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 주민들이 우울하고 스트레스 지수가 높다는 연구 결과가 나오면서 ‘건강 격차’를 시정하기 위한 정책이 절실해 졌다. 건강 격차는 신체적인 이유가 아니라 지역, 계층 등 사회 구조적인 원인으로 건강 수준이 차이가 발생하는 현상을 뜻한다. 질병관리본부는 2014년 도시(12%)보다 농촌(16%)의 우울증이 더 심하다는 조사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전문가들의 조사 결과 농촌 지역의 우울증은 한국뿐만 아니라 중국에서도 심각해 도·농 격차가 심한 지역의 공통적인 현상인 것으로 보인다. 이를 두고 의료계와 농업계에서는 농촌의 건강보건 인프라 수준을 끌어올리기 위한 ‘건강지역정책’, ‘농어촌의 공동체성을 회복하기 위한 모임 공간 지원’ 등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농촌노인 100명 중 2.6명은 약물치료 필요한 우울증 환자

농림축산식품부가 최근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농촌 노인 100명 중 9명이 자살을 생각해 봤다고 한다. 농촌 노인 100명 중 2.6명은 약물치료가 필요한 우울증세를 보였다. 대부분의 노인들은 혼자 거주하는 사람들이었다. 이 조사 결과는 질병관리본부가 2014년 발표한 농촌 우울증 조사와도 맥이 잇닿아 있다. 당시 질병관리본부는 농촌 인구의 우울증이 16%, 도시 인구의 우울증이 12%라고 집계하며 "농촌 노인들의 정신 건강은 심각한 수준"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농촌 노인들의 정신 건강 조사가 정기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전라남도청 관계자는 “우울증세가 심각한 노인들이 상당히 많고, 증세가 심한 경우 정신과 상담, 약물 복용까지 병행하도록 지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보건사회학회가 최근 연구한 내용에 따르면 “연령이 높고, 배우자가 사망했고, 종교가 없을수록 농촌 노인의 우울증이 심각하다”고 한다.

낮은 경제 수준은 농촌 노인의 중요한 우울증 요소 중 하나다. 통계청이 2015년 발표한 ‘농가 경제조사’에 따르면 하위 20%에 해당하는 2인기준 농가 월소득은 78만 3000원으로 최저생계가 어려울 정도다. 정부는 2011년부터 농지를 담보로 노후 생활이 가능한 농지연금제를 운영했지만 가입자의 65%가 월 100만원 미만을 수령했다. 경제상태가 나쁘고 과중한 농작업으로 평생 시달렸음에도 탈출구가 없는 농촌 노인들은 심한 경우 암이나 정신질환 등 질병 예방을 위한 마땅한 대책이 없는 실정이다.

▲ 도농 격차에 따른 연령별 스트레스 위험 비교(출처=보건사회연구)

 

각박한 농촌 사회 구조, 건강 격차에 한 몫 

이진희 플로리다주립대 박사가 지난해 보건사회연구에 발표한 논문도 통계청 조사와 비슷한 내용을 담고 있다. 이 교수에 따르면 “열악하고 고립된 지역일수록 오랫동안 축적된 사회적 문제, 제도적 문제로 인해 일찍부터 정신적·신체적 질병을 경험하는 풍화 이론(weathering hypothesis)이 작동한다”고 한다. 농촌에서의 사회적 관계와 물리적 환경의 불편함이 오랫동안 지속되면서 스트레스나 질병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또 이 교수는 19만명의 건강 데이터를 분석하고 “같은 농촌이라 하더라도 수도권에 가까울수록 질병률이 낮다”며 “수도권일수록 병원, 헬스클럽 등 건강 지원 인프라에 접근하기 쉽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사회역학 분야의 권위자인 마이클 마멋 런던대 교수는 최근 ‘건강 격차’(Health Gap)라는 책을 발표했다. 마멋 교수는 광범위한 국민 건강 데이터를 통해 사회적 지위가 질병 발생률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해 왔다. 그는 영국의 정부 공무원들을 상대로 통계 연구를 한 결과 고위 공직자일수록 훨씬 건강하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리고 마멋 교수는 연소득 2만 달러 이하 계층부터 급격히 사망률이 증가한다는 점을 찾아 내고, “공업고등학교, 장애인 특수학교가 지역에 위치한다고 해서 반대 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소외 계층을 죽음으로 내몰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에 따르면 한국 농촌은 ‘죽음의 지역’이다. 경제적 소득 수준이 도시에 크게 못 미칠뿐더러 병상 수, 의사 수, 공원 비율, 자전거 도로 등 모든 인프라가 취약하기 때문이다.

▲ '건강 격차' 개념을 처음 주장한 마이클 마멋 런던대 교수의 저서(출처=교보문고)

농촌의 또 다른 질병 요인은 극도로 분열된 관계 구조다. 경기 남양주시의 수동면으로 최근 이주한 인문학 저술가 임건순 씨는 “농촌에서는 잘못 분쟁이 발생해 사람이 죽어도 ‘얼마에 합의 봤다’는 식의 괴담이 정말 많다”고 지적했다. 임 씨는 “도시에서 누가 귀농해서 새로 집을 짓거나 상수도부터 파야 될 경우 대놓고 법적 근거도 없는 보상금을 요구하거나, 호된 신고식을 치르도록 강요하는 경우가 많다”며 “농촌을 행복한 공간으로 묘사하는 정부의 귀농·귀촌 정책에도 문제가 있다”고 꼬집었다. 또 임 씨는 “농촌 주민들끼리 자발적 협업을 하는 것은 한국에선 불가능에 가깝다”고 비판했다. 실제로 모 매체가 장례 행렬을 가로 막으며 통행료 500만원을 강요한 부여 옥산면 마을 주민들의 행태를 보도한 바 있다. 이 지역 주민들은 선산에 장례를 지내러 가는 유족의 장의차를 가로막고 통행료 500만원을 요구한 다음 350만원을 마을 기부금 조로 받아낸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경기 광주시 오포읍에 거주하고 있는 전재욱 테고사이언스 대표는 “못된 농촌 인심이 원래 거주하던 노인들 뿐만 아니라 귀농인들의 질병요인이 되기도 한다”고 주장했다.

건강지역정책ㆍ지역통합 프로그램 필요

건강 인프라에 대한 접근 취약과 커뮤니티 구조의 문제 등을 극복하기 위해 나온 게 ‘건강 도시’ 프로그램이다. 건강도시 개념은 1984년 캐나다 토론토에서 처음 나왔다. 도시민들의 신체건강을 보호하기 위해 병원, 보건소 등의 시설뿐만 아니라 걷기 좋은 공간, 생태공원 등을 적극적으로 만들어 도시민들의 치유를 돕는 것이다. 하윤상 연세대학교 공공문제연구소 연구원은 “건강 도시 개념을 건강 지역 정책으로 확대해 낙후된 농촌 등을 청소하고, 거주하기에 쾌적한 환경으로 바꾸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연세대 공공문제연구소는 1968년 설립돼 도시 빈민 문제와 농촌 문제를 연구해 온 기관이다. 하 연구원은 “농어업회의소같이 실현 가능성이 낮은 농촌 기관 설립에 치우칠 것이 아니라 지역민들이 실제로 소통하고 건강에 대한 지식도 계속 얻을 수 있는 콘텐츠를 만들어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