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와 IT(정보통신) 융합 시대다. 미국·독일·일본을 비롯해 중국까지 친환경차와 자율주행차로 대표되는 미래차 산업 육성을 위해 업종간은 협업을 골자로한 정부 주도형 로드맵이 완성되고 추진 중이다. 

아직까지 한국 기업이 미래차산업 선두그룹에 포진돼 있다는 소식은 전해진바 없다.  세계 기업들이 내놓은 수준을 반걸음 뒤에서 쫓고 있는 모습이라는 것이 그나마 가장 후한 평가다. 반도체부문 세계 1위, 완성차 판매 세계 5~6위를 차지하고 있는 삼성전자와 현대·기아차를 자국 기업으로 보유하고 있는 한국의 선택에 관심이 커지고 있다.

최근 골드만삭스는 미래산업 전망을 통해 자율주행차(부품포함)세계 시장 규모가 2015년 30억달러(약3조4000억원)에서 2020년 1890억달러(약 214조원)를 거쳐 2035년 2900억달러(약 340조원)규모로 급성장할 것으로 예측했다. 특히 골드만삭스는 미래 성장가능성이 가장 높은 산업으로 자율주행차 산업을 지목했다. 현재 글로벌 시장을 선도하는 IT와 자동차산업의 융합이 바로 자율주행차산업이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한국이 세계적인 IT, 완성차 제조업체를 보유하고 있는 등 좋은 인프라를 갖추고 있으면서 자율주행차 산업부문에서 해외에 뒤처져있는 가장 큰 이유를 ▲컨트롤타워·전략부재 ▲업종간 배타적 순혈주의로 인한 협업부재를 꼽고 있다.

째깍째깍 흘러가는 자율주행 ‘골든타임’

자율주행차는 운전자없이 도로를 알아서 주행하는 인공지능(AI)기술을 탑재한 자동차다. 미국 도로교통안전국(NHTSA)는 자율주행차 기술을 레벨 0~4까지 총 5단계로 구분해 놓고 있다.

2017년 현재, 업계 최고 수준은 제한적 자율주행(운전자 착석)이 가능한 레벨3 수준이다. 독일, 미국 자동차 업체들이 레벨 3수준으로 평가받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자율주행차를 생산하고 있는 현대·기아차의 수준은 레벨 2~3단계 사이다. 2개이상의 자율주행기능이 작동하고 있는 가운데 제한적 자율주행이 가능한 수준이다. 현대차가 지난 2015년말 선보인 제네시스 EQ900과 아이오닉에 ASAD(차로 이탈 경보 시스템 등 운전자 지원 시스템) · HDA(고속도로 주행 지원 시스템) 등이 레벨 2 수준의 대표적 장치들이다.

<자율주행차 기술 5단계> 

▲ 자료제공=서울대 스마트시스템연구소.

전문가들은 장치가 개발되고 상용화됐다고 레벨 3이나 4에 진입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검증 절차가 남아있기 때문이다.

홍성수 서울대 전기컴퓨터공학부 교수는 “새로운 시스템이 상용화되기 위해선 객관적 판단기준인 실패율이 나와줘야 한다”며 “완전자율주행시 횡단보도위에 사람이나 사물 인지(認知)성공률이 '90%다, 98%이다' 라는 식의 데이터가 있어야 상용화 검증이 가능한데 아직 그렇게 데이터를 확보한 업체는 하나도 없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곧 실험 데이터가 입증된 기술들이 나오고 여러 시행착오를 거치겠으나 자율주행차 상용화의 전제조건이 도로교통법 등 제도적 정비가 필요한만큼 제한적 자율주행인 레벨3 기술 수준에서 상용화가 먼저 시작할 가능성이 높다”며 “운전자의 조작이 전혀 필요없는(운전자 미착석) 레벨4 수준은 개발은 되도 상용화되는데 까진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즉 기술이 개발되도 사회적으로 그 기술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기 위해 합의하는 기간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지금 세계는...

세계 완성차 및 IT 제조기업들이 자율주행차 개발을 위해 뭉치기 시작한 건 이미 5년이 넘었다. 내연기관이나 첨단IT기술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세계는 지금 융합과 산업간 협업에서 답을 찾으려 애쓰고 있다.

▲ 메르세데스벤츠가 지난 2015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 열린 'CES2015'에서 선보인 전기동력 자율주행 콘셉트카 'F-015'. 차내를 거실처럼 편안한 휴식공간으로 만들어놓고 오른쪽 좌석뒷편 작은 스티어링(핸들)만 덩그러니 보이는 것이 인상적이다. 사진제공=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

지난 2015년 제네바모터쇼에 참석한 디터 제체 다임러그룹 회장 겸 메르세데스 벤츠 CEO(유럽자동차공업협회장)는 “구글이나 애플이 다임러그룹에서 스마트폰을 만든다고 걱정하지 않는 것처럼 우리도 애플이나 구글이 두렵지 않다”고 말했다.

