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노연주 기자

#일상가젯 - 일상과 그 물건에 얽힌 그렇고 그런 이야기. 소니 WF-1000X 편

#여권만큼 중요한 그것 항상 이 시간이 초조하다. 공항에서 탑승을 기다리는 시간 말이다. 해외 출장 가려고 여길 왔다. 출발하기 전에 집에서 여권 잘 챙겼는지 계속 확인했다. 아직 실수한 적은 없지만 언젠가는 내게 닥칠 일일지 모르니.

또 하나 꼭 챙기려고 애쓴 물건이 있다. 다름 아닌 이어폰이다. 음악 없이 긴 비행시간을 보낼 자신이 없다. 이번 이어폰은 특별하다. 비행기처럼 소음이 거슬리는 장소에서 진가를 발휘하는 제품이다. 이날을 위해 널 준비했어. WF-1000X.

▲ 출처=소니

#아이유 헤드폰과 한 핏줄 ‘아이유 헤드폰’이라 불리는 물건이 있다. MDR-1000X라는 소니 헤드폰이다. 국내 무선 헤드폰 판매 1위를 기록한 베스트셀러다. WF-1000X는 MDR-1000X의 후속모델이자 헤드폰이 아닌 이어폰 버전이다.

그냥 이어폰이 아니다. WF-1000X엔 2가지가 없다. 일단 하나는 ‘선’이다. 애플 에어팟처럼 완전 무선 이어폰이란 얘기다. 두 이어버드조차도 선으로 이어지지 않는 타입이다. 심지어 수납함이 배터리팩 역할을 한다는 점까지 같다.

겉모습을 보면 분명 에어팟과는 다른 매력을 뿜어낸다. 담배꽁초를 귀에 매달아놓은 느낌 따위 나지 않는다. 크롬 처리된 매끈한 조약돌 같다. 길쭉한 군용 도시락 느낌 수납함도 강렬하다. 무게는 6.8g에 불과해 귀에 부담이 없다. 에어팟과 정면 승부를 벌여도 손색없는 자태다.

비행기에 올라 폰을 비행기 모드로 전환한다. 그러고는 블루투스를 켜고 WF-1000X와 무선 연결 작업에 돌입한다. 묘한 긴장감이 흐른다. 무선 제품 사용하려다 연결 제대로 못해 애먹은 경험이 한둘이 아니니.

WF-1000X는? 결론부터 말하면 연결 스트레스를 주지 않는다. 별도 애플리케이션(앱)을 설치하지 않고 막힘없이 연결을 마쳤다. 탑재된 초고감도 안테나가 연결 끊김 현상을 막아준다. 음악 감상 준비 완료.

▲ 사진=노연주 기자

#2가지 없는 이어폰 ‘선’은 물론 ‘소음’도 없다. 청음에 불쾌감을 주는 노이즈가 없단 얘기가 아니다. MDR-1000X처럼 노이즈캔슬링 기술이 적용됐다. 완전 무선 노이즈캔슬링 이어폰이라니 정말 독특한 정체성이다.

노이즈캔슬링이란 말을 처음 들어본 사람은 이렇게 짐작하기도 한다. 귀를 빈틈없이 틀어막아 주변 소음을 안 들리게 해주는 방식 아니냐고. 틀렸다. 이는 이어폰이 주변 소음을 분석해 사용자에 상쇄하는 음파를 보내 소음을 ‘삭제’해주는 첨단(?) 기술이다.

소니는 MDR-1000X로 완성도 높은 노이즈캔슬링 기술을 보여줬다. WF-1000X도 이를 계승한다. 자동차든 지하철이든 비행기든 카페든 길거리든 나만의 청음실로 만들어준다. 음악에 온전히 몰두할 수 있다.

노이즈캔슬링에 너무 커다란 환상을 품는 일도 곤란하다. 소음을 완전히 차단해주진 못한다. 주변에서 격렬하게 떠들어대는 사람 목소리를 귓속말처럼 바꿔주는 정도랄까. 특히나 비행기 내부처럼 일정한 소음이 들려오는 장소에서 진가를 발휘한다. 비행기가 이륙할 무렵 난 깨달았다. ‘이번 비행은 그 어느 때보다 고요하겠구나.’

소니는 노이즈캔슬링에 센스 엔진까지 더했다. 주변 상황을 읽어 반응하는 지능형 기술이다. 이런 식이다. 노이즈캔슬링이라고 해서 모든 주변음을 차단하지 않고 자동차 소음은 없애면서 경적소리만 지우거나, 지하철 소음은 없애면서 안내방송은 선명하게 들려주는.

