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락의 방식대로” .인기 네이버 웹툰 ‘덴마’의 중요한 등장인물 중 하나인 발락이 늘상 입에 달고 하는 말이다. 극중 설정인 종단 3대 광견 중 하나로 꼽히는 그가 무자비한 방식으로 일을 처리할 때 중얼거리는 말인데, 이는 네이버의 현 상황에도 온전히 대입할 수 있다. 로봇과 데이터, 인공지능을 품에 넣는 네이버가 말하고 있다. “모든 것은 네이버의 방식대로”

▲ 송창현 네이버 CTO. 출처=네이버

네이버의 기술 대잔치

네이버는 구글과 같은 포털이지만 운용되는 방식은 약간 다르다. 구글이 말 그대로 방대한 홈페이지의 바다로 통하는 관문, 즉 순수한 의미의 포털이라면 네이버는 이용자에게 자사의 워터파크에서 놀도록 유도하기 때문이다. 굳이 홈페이지의 바다에서 방황할 필요없이, 네이버가 구축한 정제된 콘텐츠의 '가두리 양식장'을 제공한다는 뜻이다. 당연히 협소하고 제한적인 콘텐츠 서비스에 불과하지만 이용자들은 조금씩 중독되어 간다. 이러한 방식은 초연결 시대에서도 재연되는 분위기다.

네이버의 IT 기술 컨퍼런스인 데뷰(DEVIEW)가 16일 막을 올렸다. 지난 2006년 네이버 사내 개발자 기술공유 행사로 시작한 데뷰는 2008년 문호를 개방, 국내외 개발자 모두 참여해 최신 IT 기술동향과 개발 노하우를 공유하며 국내 최대 컨퍼런스로 성장했다. 지난 10년간 누적 1만9900명이 참가했으며, 국내외 기업, 학계 398명의 연사가 364개 세션에서 실전 경험과 노하우를 나눴다.

데뷰는 스몰 비즈니스와 더불어 네이버의 기술기반 플랫폼 전략을 잘 설명하는 무대다. 글로벌 ICT 기업들의 광범위한 생태계 확장에 대응하기 위해 자체 ICT 기술을 매개로 삼아 자체 플랫폼, 나아가 생태계를 구축하는 것이 핵심이기 때문이다. 또 네이버는 기술 스타트업 활성화를 위해 투자하고 지원하는 'D2 Startup Factory'를 통해 지금까지 총 16개 기술 스타트업 투자, 312개 스타트업과 개발자 행사 개최, 891건의 스타트업 미팅 지원 등을 펼치치고 있다.

송창현 CTO는 "네이버는 지난 10년 간 데뷰를 통해 다양한 분야의 최신 기술 트렌드와 개발 노하우를 공유하며 기술 생태계 활성화에 기여하고자 노력해왔다"면서  "앞으로도 더 많은 분야의 현재와 미래를 연결하는 탁월한 기술과 경험을 공유할 수 있도록 아낌없는 지원을 하겠다"고 밝혔다.

올해에도 많은 기술이 선보였다. 화두는 인공지능과 로봇 등을 바탕으로 하는 생활환경지능의 확장이다. 생활환경지능은 일상생활에서 기술이 사람과 상황, 환경을 인지하고 이해해 자연스럽게 사람에게 필요한 정보나 행동을 제공하는 것을 뜻한다. 네이버는 생활환경지능을 구현하기 위해 '인식과 이해기술', 묻기 전에 답·정보 행위를 예상해서 추천하는 '예측 기술', 사람이 기술을 배우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사용이 가능한 '자연스러운 사용자 경험'이 뒷받침되어야 한다고 설명한다.

송창현 CTO는 "네이버는 사용자를 둘러싼 환경을 깊이 이해하고, 기술이 만들어 낼 수 있는 수많은 가능성에 주목하며 삶의 가치를 높이는 기술을 연구하고 있다"고 설명하며, 인공지능, 검색, 브라우저, 자율주행, 로보틱스, 웨어러블 컴퓨터 등 다양한 영역에 대한 연구 성과를 발표했다.

네이버랩스 주도의 다양한 기술이 등장했다. 자율주행 실내지도 제작 로봇 M1 공개에 이어, 올해 업그레이드된 M1은 물론 실내 자율주행 서비스 로봇 어라운드(AROUND), 전동카트인 에어카트(AIRCART), 세계 최초 4륜 밸런싱 전동 스케이트보드 퍼스널 라스트마일 모빌리티(Personal last-mile mobility)를 비롯해 코리아텍과의 산학협력으로 개발한 로봇팔 앰비덱스(AMBIDEX)를 공개했다.

나아가 MIT와의 산학협력으로 치타로봇, UIUC와 산학협력하고 있는 점핑 로봇, 계단을 올라가는 바퀴 달린 로봇 터스크봇, 물체 인식과 자율주행을 지원하는 TT-bot 등 총 9개의 로보틱스 연구개발 성과를 공개했다.

