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원회가 장기 시효 완성채권을 모아 소각하는 `포용적 금융` 정책을 적극 펼치고 있는데, 금융위 산하 예금보험공사는 시효 완성을 앞둔 채권에 소송을 걸어 만기를 연장, 추심을 일삼고 있다.  

정부는 시효완성 채권을 모으는데 신경쓰는 사이, 산하 기관은 소송까지 동원해가며 시효 연장시킨뒤 사회적 약자인 채무자를 괴롭히고 있는 것이다. 

14일 주빌리은행에 따르면, 경기도 산본에 거주하는 H씨(52세·여)는 최근 예금보험공사로부터 지급명령을 받고 남편이 알까 봐 전전긍긍하다 지인을 통해 주빌리 은행을 찾아왔다.  

H 씨는 지난 2001년께 당시 형부인 L씨가 경북 김천 소재 지례신협에서 대출받은 1억원에 대해 보증을 서게 됐다. 형부의 간곡한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고 H씨뿐만 아니라 H씨의 조카 2명도 함께 보증을 서게 된 것.

하지만 수개월 후 이 신협이 파산했다는 소식을 듣고 보증을 선 대출금 처리를 문의하러 찾아갔지만, 파산한 신협에는 직원들이 출근하지 않아 돌아왔다.

이후 형부 L씨와 H씨 언니는 이혼을 했고, H씨와 조카들은 보증 선 대출금을 잊고 지냈다.

그로부터 6년여가 지난 2008년 7월, 예보가 H 씨와 조카들에게 지급명령을 신청하고 급여를 압류했다. 당시 H 씨는 관련 법절차를 알지 못해 이의신청을 하지 못했다. 다만 이들은 약 1500만원을 상환했고, 협의 끝에 압류조치를 풀었다. 

H 씨는 그 일이후 수년 동안 자신의 명의로 일절 금융거래를 하지 않았다. 이후 10년 가까이 아무런 법적 움직임이 없자 H 씨는 요양보호사 일을 하면서 소득활동을 했다.

그런데 지난 8월 24일 예보는 다시 H씨의 통장을 압류, 530만원을 인출해갔다. 예보가 10년만에 다시 강제집행을 한 것. 

소멸시효 완성을 불과 한 달 앞두고 생긴 일이다. H 씨는 지난 9월 19일 법원으로부터 지급명령 결정문도 받았다. 예보가 시효를 연장하기 위해 지급명령을 신청 한 것.

H 씨는 "14년 동안 신용거래를 하지 못하고 전전긍긍하며 살았는데,  소멸시효를 한 달 앞두고 지급명령이 떨어지는 바람에 다시  10년 동안 경제생활을 하지 못하게 됐다"며 "당시 보증 선 20대 조카들은 청춘을 신용불량자로 살았고, 이 일로 남편과의 사이도 벌어져 고통이 크다"고 하소연했다.

시효완성 한 두 달 남긴 채권,  10년 고통을 또 연장시키나

가계부채 문제를 두고 시효가 완성된 채권을 소각하는 `포괄적 금융`정책 논의와 실행이 활발하다. 

하지만 H씨 사례처럼, 일각에서는 이미 시효가 완성된 채권을 소각하는 일 만큼 시효가 계속 연장되는 상황을 통제관리 하는 것도 중요하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사실상 무기한으로 경제활동을 제약하기 때문이다. 

시효완성을 앞두고 얼마나 많은 채권이 시효 연장되는지를 조사한 통계도 없는 실정이다.  시효연장이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다는 안이한 인식에다, 시효완성 후 채권에 대해서만 정치권에서 공론화됐을 뿐이다. 

H 씨처럼 채권자가 법 집행을 장기가 행사하지 않아 정상적으로 경제활동으로 복귀를 하게 된 상황에서 통장압류 등의 조치를 당하기 때문이다. 

상법상 5년 또는 10년 동안 법률행위가 없으면 채권은 소멸한다. 이 시간이 다가오기 전 다시 법률 조치를 하면 채권은 살아나 시효가 다시 10년으로 늘어난다. 그런데 예보 같은 금융공기관이 10년 기간 만료를 앞두고 다시 시효 연장이라는 법조치를 취하면서 경제활동을 봉쇄해버린 것이다. 

H 씨를 상담한 주빌리은행의 관계자는 "채권자가 시효를 계속 연장하는 조치는 법적으로 문제가 없지만, 시효가 완성된 채권과 시효를 한두 달 남긴 채권은 질적으로 무슨 차이가 있는지 의문"이라고 주장했다.

이 관계자는 "문재인 정부가 장기 10년 소액채권의 탕감 정책을 내놓는 한편, 죽은 채권의 부활을 금지하는 입법안이 국회에서 계류 중인 상황에서 금융 공공기관인 예금보험공사가 시효완성이 임박한 채권에 강제집행과 시효 연장 조치를 한 것은 가계부채 문제 해결에 정부 의지가 있는지 의문이 들게 만든다"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