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농업의 미래에 대해 토의하기 위해 한국과 중국의 전문가들이 만났다. 한국은 도시 농부들의 조직과 커뮤니티의 유지 가능성을, 중국은 기업화와 유통 효율성을 염두에 두고 도시 농업이 발전하고 있다. 농업 발전 방향은 다르지만 두 국가 농업 전문가들이 공감하는 이슈도 있었다. 농민들을 조직화해 의미 있는 사업으로 이끌어내기 어렵다는 점이다. 또 양국 농업 전문가들은 “도시 농업이 지속 가능한 사회 경제 비즈니스로 탈바꿈하기 위해선 최소한의 수익 모델 개발이 절실하다”는 점에 공감했다. 그를 위해 급식이나 공공 조달 등 제도적인 차원의 뒷받침도 시급하다.
가장 큰 승부점은 결국 도시농업 정책을 지원하는 공공의 역량 개선이다. 예산을 배분하는 중간 지원 기관들의 전문 인력 확보, 농업공동체인 마을기업과 사회적기업들의 경영 변화를 이끌어 내기 위한 체계적인 컨설팅이 절실하다. 대부분의 중간조직들은 농업 공동체가 처음 지원 조직으로 지정될 때 제공하는 24시간 교육 프로그램이 컨설팅의 대부분인 경우가 많다.
도시농업의 혁신은 어떻게 이루어질 수 있을까. 행촌권 도시농업 특구를 방문한 매기 탕 중국 ‘커뮤니티 개발 파트너십’ 프로그램 개발 이사와 도시농업 전문가 고창록 행촌공터 대표, 김광남 경상남도 6차산업 지원센터 위원, 중국 농업 전문가인 김유익 화앤동 컴퍼니 대표 등은 지난 14일 도시농업을 주제로 행촌권 도시농업 특구에서 간담회를 가졌다.
한국 도시농업, 공공 의존 비중 심하다
고창록 행촌공터 대표는 “한국 도시농업은 대부분 정부 주도형 사업으로, 앞으로 5년 이후를 내다보기 위해서는 지역별로 특화된 사업 모델 발굴이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서울의 행촌공터만 하더라도 매년 지자체가 20~30억 가량을 예산으로 지출해 시설 투자비와 운영비를 투입하고 있다. 종로구나 행촌권 주민들과 행촌공터 측이 마찰을 빚어 사업이 지연되는 경우도 많다. 올 5월부터 행촌공터는 스마트팜을 도입해 기술 영농을 시도하려 했지만 종로구 측의 미온적인 태도로 어려움을 겪었다고 한다. 고 대표는 “충분한 자체 수익 모델 개발이 되면, 구 단위나 동 단위에서 반대가 심해도 문제를 돌파해 나갈 명분이 생긴다”면서 “도시 농업 공동체를 만들어 놨지만, 최소한의 유지를 위해 수입원을 발굴하지 못하는 커뮤니티들이 허다하다”고 지적했다.
도시농업 공동체를 지원해 주는 중간 지원 기관의 역량도 문제다. 도시 농업 기업들이 마을기업이나 사회적 기업으로 등록한 후 컨설팅 지원을 받으려고 해도 제대로 된 교육과정이 부족하다. 서울시만 하더라도 처음 마을기업으로 선정된 후 제공하는 24시간 교육이 전부다. 공동체 참여자들이 다른 직업을 갖고 있는 경우에는 강의에 참석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또 지원금의 집행 시기에 대한 규정도 까다로워 사업에 필요한 지원금을 제때 쓰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고 대표는 “텃밭을 만들기 위해 통로를 만드는 데 수백만 원 정도이면 될 것을 시간을 끌어 수천 만 원 짜리 비용이 들어가는 일도 많다”고 지적했다.
도시 농업 공동체를 통해 만들어진 농산물이 팔려 나가는 유통 채널도 문제다. 고 대표는 “농촌 농업이 도시 농업을 가장 많이 견제하고 있고, 골목 상권이나 관련 협회 차원에서도 감정적 저항이 있어 구 당국을 설득하는 일이 매우 어렵다”고 주장했다.
한국 도시 농업은 지나친 공공 사업 의존 비중이 문제지만, 동시에 공공 차원에서 풀어 줘야 할 대책도 산더미인 셈이다. 도시 농업 공동체가 골목 상권이나 동업자 협회와 마찰을 일으키지 않고 사업을 잘 영위하면서 판로도 개척하고, 제대로 된 경영 활동을 통해 유지하는 일이 여러 모로 어렵다.
