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정약용은 자식들에게 “도성 사대문 밖으로 이사 가지 말라. 서울을 벗어나는 순간 기회는 사라지며 사회적으로 재기하기 어렵다”는 유언을 남겼다고 한다. 유배 생활을 한 적도 있고 다른 명망가에 비해 지방에 변변한 근거지조차 없었던 다산일가에게는 어쩌면 당연한 말이었다. 조선시대에도 서울은 이미 ‘특별시’였기 때문이다.

지난 8월 2일. 정부는 이른바 ‘8.2 부동산관리대책’을 발표했다. 지금 떠올려 보면 이날 오전부터 소나기 예보가 있었고, 서울 정부청사에는 카메라와 기자들이 북적였다. 휴가 중이던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도 부랴부랴 돌아와 연단에 섰다. 주택시장 급등을 '좌시'할 수 없었던 정부의 긴급 정책 발표는 그렇게 시작했다.

8.2 대책은 세제, 대출규제, 청약 등 할 수 있는 시장 규제를 총 망라해놓아 십여년 만에 정부가 내놓은 가장 강력한 대책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당시 1호 공약이었던 도시재생 뉴딜 사업도 올해 서울에서는 않겠다고 했으니 더 말할 필요가 없었다.

꽤 두툼하게 제본해 놓은 정책발표안을 보면서 한숨부터 나왔다. 정책이 너무 강력해서 시장이 침체될 거라느니 시장의 유동자금 때문에 정책이 실패할 것이라느니 기자와 전문가들 간 설전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보다 쉽게 수긍할 수 없었던 것은 몇 자 되지도 않는 국토부 시장현황 보고글이었다.

‘서울 및 수도권.’ 이 말이 전형에 가까운 ‘물타기’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서울은 사전적으로 수도권에 포함된다. 수도권은 수도인 서울과 이를 중심으로 이루어진 대도시권을 말한다. 그렇지만 부동산 시장에서 이 둘을 쉽게 묶어 말하기 어렵다. 때문에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과 ‘서울을 포함한 수도권’이 아닌 그냥 수도권 시장이라고 하면 서울을 제외한 인천과 경기도 지역으로 이해하고 또 표현하기도 한다.

그만큼 서울특별시와 다른 수도권 지역은 다른 시장이란 말이다. 국토부는 서울 및 수도권 시장에서 주택공급이 넘쳐난다고 강조했다. 어쩌면 맞는 말이다. 국토연구원 자료에 따르면 2016~2018년까지 아파트 기준으로 수도권에서의 연평균 입주물량은 지난 2013~2015년 연평균보다 75% 늘어난다. 그런데 이 가운데 경기도는 115%나 급증하고 서울의 입주량은 늘지 않는다. 이 자료에 따르면 2019년 경기도의 주택보급률은 100%를 넘겠지만 서울 주택보급률은 100%를 밑돌 것으로 예상된다.

그 기간 동안 가구 수는 늘어난다. 2019년 1인 가구를 포함한 서울의 일반 가구 수는 2015년보다 8만가구가량 늘어난 387만가구가 된다. 통계에 잡히지 않는 다가구 주택 세입자들도 있다. 이들도 주택상향욕구를 가진 주택 수요층이다. 서울에 주택이 부족하다는 것이 비단 투기 수요 때문만은 아니라는 얘기다.

서울에선 택지 개발할 땅이 거의 소진됐고, 정부 시책에 따라 재건축·재개발 사업도 현재로선 속도를 내지 못하게 됐다. 공급을 틀어막으면 값은 올라간다.

서울의 주거환경이 가장 좋다거나 모두 서울에 살도록 해달라는 것이 아니다. 서울 내 주택 공급만큼이나 합리적인 가격의 광역교통망 확충, 수도권과 지방의 수도 기능 분산 등이 훨씬 중요하다. 이런 조치들을 통해 서울에 사는 것이 특별한 것이 되지 않아야 한다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