그러나 속내는 그렇지 않았다. 독일의 VDA(Verband der Automobilindustrie·자동차 제조·부품·IT포괄 단체)는 실리콘밸리 IT업체들을 연못안에 들어 온 올챙이로 비유하며, 기존 연못에 군림하던 물고기(완성차업체)들이 언젠가 황소개구리로 몸집을 키운 올챙이(실리콘밸리IT업체)들에게 먹히게 될 것이라고 예측한바 있다.

▲ 그래픽=서울대 스마트시스템연구소

세계 최고기술을 자랑하는 독일의 완성차업체들이 실리콘밸리를 두려워하고 있다는 얘기다. 미래차 시장에서 위기감을 느낀 독일이 정부와 기업이 힘을 합쳐 연합군 형성에 열을 올리고 있는 이유다. 독일에서는 현재 이 같은 노력을 통해 10여년전만해도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 현실에서 일어나고 있다.

메르세데스 벤츠를 생산하는 다임러그룹과 BMW, 폭스바겐이 주축이돼 컨소시엄을 구성, 부품업체인 보쉬, 콘티넨탈 핀란드의 노키아 등 350여개 업체와 협업체제를 만들어냈다. 실리콘밸리의 공격을 연합전선을 구축, 맞선다는 복안이다. 이미 이들은 지난 2013년부터 전장부품 표준모델인 ISO26262를 만들어 이 기준을 충족하지 못한 전장부품업체들의 진입을 차단하기 시작했다. 후발 주자로 나선 전장부품 및 미래차 기업들은 이들이 시장을 장악한 후 애플과 안드로이드가 휩쓸고 간 후 스마트폰의 노키아나 모토롤라로 전락할 수 있다. 

미국은 실리콘밸리에 세계 최강이라는 250만명에 달하는 IT인력을 보유하고 있다.(한국에 IT전문인력은 약 25만명으로 추정된다.) 미국은 구조적으로 실리콘밸리가 미래차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테슬라, 구글, 애플 등이 전기차와 자율주행차의 선도업체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한국의 10배에 달하는 IT고급인력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GM‧포드라는 든든한 완성차업체를 보유하고 있는 미국이 현재 미래차산업 예측서 유일하게 독일을 앞서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는 이유는 실리콘밸리라는 든든한 버팀목이 버티고 있어서다. 결국 미래차산업은 IT 병력의 후방지원없이 불가능하다는 의미다. 

일본의 도요타는 지난 12일 앞으로 10년내인 2020년 중반까지 생산차종을 현재 60여종에서 30여종으로 대폭 줄인다고 밝혔다. 이 소식을 보도한 니혼게이자이신문은 도요타가 미래차 연구개발에 집중하기 위한 방안인 것으로 분석했다.

이에앞서 도요타는 파나소닉과 합작해 자국내 업종간 성공적인 협업모델을 제시한바 있다. 이 두 회사는 배터리 회사 ‘PEVE'를 설립, 도요타 프리우스를 개발했고 전기차 부문에서 현재 선두를 달리고 있다. 뿐만 아니다. 보수적인 일본 자동차 업계조차 2014~2015년에 걸쳐 연대를 완성했다. 도요타·닛산·혼다 등 자동차 업체 6곳, 덴소·파나소닉 등 부품 회사 6곳이 고정밀 3차원(3D) 지도 등 자율주행에 필요한 8개 기술 분야에서 힘을 합치고 있다.

▲ 일본 도요타가 지난 1월 열린 미국 라스베이거스 'CES2017'에서 선보인 인공지능기반 콘셉트-i 자율주행차 ‘유이’ (Yui). 사진제공=한국도요타.

일본은 세계 최고 수준의 안정된 기초과학기술과 제조업을 보유하고 있는데다, 지속적인 산업간 융합기술을 만들어내고 있다. 결코 자율주행차시장의 약자로 분류할 수 없다.

5년전만해도 미래차 시장에서 중국을 거론하는 전문가들은 없었다.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정부 지원의 막강한 자본력으로 중국이 세계 유수의 완성차업체들을 인수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중국의 지리(Geely)자동차는 지난 2010년 볼보자동차를 미국 포드사로부터 인수했다. 지난 6월에는 말레이시아 국민차 브랜드 프로톤을 인수했다. 프로톤은 영국의 로터스 대주주사다. 이로써 중국의 지리자동차는 글로벌 브랜드인 스웨덴의 볼보와 영국의 로터스의 주인이됐다. 게다가 말레이시아 국민차업체 프로톤까지 인수, 일본차가 주도하고 있는 동남아시아시장 공략도 용이하게됐다.

지금 한국은...

삼성전자가 반도체사업을 세계 1위로 끌어올린 원동력은 기술력에서 한걸음 앞서 가겠다는 도전이었다. 누구나 쉽게 생각할 수 있는 얘기지만 산업계에서는 쉽지 않다. 학계에서는 선행기술을 만드는 것을 노름에 비유하기도 한다. '하이리스크 하이리턴' 논리를 넘어 실패시 흔적도 남지않을 수 있다는 공포에 비견된다. 

