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덕수 한국신호공사 대표. 출처=이코노믹리뷰 박재성 기자

1877년 보잘것없는 집안에서 태어나 초등학교 졸업이 학력의 전부인 아프리카계 미국인 발명가 가렛 모건(Garrett Morgan). 그는 마차와 자동차의 끔찍한 추돌사고를 목격한 후 신호등을 디자인하기로 결심했다. 체계적인 디자인과 설계를 통해 모건이 세상에 내놓은 신호등은 오늘날에도 실생활에서 사용되고 있다. 모건은 수리와 발명에 천부적 재능을 타고나 수석 수리공 자리를 차지했으며, 오하이오주 클리블랜드에서 여러 건의 계약을 따낸 이력도 있다.

‘신호등’은 전 세계 어느 곳이든 같은 모양, 비슷한 의미를 담은 공통 지표로 쓰인다. 교차로와 도로 등지에서 교통질서를 위해 색으로 교통조건을 나타내는 자동 점등 장치로, 보행자와 운전자의 교통안전과 교통질서를 확립하는 중요한 교통 요소 중 하나다.

신호등 이외에도 도로상황과 지표를 나타내는 표지판은 크게 ▲주의 표시 ▲규제 표시 ▲지시 표시 3가지로 구분되는데 그 종류는 수십 가지에 이른다.

이런 발명품을 만든 모건 같은 이는 한국에도 있다. 4차산업시대에 발맞춰 융·복합형 교통안전 혁신제품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김덕수 한국신호공사 대표는 한국의 가렛 모건이라는 평을 듣고 있는 발명가 겸 기업인이다.

김 대표가 몸담고 있는 한국신호공사는 이름만 보면 공기업인 것 같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교통안전시설물을 전문으로 제작해 설치하는 중소기업으로 1995년 10월 설립해 업력이 20년을 조금 넘긴 청년 기업이다.

한국신호공사는 기술로 지난 20년 세월을 버티며 성장했다. 2009년 5월 중소기업청장 표창을 받았고, 2014년 11월 대한민국발명특허대전에서 미래창조과학부장관 금상 수상, 지난해 12월 교통문화발전대회 국토교통부장관표창을 받았다. 지난 9월엔 ‘LED투광등과 카메라가 장착된 횡단보도 조명식 표지판’이 4차산업 시대에 적합한 융·복합형 다기능 혁신제품이라는 공로를 인정받아 2017년 중소기업 기술혁신대전에서 산업포장을 수훈했다.

그가 개발한 제품이 어떤 혁신성이 있길래 국가가 훈장을 주는지 궁금해 경북 김천혁신도시 집무실로 찾아갔다. “왜 이런 표지만을 만들었냐”고 묻자 김 대표는 자신 있고 확신에 찬 목소리로 답했다. 그는 “교통시설업에 몸담은 지 30년이 넘었다”면서 “교통사고는 사회에서 끊이지 않고 나타나는 인재 중 하나인데 이를 예방하는 데 주력해야 한다”고 말문을 텄다.

▲ 김덕수 한국신호공사 대표. 출처=이코노믹리뷰 박재성 기자

도로교통공단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횡단보도 사고 1위라는 부끄러운 기록을 갖고 있다고 그는 꼬집었다. 강도와 성범죄 같은 각종 사건은 사회적 문제로 보도되지만 이보다 수십 배나 많은 피해를 내는 교통사고는 단순한 과실로 치부돼 주목받지 못하는 현실이 안타깝게 여겨졌다고 했다.

여기에 교통시설(표지판)·투광등·CCTV가 무분별하게 설치돼 예산을 낭비하고 도심 미관을 해칠 뿐 아니라 빛공해가 교통사고를 유발하고 있는 현실을 개선해야겠다는 결심이 섰다고 그는 털어놨다. 오랜 현장경험을 바탕으로 실생활에 도움이 되면서 시민의 안전에 기여할 수 있는지를 최우선 순위에 두고 연구개발을 시작했다. 연구개발에 매달린 지 7년 만에 탄생한 것이 바로 ‘LED 투광등과 카메라가 장착된 횡단보도 조명식 표지판’이다.

김 대표가 직접 개발한 ‘LED 투광등과 카메라가 장착된 횡단보도 조명식 표지판’은 일반국도와 시군도, 지방도, 교차로, 어린이·노인보호구역의 횡단보도 표지판이 필요한 곳을 비롯해 교통사고가 잦은 곳과 교통사고 방지와 정보수집이 필요한 모든 곳에 적용할 수 있는 장점을 갖고 있다고 자부했다.