▲ 에어카트. 출처=네이버

자율주행과 관련한 야망도 보여줬다. 국내 최초로 국토부 도로주행 임시허가를 취득해 실제 도로에서 자율주행 실험하고 있으며 레벨3는 물론 레벨4 수준의 자율주행기술을 확보한다는 계획이다. 현재 네이버 자율주행차는 도심 내 GPS 음영지역에서도 자율주행이 가능하도록 차선 기반 자기 위치 인식 연구를 강화하고 있으며 이와 관련된 데이터 확보 작업도 병행하고 있다.

▲ TT-봇. 출처=네이버

이미 공개된 차량용 인포테인먼트(in-vehicle infotainment) 어웨이(AWAY)는 내년 상반기 출시된다.

네이버 송창현 CTO는 "인공지능 기반 기술을 강화하기 위해 국내외 기업과 협업과 연구소 및 대학교와 산학 연계를 통한 공동 연구로 글로벌 시장에서 새로운 기술 혁신을 이어갈 계획이며, 이를 위해 공격적인 기술 투자와 국내외 우수인재도 적극적으로 채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 치타로봇. 출처=네이버

네이버가 인수한 네이버랩스 유럽 소속의 인공지능 권위자들의 등장도 관전 포인트다. 이들은 검색, 빅데이터, 인공지능, 머신러닝 분야 등에서 네이버랩스 유럽이 축적한 수준 높은 연구 결과를 참가자들과 공유하게 된다. 페이스북 AI리서치센터(FAIR)의 디렉터를 역임했던 페론닌(Perronnin)도 모습을 드러낸다. 강화된 네이버 인공지능 인프라를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 네이버 데뷰. 출처=네이버

기술에 관심이 많은 이유

네이버는 한성숙 대표 취임과 동시에 기술 기반 플랫폼 기업을 표방하며 단독 생태계 강화에 나서고 있다. 자연스럽게 ‘글로벌 ICT 기업의 공세에 대항하기 위해 자체 생태계를 구축하고 지켜야 한다’는 전제와 ‘기술을 개발해 많은 이용자들을 유혹, 그 자체로 생태계를 키운다’는 목표가 나온다.

재미있는 대목은 방식이다. 삼성전자가 하드웨어 제조 인프라를 바탕으로 소프트웨어 ICT 인프라를 확장하려 노력하고 있고, 카카오가 철저하게 하드웨어 플랫폼 서비스에 집중해 온디맨드 방식을 구사한다면 네이버는 삼성전자와 카카오의 중간 즈음에 위치해 있다. 삼성전자보다 소프트웨어에 가깝지만 자사의 경쟁력을 카카오만큼 플랫폼에 국한시키지 않기 때문이다.

그 접점의 경계에서 네이버는 철저하게 공간을 파고드는 집요함을 보여주고 있다. 단순히 하드웨어 제조 인프라를 키워 소프트웨어 기능을 탑재하지 않고, 순수하게 온디맨드 플랫폼 사업을 소프트웨어 측면으로 풀어가는 것이 아니다.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의 양 극단을 오가며 각자의 장점을 취할 수 있는 방법을 선택하면서, 또 이를 자신들이 가장 잘 하는 방법으로 엮어내는 재주가 있다.

단적인 사례가 로케이션 홀릭, 즉 데이터 확보에 대한 구체적인 방법론이다. 지난해 M1 로봇에 이어 올해 네이버는 M1 로봇의 대대적인 업데이트를 비롯해 다양한 로봇들을 동시에 공개했다. 이들 중 부산에 위치한 오프라인 서점에 전시된 어라운드, 에어카트처럼 당장 실생활에 적용될 수 있는 로봇도 있지만 대부분은 실생활 적용보다 ‘실생활에 적용될 수 있는 기본적인 로봇’에 국한되어 있다. 점프하거나 팔을 작동하는 로봇 등이 대부분이다.

이는 네이버가 로봇의 개발, 그에 수반되는 인공지능 기술력의 확보로 ‘인공지능의 일차적 활용, 혹은 로봇의 판매’에 집중하고 있지 않다는 점을 시사한다. 네이버를 인공지능 로봇 제작사로 부를 수 없다는 뜻이다.

로케이션, 즉 위치정보를 통한 빅데이터 회사로 네이버를 이해해야 하는 이유다. 네이버는 인공지능 스피커, 로봇, 자율주행차 등에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지만 직접적인 시장진출에는 미온적이다. 다만 이러한 서비스들을 생활환경지능 서비스로 묶어 네이버의 생태계에 자연스럽게 데이터가 흘러들어오게 만드는 것에 관심이 많다. 최근 송창현 CTO가 “자율주행차의 직접적인 개발에 나설 생각은 없다”고 선을 그은 장면과, 올해 3월 3D 맵핑 기술 관련 스타트업인 에피졸라를 인수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올해 데뷰에서 많은 관심을 모으고 있는 웨어러블 디바이스 ‘아키(AKI)'가 단적인 증거다. 네이버는 따로 시간을 할애해 아키의 성능과 제원을 설명했는데, 사실 아키야 말로 네이버가 꿈꾸는 생활환경지능의 결정체이자 단기적 관점의 최초 목표점이다.