현대차그룹은 10여년전 자동차 글로벌 5위 생산업체로 등극했다. 원동력은 품질경영과 대량생산체제 였다는 데 이견이 많지 않다. 여기에 더해 또 하나 글로벌 톱5의 원동력이 있다. 그것은 보쉬, 컨티넨탈 등 보험과같은 안정적인 부품업체들의 납품이었다.

2008년부터 현대차의 발전과정을 연구하고 있는 홍 교수는 “현대차의 성장 원동력 중 빼 놓을 수 없는 것은 이미 글로벌 부품업체들(보쉬, 컨티넨탈 등)이 메르세데스벤츠, BMW 등에 납품해 상용화된 고급사양 부품 목록을 들고오면 몇가지 첨단 부품을 사들여 신차에 적용하는 방식이었다”며 “대량 생산이 가능한 시스템을 갖춘 후 최고급차종에 들어가는 최고급 사양 중 몇 개를 적용시켜 저렴한 가격으로 글로벌 시장에서 승부한 것이 주효했다”고 평가했다. 이같은 신차개발 전략은 글로벌 중저가 자동차시장에서 성공적인 경영전략으로 평가받기에 충분하지만 결코 세계 1위로 올라 설 수 없는 한계를 갖고 있다. 선도적 기술적용은 이뤄질 수 없는 한계를 안고 있기 때문이다.

"자율주행차, 천재일우(千載一遇)기회"
"車 발명 후 첫 패러다임 전환기인데..."

자동차업계에서는 5~6년전만해도 우리나라가 미래차 시장에서 해볼만하다는 자신감이 넘치기도 했다. 이에 전문가들도 동조했었다. 근거는 간단했다. 삼성전자, LG전자, LG화학, 삼성SDI 등 현대·기아차와 함께 탄탄한 IT, 리튬이온 배터리 기업들을 보유한 세계 유일의 국가라는 자부심이 있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한국이 자동차가 만들어진 이래 처음으로 자율주행차 개발을 선점해 유럽과 미국을 앞지를 절호의 기회를 잡았다라는 전망도 나왔었다. 그러나 2017년 이같은 장밋빛 예측은 자취를 감췄다.  

▲ 자료제공=서울대 스마트시스템연구소.

세계 주요 완성차 생산국가들이 정부 주도의 컨트롤타워를 만들고 산업간 융합체제를 갖추고 있는 동안 한국은 아직도 기업간 순혈주의 전통을 유지하며 산업간 '협업'은 커녕 등을 돌리고 있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전 정권이었던 주형환 장관시절 ‘자동차융합얼라이언스전략포럼’ 을 만들고  미래차산업 로드맵을 내 놓는 듯했지만 정권이 바뀐 후 벤처·중소기업육성에 우선순위를 빼앗긴 모습이다.

▲ 현대차는 지난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 2017’을 맞아 아이오닉 자율주행차로 라스베이거스 시내를 관통하는 야간 자율주행을 실시한 결과, 자율주행 기술 구현에 성공했다고 밝혔다. 자동차전문가들은 현재 현대차의 미래차기술수준을 미국도로교통안전국 분류기준 레벨 2 수준으로 평가하고 있다.  사진제공=현대차.

현대차그룹은 지난해 오는 2018년까지 2조원을 자율주행차 등 미래차 산업 연구개발비에 투자하겠다고 발표한 후 자율주행차관련 새로운 로드맵을 내놓고 있지 않다. 일개 기업입장에서 2조원 규모의 연구개발비 투자는 클 수 있지만, 글로벌 완성차업체와 IT업체들의 자율주행차에 대한 연구개발비 투자 수준과 비교하면 결코 많다고 할 수 없다. 

전장부품사업에 관심을 내비친 삼성전자·LG전자 등은 주력산업으로 자율주행차 전장부품개발에 뛰어들지 저울질 중이다. 그동안 이들 업체가 시험삼아 개발한 전장부품들은 독일과 미국 완성차업체가 주요 납품처다. 현대·기아차에 납품되는 것은 전무하거나 일부에 그치고 있다. 이 같은 상황은 배터리업체들도 마찬가지다.

홍 교수가 한국의 미래차 산업을 걱정하면서 남긴 말은 최근 자율주행차관련 취재과정에서 전문가들로부터 들은 얘기 중 가장 인상적이었다.

“현대차그룹은 바뀌어야 하는데 그동안 그들만의 자긍심이었던 ‘품질경영’과 ‘완성차생산 수직계열화’의 덫에 갖혀있는 듯 합니다. 최고만을 추구하는 ‘품질경영’ 정신은 업종간 협업과 M&A까지 아우르는 오픈이노베이션(열린혁신)의 걸림돌이고, 철강에서 완성차생산, 할부금융서비스까지 자동차관련 수직계열화는 자율주행차시대의 수평적 협업체계의 장애가 되고 있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