김 대표는 “오랜 실무경험과 직접 운전하고 길을 다니며 실제 운전자와 보행자들의 고충을 이해한 게 큰 도움이 됐다”면서 “특히 교차로나 지방 산업도로 등을 살펴보면 횡단보도 표지판, 신호등, CCTV 등이 한 곳에 여러 개 뒤섞여 있어 빛공해를 유발하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LED 투광등과 카메라가 장착된 횡단보도 조명식 표지판’은 LED 표지판과 LED 투광등, CCTV를 하나로 합친 ‘일체형’ 표지판으로 예산 절감과 미관 개선, 빛 공해를 한꺼번에 해결할 수 있는 신개념 교통표지판이라고 그는 소개했다.

우선 표지판에 LED를 적용해 눈부심이 없다. 운전자는 주‧야간 원거리에서 횡단보도 존재 여부를 또렷하고 확실하게 파악할 수 있다. 교통사고 예방에 탁월한 효과를 내는 이유다. 투광등 역시 최적화된 컷오프배광방식을 적용해 운전자의 눈부심이 없도록 설계했다.

또 표지판 아래 일체형으로 설치된 CCTV는 앞뒤로 모든 것을 실시간으로 촬영할 수 있다. 신호등 시그널을 받아 신호에 따라 따로 녹화도 가능하다. 교통신호주기(차량신호·보행신호)에 따라 전·후방 상황을 저장하기도 한다. 이 덕분에 교통사고 분쟁 시 중요한 자료로 쓰인다. 또 와이파이 접속이 가능하며 HD급 고화질, 넓은 시야까지 확보할 수 있어 ‘포청천’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다고 한다.

표지판은 그가 기대한 효과를 제대로 발휘했다. 한국신호공사가 있는 김천시에 ‘LED 투광등과 카메라가 장착된 횡단보도 조명식 표지판’이 설치된 이후 신호위반과 증거 확보가 어려운 접촉사건 등 300여건의 교통사건이 해결됐다. 뺑소니범과 사건 해결이 어려운 교통사고 보험사기단, 횡단보도 인근 금은방 도난사고 등도 일망타진됐다.

▲ 김덕수 한국신호공사 대표. 출처=이코노믹리뷰 박재성 기자

김 대표는 “제품에 들어가는 것 하나하나 직접 손으로 개발하고 만들어낸 것”이라면서 “어떻게 하면 운전자와 보행자의 교통안전에 기여할 수 있는지를 연구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수십 번 시제품을 만들어 시험한 후 최종 제품을 완성했다고 덧붙였다. 계절과 날씨가 표지판 무게에 주는 영향까지 모두 검토했다고 한다. 제품 하나를 만들어 한 번 테스트하는 데 1년 넘게 걸리는데, 이번 제품 역시 이런 과정을 수십 번 거쳤다. 그래서 제품이 빛을 보기까지 오랜 기간이 걸렸다.

김 대표는 “정말 스스로 원하는 일이고 직접 만들어낸 제품이 실제 교통안전에 도움이 된다는 사실 자체가 너무 보람 있다”면서 “이 때문에 평생에 걸쳐 해온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회사가 벌어들이는 수익 대부분을 무조건 연구개발에 쏟아 붓는다”면서 “땅을 사고, 집을 사는 일도 좋지만 조금이라도 더 연구개발에 투자해 좋은 제품을 만들어내는 것을 최우선으로 삼고 있다”고 소신을 밝혔다.

김 대표는 1980년대부터 서울 세운상가에서 교통신호 컨트롤박스 신호 관련업을 시작했다. 이 제품 하나로 그는 특허는 물론 장관상 3개에 산업포장까지 받는 등 기술력 하나는 빼어난 기술자로 명성이 높았다.

그는 “저 개인에게도 아주 기쁜 일이지만 저의 노력과 인생을 쏟은 제품이 시민들의 안정과 사고 예방에 도움이 된다는 것을 인정받았으니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하다”고 겸손하게 말했다. 김 대표는 이어 도로교통법상 도로교통 설치물의 설치권자가 각각 다른 현재의 제도는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국토부는 표지판을, 경찰청은 교통 관련 표시판을, 그리고 지자체는 CCTV와 같은 도로시설물 등을 각각 맡고 있다. 이 때문에 경찰청은 해당 제품을 조건부로 허용하고 국토부는 권장하고 있으며 지자체 역시 제각기 다른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김 대표는 “국민의 안전과 교통사고 예방을 우선순위로 생각한 관련법 개정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