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 산업혁명 위원회가 발족되고 문재인 정부의 ICT 정책도 서서히 윤곽을 드러내고 있다. 정부 주도의 정책이 가지는 한계까지 시시콜콜하게 따질 생각은 없지만, 최소한 돛을 올렸으면 올바르게 순항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는 것이 당연하다. 다만 ‘아무도 가보지 못한 길’이기 때문에 오히려 오래된 역사의 사례에서 최선의 길을 찾는 것이 어떨까. 중세 유럽의 유일한 이코노믹 애니멀(Economic Animal)로 활동했던 베네치아 공화국이 제격일 것이다. 5개의 교훈과 1개의 반면교사를 꼽아보자.

먼저 ‘합리적 분리’다. 베네치아에는 콜레간차라는 한정합작회사 제도가 있었다. 이탈리아 도시국가들이 소수의 대부호 중심으로 무역에 종사했던 것과 달리 베네치아는 콜레간차를 통해 누구나 적은 자본을 통해 사업에 나설 수 있었다. 적은 돈으로 연명해야 했던 과부, 노인, 사회적 약자들은 콜레간차를 통해 일종의 주주가 되어 사업을 할 수 있었다는 뜻이다. 또 자본가와 실제 경영자를 분리해 합리적인 방식으로 무역활동이 벌어질 수 있도록 했다. 이러한 방식은 21세기 대한민국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모두가 참여할 수 있지만, 자본가(정부)와 경영자(기업 종사자)의 합리적 분리를 통해 ICT 시너지를 낼 수 있다면, 성공의 절반은 달성한 셈이다.

다음으로는 ‘위험의 분산’이다. 콜레간차의 장점 중 하나이면서 베네치아가 지독하게 집착했던 대목이다. 베네치아는 중근동의 그리스도 세력이 소멸된 후 무역로를 대거 확충하며 카이로, 알렉산드리아, 팔레스티나, 콘스탄티노플 등 소위 다각화 전략을 폈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4차 산업혁명 위원회를 비롯해 정부 전반의 경제 정책은 ‘잘 나가는 곳’에 무리한 집중을 시도하는 분위기가 풍긴다. 석호에 갇힌 도시국가 베네치아도 우리처럼 수출 주도의 경제 구도를 가졌지만 절대 하나의 ‘포인트’에만 집중하지 않았다. 4차 산업혁명 위원회의 안건을 보면 ‘최근 부상하고 있는 아이템’은 모조리 섭렵한 것을 확인할 수 있는데, 이러한 종합선물세트 방식은 겉만 번지르르한 속빈 강정이 될 수 있다. 집중할 곳은 집중하고, 위험은 분산해야 한다.

‘정보수집’도 중요하다. 베네치아는 아랍인의 궁정에도 서슴없이 대사관을 설치해 정보를 수집할 정도로 그 중요성을 간파한 나라다. 당연한 말이지만 우리도 정보 수집에 더욱 집중해야 한다. 그 중요도는 모두가 알고 있지만 의외로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다. 명성 있는 외국인 강사를 섭외해 강의하자는 뜻이 아니다. 생생하고 실질적인 정보를 확보하기 위한 근본적인 정책이 필요하다. 글로벌 경제 상황이 수시로 변하고 ICT 정책이 출렁이는 현재, 민간이 어렵다면 정부라도 직접 나서 정보 수집의 창구가 되어야 한다.

‘집요함’도 필요하다. 베네치아는 크레타섬을 확보해 무역중개거점으로 사용하며 이를 침범하려는 외부의 세력에 맞서 수백년이나 피를 흘렸다. 한 번 필요하다고 생각되면 집요할 정도로 지키는 힘. 현재 우리는 디스플레이와 반도체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산업 동력을 상실했다고 말해도 괜찮을 정도로 위기에 몰려 있다. 위험은 분산해야 하지만 이럴 때는 주력 산업을 지키기 위해 각오 이상의 의지를 대내외적으로 보여줘야 한다. 강력한 연구개발, 기초과학발전이 절실하다.

마지막으로 ‘절묘한 외교’다. 베네치아는 아랍인의 나라에 대사관을 설치하는 것을 넘어 모든 현안을 합리적으로, 최대한 충돌 없이 부드럽게 끌어가려고 노력했다. 그 과정에서 로마 교황청과 아랍인의 나라를 오가는 절묘한 실리중립외교를 보여주기도 했다. 우리가 가장 주목해야 할 대목이다. 구글과 페이스북, 아마존 등 미국 실리콘밸리 공룡들이 기세를 올리고 바이두, 알리바바, 텐센트 등 중국의 ICT 기업들이 세계로 뻗어가는 상황에서 올바른 중심을 잡고 그들을 적절하게 활용하려는 전략을 채택해야 한다. 이는 비단 ICT, 경제계의 이야기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여기까지가 베네치아에게 배울 수 있는 5개의 교훈이다. 그렇다면 1개의 반면교사는 무엇일까. 베네치아는 지중해의 여왕으로 군림하며 무수한 번영을 누렸지만 동쪽의 오스만투르크, 서쪽의 유럽 절대왕정시대가 도래하며 위기와 직면하게 된다. 그 결과 자연스러운 소멸 수순을 밟는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시대의 흐름을 따라가지 못한 베네치아의 패착이 아니다. 베네치아는 자신이 합리적이기 때문에 상대도 합리적일 것으로 생각했고, 시대가 대국병립의 흐름을 타고 있음에도 끊임없이 상대방에게 자신처럼 합리적인 대응을 기대했다.

실수다. 영원한 적도 없고, 영원한 동맹도 없다. 우리의 글로벌 ICT 정책이 오랫동안 살아남아 제대로 된 영향력을 발휘하려면, 상대방의 시시각각 변하는 태도를 빠르게 감지해 스스로가 변해야 한다. 구글의 하드웨어 수직계열화에 발만 동동 구르고, 애플의 폐쇄적 iOS 생태계가 점점 심해진다고 분노만 터트리며 ‘오픈 생태계’를 열어 달라는 징징거림은 통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합리적인 사고라는 단어는 종종 시대에 밀린 ‘약자의 변명’이 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