘하는 사람이었다. 주은래는 협상 초기에 상대방이 얻으려는 것의 110을 줘버린다. 그러면 협상은 조기에 종결된다. 하지만 한 가지 성공조건은 한 번 양보하고 그후로는 절대 양보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엉성하게 보이는 것도 좋은 전략
CEO들은 술과 비즈니스 문제에 대해 관심이 많다. 나는 술을 마시라고 한다. 양자 간 정보를 많이 교환하는 협상은 성공 가능성이 커진다. 대인관계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것이 접대이다.

윈스턴 처칠은 위스키를 아주 좋아했다. 2차 대전이 발생했을 때 미국은 참전을 안 하려고 했다. 그래서 루스벨트 대통령을 설득하러 백악관에 갔었다. 루스벨트 대통령의 취미는 칵테일을 만들어 권하는 것이었다. 처칠은 좋아하지 않는 술이지만 9잔의 칵테일을 마셨다는 이야기도 있다.

하지만 상대방과 폭탄주 먹는 것뿐만 아니라 국립박물관이나 인사동의 갤러리를 가는 것도 훌륭한 접대가 된다.

점퍼를 입고 나온 사람과 정장을 잘 차려입고 온 사람 중에 누가 더 맘에 들겠는가? ‘Belly-Up’전략이라고 하여 양의 탈을 쓴 늑대의 전략이 있다. 굉장히 세련된 협상가인데 의도적으로 상대방에게 엉성해 보이는 것이다.

왜 그러냐면 완벽하게 하고 나오면 상대방이 긴장하기 때문에 이렇게 엉성하게 나오면 상대방이 방심을 하게 되고, 여성의 경우에는 동정심을 받게 된다.

‘의도적 관계협상 전략’이라는 것도 있다. 관계 형성을 중시하는 동양 협상 문화권과 달리 미국인이나 유럽인은 ‘정보’와 ‘객관적 사실’에 바탕을 둔 협상을 한다.

통상산업부에 있을 때 보니 우리나라 통상산업부 장관이 미국에 가면 미팅시간으로 딱 한 시간을 준다. 그러면 15분간 스피치하고, 나머지 45분간은 미국 장관에게 엄청 깨지고 돌아오곤 했었다.

대개 한국의 장관은 바빠서 미국 가는 비행기에서 보고받고 준비하고 있었다.
그런데 당시 장관은 공부는 안 하고 기내에서 잠을 오래 잤다. 실무자들이 불안해서 들여다 보니 한잠 자고는 낯선 미국 화가의 작품집을 보고 있었다.

당시 미국의 장관은 칼라 힐스였다. 그런데 우리 측 장관의 첫 대면 인사는 “당신의 할아버지는 굉장한 화가였다”는 말이었다. 그러자 미국 측 장관은 처음 보는 한국의 장관을 보며 아주 환하게 웃으며 반겨주었다.

외국인과 협상할 때 기본 원칙은 상대방의 문화적 차이를 인지하는 것이다. 만약에 나는 커피를 싫어하는데 사우디아라비아와 미국에서 각각 커피를 마시겠느냐는 제안을 받았을 때, 미국에서는 커피를 좋아하지 않아 거절하겠다고 해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사우디아라비아에서 그런다면 그 관계는 깨지게 된다.

이재훈 기자 huny@asia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