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 경기 침체에 따른 내수 감소로 소비재 제조, 유통업체들이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가운데 위기 상황이 지난 몇 년 동안 지속되면서 성장이 정체된 업계가 있다. 우유 그리고 우유를 원재료로 활용해 제품을 생산하는 국내 유업계다.

소비재 수요 감소에 따른 수익 감소는 기본이다.  여기에 출산율 하락에 따른 우유의 주(主) 소비층인 유아~어린이 인구 감소, 국내 제품에 비해 생산 단가가 낮은 해외 유제품의 유입 등 수많은 악재로 국내 유업계는 진퇴양난(進退兩難)에 빠져있다.  저성장의 수렁을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지만 터널의 끝이 잘 보이지 않는다.

점점 쪼그라드는 국내 시장 

우리 유업계가 직면한 가장 큰 리스크는 국내 우유시장  규모가 계속 줄고 있다는 사실이다.   시장조사업체 링크아즈텍의 조사에 따르면 국내 우유시장(200ml 흰우유 출고 기준) 규모는 2014년 9월에서 2015년 8월까지 1년 동안 0.2% 준 데 이어  2016년 9월에서 2017년 8월까지 1년 동안 1.5% 또 줄었다.  

경제가 발전하면 시장이 크는 게 보통인데 우리나라에선 오히려 쪼그라들고 있으니 기가 막힌다. 우유시장이 축소일로를 걷고 있는 것은 우유가 시장에 남아돌고 있는 탓이 크다.  재고가 늘고 있으니 생산량을 늘릴 수 없고 생산을 늘린다고 해서 그것이 소비증가에 따른 매출 증가로 이어진다는 보장도 없는 상황이다.

통상 우유는 일시 공급 부족에 따른  품귀 현상을 막기 위해 통상 소비보다 조금 많이 생산한다.  재고분은 변질을 막기 위해 액체가 아닌 분유(粉乳) 로 만들어 저장, 보관한다. 우리 유업계는 이런식으로 수급균형을 유지해왔다.

그런데 국내 우유 소비가 줄면서 재고량이 폭증했다. 우유 재고가 산더미처럼 쌓였고 분유 장기 보관에 드는 비용도 감당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다.  낙농진흥회의 우유수급개황 통계에 따르면 2014년 1월 9만2677t인 월 단위 누적 분유는 그 해 12월 21만1798t으로 불어났고 2015년 4월에는 28만t으로 치솟았다.

재고 우유가 계속 문제가 되자 업계는 나이가 들어 유질(乳質)이 떨어지는 젖소의 도축으로 우유 재고량을 줄였다.  이에 2016년 8월 18만7426t으로 감소한 데 이어 올해는 13만~14만t대로 줄어들어 안정을 찾고 있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는 미봉책일 뿐 수요 감소와 시장축소라는 근본 문제에 대한 근본대처는 아니라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국내산 우유 최고의 약점 ‘가격경쟁력’ 

소비자들이 국내산 우유에 대해 가지고 있는 가장 큰 불만은 ‘비싼 가격’이다. 같은 용량의 흰우유를 구입할 때 수입 제품과 국산 제품의 가격차는 2배에서 크게는 3배까지 난다. 그래서 몇몇 소비자들은 수입 우유와 국내산 우유의 가격차이는 국내 업체들이 가져가는 과도한 수익 때문이라는 불만을 제기한다. 

그러나 국산 우유 가격이 수입 제품에 비해 비싼 이유는 유업체가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다는 점을 소비자들은 잘 모른다.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국가별 원유 생산 단가의 차이이고 두 번째 이유는 원유가격연동제다.  

우유제품의 원료가 되는 원유  가격은 우리나라가  외국에 비해 대단히 비싸다. 낙농진흥회 해외 낙농산업 주요지표(2016년 8월)와 국내 낙농산업 주요지표(2017년 7월)에서 파악한 내용에 따르면 우유를 생산하는 주요 국가의 1kg당 생산비를 원화로 환산한 비용은 미국 419원, 영국 303원, 뉴질랜드 355원, 중국 556원이다. 한국은 1026원이다.