이번 비행 중에 안내 방송은 제법 뚜렷하게 들려온 이유다. 일부는 우스갯소리로 이런 소리를 한다. 노이즈캔슬링 때문에 로드킬 당할 수도 있다고. 위험하단 뜻인데 센스 엔진은 리스크를 관리해주는 셈이다. 이어폰이 환경에 반응하며 세팅을 수시로 바꾸니 간혹 이질감이 들기도 한다. 다만 일정한 소음이 반복 발생하는 상황에선 부족함이 없다.

▲ 사진=노연주 기자

#작지만 강한 드라이버 이어폰 크기가 작으면 드라이버 역시 작게 마련이다. 큼직한 드라이버에 비해 고품질 음향을 기대하긴 어려울 수 있다. 더군다나 무선 이어폰은 음질 면에서 유선에 크게 뒤진다. 애석하게도 WF-1000X는 드라이버가 작은 편인 무선 이어폰 아닌가.

그럼에도 만족감은 높았다. 노이즈캔슬링 덕분인지도 모르겠다. 주변 소음이 섞여들지 않아 오히려 음악이 깨끗하게 들린다는 느낌이다. 조용한 공간에서 비교하면 유선 제품에 밀리겠지만 우리 일상은 대개 잡음으로 점철되지 않는가.

예상대로 제품엔 6mm 작은 드라이버가 탑재된다. 작은 고추가 맵다는 말처럼 이 드라이버는 기대치 이상을 해낸다. 풍부한 중저음과 부드러움 고음이 조화를 이룬다. 소니 설명으로는 9mm 드라이버 수준 음질이라고 한다.

앞서 앱 없이도 연결이 가능하다 했다. 전용 앱이 없는 건 아니다. ‘소니 헤드폰 커넥트’ 앱을 활용하면 기능이 확장된다. 내가 딱 맞는 청음환경을 구성할 수 있도록 다양한 옵션을 제공한다. 이퀄라이저 역시 앱으로 만질 수 있다. 밝음, 신남, 부드러움, 편안함 등 옵션의 직관성이 빛난다.

▲ 출처=소니

#첨단 기술의 기회비용 무선 제품은 분명한 단점이 있다. 수시로 충전을 해야 한다는 점. WF-1000X의 배터리 지속 시간은 그다지 만족스럽지 않다. 무선 연결한 채 노이즈캔슬링 기능을 사용하면 3시간 재생이 가능하다. 충전 케이스까지 이용하면 최대 9시간이다.

기회비용쯤으로 생각할 수 있겠다. 블루투스 무선 연결은 물론 배터리를 먹는 노이즈캔슬링 기능까지 들어가 있으니. 게다가 크기도 작지 않은가. 15분 충전하면 70분을 버티는 고속 충전 기능도 단점을 보완해준다.

패키지 구성은 참 푸짐하다. 여분 이어버드가 소재·크기별로 잔뜩 들어있으니. 제품이 귀에서 쉽게 빠지지 않도록 해주는 피팅 서포터 여분도 있고. 핸즈프리 기능도 나쁘지 않더라. 음악을 듣다가 전화가 오면 블루투스 연결을 서둘러 해제할 필요가 없다. HD 보이스를 지원하는 덕이다.

▲ 사진=노연주 기자

#새로운 물건 아니지만 너도나도 블루투스 이어폰을 내놓고 있는 시점이다. 이게 애플 때문일지 모른다. 신형 아이폰에 3.5mm 이어폰 단자를 없애 유선 제품 사용을 불편하게 만들어버렸으니. 유저는 불평불만을 하면서도 무선 이어폰을 찾는다. 애플의 큰 그림이란.

에어팟은 처음 등장했을 때 사람들한테 ‘새로운 물건’이란 인상을 풍겼다. WF-1000X는 그런 느낌이 다소 부족하다. 어쨌든 에어팟이 세상에 등장한 지 한참 뒤에 나온 완전 무선 이어폰이니까. 노이즈캔슬링 역시도 새로운 기능은 아니고.

선점이 시장에서 무조건 이기는 전략은 아니다. 기존에 나온 걸 정밀하게 조합해 더 완성도 높은 혁신을 달성하는 전략도 충분히 승산이 있다. WF-1000X는 그런 전략이 깃든 물건이다. 기존 혁신을 보완하고 융합해 이어폰의 미래로 조금 더 가까이 다가서는. 진짜 혁신은 디테일에 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