아키는 네이버랩스가 자체 구축한 WPS 데이터와 개인화된 위치 학습(personalized wifi fingerprinting)기술을 기반으로 GPS가 약한 실내공간에서도 자녀의 정확한 위치정보를 부모에게 제공하는 것이 핵심이다. 또한, 머신러닝을 활용해 사용자가 반복 방문한 장소 시간 상황을 스스로 인지하고 아이의 생활 패턴을 학습해 학원이나 학교 도착 여부와 특정 경로 이탈 여부 등을 보다 정확하고 편리하게 확인할 수 있다.

▲ 아키. 출처=네이버

공료롭게도 이날 삼성전자와 KT는 NB-IoT(Narrow Band IoT) 네트워크 기반의 안심 스마트 위치 알림이 '커넥트 태그(Connect Tag)'를 공개했다. 네이버의 아키와 비슷한 커넥트 태그는 자녀 안심귀가, 반려동물 위치파악, 개인 사물(자산)위치 추적, 여행시 휴대품 위치 파악 등 다양한 위치정보 기반 서비스에 폭넓게 활용할 수 있다.

결국 아키와 커넥트 태그 등은 단말기를 팔아 수익을 올리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닌, 데이터를 확보해 의미있는 파생 서비스를 구축하기 위함이다. 네이버는 인공지능과 로봇을 목표로 삼는 것이 아니라, 이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데이터를 확보하는 방향성을 보여주고 있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 데뷰를 관통하는 핵심 키워드다.

▲ KT의 커넥트 태그. 출처=KT

네이버로 헤쳐모여..통할까?

기술을 개발해 생태계를 만들고, 그 연장선에서 생활지능서비스를 키워드로 삼아 로봇과 인공지능을 활용해 지역 정보를 확보하고 데이터를 모으는 것이 네이버의 진짜 노림수다. “신기하다”는 일반적인 탄성이나 “네이버의 로봇이 잘 팔리겠는걸”이라는 반응은 1차 효과에 불과하다.

문제는 네이버의 방식이 통하느냐다. 앞에서 설명한 네이버의 방식이 결실을 맺으려면 크게 두가지 숙제를 풀어야 한다. 바로 ‘이용자들을 유혹할 수 있을 정도의 기술적 가치가 존재하느냐’와 ‘포털에서 성공한 네이버의 방식이 초연결 생태계에서도 이어질 수 있을 것인가’이다.

전자의 경우 오로지 네이버랩스의 어깨에 달렸다. 아무리 네이버가 대기업이라고 해도 구글과 애플, 페이스북 등 거대 ICT 기업만큼 만큼의 자본력을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에 특화된 틈새전략을 구사해야 한다는 말만 나올 뿐, 이 전략의 성공여부는 오로지 네이버랩스의 몫이다.

후자의 질문은 다소 복잡하다. 구글은 안드로이드 생태계를 구비하기 위해 서울을 비롯해 각지에 구글 캠퍼스를 설립하고 API를 공유하고 있다. 안드로이드라는 범용적인 생태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소위 말하는 ‘후진양성’에도 유리하다.

그러나 네이버는 최근 글로벌 서비스에 시동을 걸었으나 지역의 한계가 명확한 편이다. 여기에 ‘자사 플랫폼을 강화하기 위해 우리 생태계로 역량을 집결시킨다’는 특유의 방식을 포기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상황이 더 꼬이고 있다.

포털의 초기경쟁시기 네이버는 콘텐츠를 통한 길을 열어두는 대신 자신들이 ‘맛있는 콘텐츠’를 직접 만들어 이용자들에게 제공하는 방식을 택했다. 우연의 일치겠지만 초연결이라는 ‘모든 것이 연결되는 시대’를 맞아 이제 자체 플랫폼 강화의 트렌드는 예전의 네이버가 보여준 방식으로 수렴되는 중이다.

네이버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방식이지만, 오픈된 콘텐츠 집합체를 택한 다수의 글로벌 ICT 기업은 초연결 경쟁에서 이미 앞서있다. 초기 네이버가 자리를 잡게 만들어 준 소위 ‘가두리 양식’이 현재에 이르러 글로벌 ICT 기업의 수직계열화 전략으로 전환된 상태에서, 가두리 양식으로 한정된 자원만 움직인 네이버는 역설로 가두리 양식이었기 때문에 스펙트럼이 넓은 글로벌 ICT 기업과 불리한 싸움을 시작하고 있다.

아무리 네이버가 잘하는 방식이지만 경쟁의 판이 너무 커졌다. 네이버는 “네이버의 방식”을 지속적으로 끌고갈 수 있을까. 앞으로의 관전 포인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