국내산이 비싼 이유는 여러 가지다. 규모의 경제가 되지 않고 인건비가 비싼 점 등 이유는 한둘이 아니다.  젖소를 키우는 목장 중 규모가 크다고 해봐야 70~80마리를 키우는 정도라고 한다. 치솟는 사료비용, 인건비 등으로 우유 생산단가는 올라갈 수밖에 없는 게 우리나라 현실이다.

우유를 원료로 하는 치즈가격도 올라간다. 그러니 수입 치즈에는 경쟁자체가 되질 않는다.

 중국 등 외국의 사정은 판이하게 다르다. 대규모 사육으로 원가를 크게 떨어뜨리고 있다.  이런 가운데 다량의 우유를 수입해 우유 수입가격을 더욱 낮춰 유통비용까지 합쳐도 국내산 우유보다 더 싼 우유를 공급할 수 있는 것이다.  

원유가격연동제 또한 우리 유업계의 발목을 잡고 있다. 이 제도는 우유의 원료인 원유(原乳)가격을 생산비용, 물가상승률과 연동시켜 정하는 것이다. 이는 낙농가의 수익이 일정 수준 이하로 급격하게 떨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농림축산식품부가 2013년 도입한 제도로, 현재 우리나라 우유 가격 결정의 기준이다.  

이 가격연동제가 가장 이상적으로 적용되려면 우유의 소비가 일정수준 이상으로 유지돼야 한다는 전제 조건이 있다. 문제는 연동제에는 수요가 고려되지 않기 때문에 요즘처럼 수요가 감소해도 물가 변동에 따라 생산비가 오르면 가격을 내릴 수 없다는 단점이 있다는 사실이다. 

유업체들이 수요를 고려해 제품 가격을 내리고 싶어도 내릴 수 없는 이유다. 소비자들이 발우유를 선뜻 고르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래서 유업체들은 애를 끓일 수밖에 없다.

국내 유업체 한 관계자는 “영국, 뉴질랜드 등 해외에서 생산되는 원유의 가격이 낮은 이유는 생산 인프라 규모의 차이와 더불어 수요 공급 상황에 따라 가격을 정하는 변동제가 적용되기 때문”이라면서 “이전까지는 변질 문제 때문에 액체 상태의 우유 제품이 그대로 수입되는 경우는 매우 드물었으나 최근에는 저장보관 기술의 발전으로 액체 우유가 수입되기도 국내 업계의 상황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고 말했다. 

업계의 고육지책 성공할까? 

대내외 위기 상황에 국내 유업체들은 ‘고품질’, ‘기능성’ 상품 전략 등 고육지책을 마련하고 있다. 서울우유는 1등급 우유 중에서도 구분된 1A 등급 품질의 제품군 '나100%'를 출시해 소비자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매일유업은 국내 최초 무지방 멸균우유인 '매일우유 무지방0% 멸균우유'와 우유 속 유당을 제거해 소화불량 걱정 없이 마실 수 있는 락토프리 제품 '소화가 잘되는 우유'를 출시했다.  

▲ 출처= 서울우유, 매일유업

롯데푸드 파스퇴르 우유는 롯데중앙연구소와 협력으로 개발한 LB-9의 유산균주 2종의 특허 등록을 올해 2월 완료했다. 롯데푸드가 이 유산균을 활용해 만든 'LB-9 유산균 우유'는 출시 직후부터 매달 20% 이상 매출 증가세를 보이면서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업체들의 각고의 노력은 효험을 내고 있다.  다양한 기능성 우유와 흰 우유 시장 성장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기능성 우유 '락토프리 우유'의 시장규모는 지난해 8월부터 올해 7월까지 누적 142억원을  기록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배(99.7%) 가까이 가파르게 성장했다.

유업계 관계자는 “품질, 기능성 등 가격 이외 요인으로 국내 소비자들의 수요를 늘리기 이해 각 업체들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면서 “더 건강하고 믿을 수 있는 국내산 우유에 대해 소비자들의 관심이 더 늘어나 업계의 상황도 나이지길 기대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