잇달아 미국에 허리케인이 상륙하면서 언론마다 허리케인 대비책을 알리고 정치인마다 나서서 비상사태를 선포하는 등 허리케인 피해 최소화에 두 손을 걷고 나섰다. 사실 미국보다 훨씬 큰 피해를 본 캐리비안 지역의 나라들은 자국민이 아니라는 이유로 미국 언론에서 거의 언급되지 않아 피해 규모가 어마어마함에도 불구하고 이를 모르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문제가 제기된 것은 푸에르토리코다. 허리케인 피해를 본 텍사스주와 플로리다주에 비해 푸에르토리코에 대한 지원이 미흡한 데다 무관심과 함께 차별을 하고 있다는 지적이 쏟아지자 트럼프 대통령은 뒤늦게 푸에르토리코를 방문했다.

푸에르토리코를 방문한 트럼프 대통령은 그러나 현황 보고를 받은 뒤 “큰 재앙이었던 미국 카트리나 당시 1000여명이 사망한 데 비해 이번에는 16명만 사망해서 자랑스럽다”고 하는가 하면 “우리가 참 대단한 일을 해냈다”고 자화자찬을 해서 오히려 화를 돋우었다는 분석이다.

특히나 “푸에르토리코가 해야 할 일을 제대로 하지 않고 있다”고 비난하면서 “미국 연방정부는 길을 복구하고 통신도 복구하는 등 할 일을 다 하는데 푸에르토리코는 자신들이 할 일을 하지 않는다”고 오히려 막대한 피해를 입은 푸에르토리코를 비난해서 눈총을 사기도 했다.

푸에르토리코 방문 후 며칠이 지나서는 트위터를 통해서 “푸에르토리코의 현재 재정 위기는 대부분 스스로 만든 것”이라면서 “(푸에르토리코의) 전기 등의 인프라는 허리케인 이전부터 재앙이었다”고 끊임없이 푸에르토리코를 비난했다.

한 발 나아가 “열악한 상황에서도 놀랍도록 열심히 일을 해준 FEMA(연방재난관리청)와 군, 긴급지원 요원들을 푸에르토리코에 계속 머물게 할 수 없다”면서 약 1만9000명의 파견인력들을 철수하겠다는 협박 비슷한 발언까지 곁들였다.

미국 정부의 이런 태도와 발언에 푸에르토리코는 물론 미국 내에서도 푸에르토리코 주민들을 2등 시민으로 취급한다는 반발이 거세다.

푸에르토리코가 유난히 미국의 무관심과 차별에 반발하는 이유는 이곳이 캐리비안 지역에 있는 미국의 자치령이기 때문이다. 푸에르토리코는 1493년부터 400년간 스페인의 식민지로 있으면서 많은 사람들이 스페인에서 건너오고 스페인어를 사용했는데, 미국과 스페인 간 전쟁 이후 1898년 미국이 점령해서 군정이 실시됐으며 1952년부터 미국의 자치령이 됐다.

국방과 외교, 통화 등에서는 미국에 의존하기 때문에 국가의 원수는 미국 대통령인 도널드 트럼프이며 행정권은 4년 임기의 직선제로 선출되는 총독에게 주어진다.

푸에르토리코 시민들은 ‘미국인’으로 시민권을 갖고 있지만 투표권이 없기 때문에 대통령 선거 등에 참여할 수 없는데 미국 본토로 이주하면 투표를 할 수 있다.

또 개인소득세도 미국에 납부하지 않는다. 통화는 미국 달러를 사용하며 언어는 스페인어와 함께 영어가 공용어로 사용된다. 푸에르토리코는 미국령이기 때문에 미국인들이 푸에르토리코로 여행을 갈 때는 여권이나 비자가 필요 없다.

푸에르토리코의 주민들은 자치령으로 남는 것을 원하는 사람들이 대다수라서 1993년과 1998년에 이어 2003년 국민투표에서도 자치령으로 남는 안에 투표했다.

대부분의 미국인들은 푸에르토리코에 대해 ‘관심이 없거나’ 아예 ‘무지한’ 경우가 많아서 약 340만명의 푸에르토리코 주민들이 미국인의 1.3%를 차지하는 시민권자임을 모르는 사람들이 태반이다. 언론사 <USA 투데이>가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푸에르토리코 주민들이 미국인임을 아는 사람들은 전체의 절반이 안 되는 47%에 불과했다.

30%의 사람들은 푸에르토리코 사람들은 푸에르토리코 국민이라고 믿었고 21%의 사람들은 아예 푸에르토리코가 어느 국가에 속해 있는지를 알지 못했다. 이런 무관심 혹은 무지가 아마도 섬 전체에 전기와 식수가 끊기는 푸에르토리코의 사상 최악의 재난에도 미국인들이 구호에 긴급하게 움직이지 않게 만든 이유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