중국의 농업공동체, 철저한 기업화의 길
홍콩과 중국 본토에서 도시농업과 농촌 농업 종사자들을 조직화해 지원하는 운동을 하고 있는 커뮤니티 개발 파트너십(Partnerships for Community Development)의 전문가들은 조금 다른 문제를 지적했다. 커뮤니티 협력 프로그램 개발자인 매기 탕(Maggie Tang) 이사는 “중국의 농업은 주민들이 참여하는 사회적 경제 시스템이라기보다 기업화 시스템으로 이행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탕 이사는 “도시농업이 처음 시작한 곳이 선전(深淺) 지역”이라면서 “중국은 애써 농민들을 조직하기보다는 효율적으로 사업 모델을 만들기 위해 신도시를 건설하거나 기업을 투입해 특구를 만드는 것에 좀 더 집중하는 추세”라고 분석했다. 또 탕 이사는 “타오바오가 들어가 지역 농민들이 농산물을 판매할 수 있는 채널이 열렸음은 틀림없지만, 타오바오가 농민들의 상호 협력과 지역 사회 참여를 이끌어 내는 데에는 역부족이라는 지적도 있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프로그램 개발자인 프레다 응(Freda Ng) 이사도 “중국 농민들을 조직화하는 것은 다른 나라의 어떤 농민들의 참여를 이끌어 내는 것보다도 어렵다”면서 “도시농부들 하나하나가 의지를 갖고 자기 이익과 공동체의 이익이 결부되게끔 해야만 하는데, 대부분의 리더들이 좌절하는 부분”이라고 지적했다.
중국 농업 전문가이면서 현지 문화 컨설팅 사업을 하고 있는 김유익 화앤동 컴퍼니 대표는 “중국 도시농업이나 공동체 조직의 특징은 공산당 등 정부 당국과 긴밀하게 일을 하고 있다는 점”이라고 설명했다. 또 김 대표는 “사회주의 국가의 특성 상 공산당 이외 조직을 만드는 것이 불법이기 때문에 당(党)과 정부 관련 활동의 연장 선상에서 도시농업 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상당수”라면서 “정부 당국과의 긴말한 연결이 때로는 또 효과적인 공공 지원을 이끌어내는 원동력이 되는 역설적인 면모도 존재한다”고 지적했다.
카리스마적 리더 없이 도시 농업 공동체 안 된다
김광남 경상남도 6차산업 지원센터 위원은 도시농업공동체로 출발한 마을 기업과 사회적 기업들을 컨설팅한 경험을 살려 “카리스마적 리더 없이 도시 농업 공동체가 굴러가는 경우가 흔치 않다”고 주장했다. 김 위원은 지금까지 약 250여 개 농업 공동체들의 사업을 직접 분석하고 조언해 온 결과 “조직 참여자들이 분쟁을 일으키면서 커뮤니티 비즈니스 자체가 붕괴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결국 강력한 독재자형 리더가 이끌어 주고 참여자들의 행동을 통일시켜줘야 문제가 해결된다”고 주장했다. 행촌공터만 하더라도 노원몬드라곤 협동조합을 이끈 고창록 대표가 6년째 지휘자 역할을 맡고 있고, 무릉외갓집, 농사펀드 등 다양한 농업 분야 공동체 기업들도 강력한 리더십을 바탕으로 유지되고 있다. 이들 리더들은 조직 내부를 통솔하는 역할 뿐만 아니라 중간지원기관, 구청 등과 협력하는 데에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또 김 위원은 “대부분의 6차산업 지원 기관이나 도시농업 지원 기관들이 인건비 보조, 사무실 무상 임대, 재교육 등을 매우 쉽게 보는 측면이 있다”는 점도 꼬집었다. 이들 활동들은 마을 기업과 사회적 기업을 살리기 위해 무조건 지원되어서는 안 되고, 경쟁력과 지속가능성을 갖춘 스타트업들에게 한정적으로 배분되어야 하는 ‘국민 세금’이라는 것이다. 김 위원은 “대부분의 도시농업 공동체가 결국 유령 공간으로 전락하는 전례로 봤을 때, 앞으로는 이들 지원 체계가 매우 정확하고 경쟁 측면도 가미되는 방향으로 바뀌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