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노연주 기자

이게 다 라이카 때문이다. 라이카가 아니었다면 P9을 만나게 되지 않았을 거다. P9은 화웨이 플래그십 스마트폰. 후속 P10이 나온 마당이니 구형 모델이다. P9과 내가 함께한 지 8개월가량이 지났다.

P9을 구입한 이유는 명확하다. 화웨이가 독일 카메라 브랜드 라이카와 협력해 제품에 들어가는 카메라를 개발했단 얘길 듣고는 지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수백만원에 달하는 라이카 카메라를 50만원 돈에 만나볼 수 있다니.

P9이 세상에 나왔을 때 이런 소문도 나돌았다. 라이카가 화웨이한테 돈 받고 브랜드만 빌려줬다고. 두 브랜드는 성명까지 발표하며 루머를 잠재웠다. 공동 기술 개발을 통해 ‘라이카룩’을 실현하려고 힘썼다는 설명이다. 라이카룩은 라이카 카메라로 찍은 사진에서 나타나는 고유한 특징을 의미한다.

P9이 출시되자마자 지른 건 아니다. 이전 휴대폰 할부가 끝나갈 무렵을 기다렸다가 해외 구매 대행으로 사들여 개통했다. 국내 출시를 하지 않은 ‘세라믹 화이트’ 컬러를 사고 싶어 굳이 구매 대행을 했는데 재고가 없어 결국 ‘미스틱 실버’ 모델을 산 게 흠이다. 후회는 없다.

난 P9을 반은 스마트폰, 반은 카메라로 생각했는지 모른다. 제품을 손에 넣은 후 사진을 찍어대기 시작했다. 남들 보기에 결과물이 어떻든 상관하지 않았다. 라이카 카메라 셔터음을 녹음했다는 촬영 버튼 사운드를 들으며 스스로 만족했다.

‘폰토그래퍼(Phone+Photographer)’라는 괴상한 조어도 스스로 만들어냈다. ‘굳이 무거운 DSLR 카메라로 사진 찍을 필요 뭐 있나. P9으로도 충분한데! 난 이 폰과 폰토그래퍼가 되겠어.’ 이런 정신을 담았다고 할까. 아마추어 폰토그래퍼의 열정은 한동안 지속됐다. 지금은 차게 식었지만.

심지어 ‘나는 폰토그래퍼다!’라는 제목의 글도 썼다. 그렇다면 왜 8개월이 지난 시점에 P9 얘길 다시 꺼내는가. 내 일상과 함께하며, 지겹도록 셔터를 눌러대면서 느낀 점을 공유하기 위해서다. 한때 가질 수 없던 이름이었지만, 내 손으로 들어온 라이카에 대한 예우일지도 모르고.

P9은 눈이 2개다. 듀얼 렌즈가 요즘엔 흔하지만 당시만 해도 그리 쉽게 찾아볼 수 있진 않았다. 여기서 킬링 포인트 하나. 둘 중 하나는 흑백 카메라 모듈이다. 사람들은 ‘라이카’라고 하면 흑백사진을 떠올리는 경우가 많지 않나.

처음엔 주구장창 흑백사진만 찍어댔다. 컬러사진도 가끔 찍었지만 세상 모든 색감이 어딘지 안 예쁘게 느껴지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그만큼 라이카폰 P9은 매력 넘치는 흑백사진을 찍을 줄 아는 물건이었다.

그 다음 마음에 드는 건 아웃포커싱. 대개 폰카메라로는 심도가 얕은 사진을 얻기 힘들다. 배경을 흐려 초점 맞은 피사체만 부각시킨 사진 말이다. P9으론 이게 가능하다. 심지어 사진을 찍은 뒤에도 심도를 조절할 수 있다. 초점 위치를 바로잡을 수도 있고. 이런 면에선 카메라보다 낫다.

아웃포커싱 기능은 음식 사진을 찍을 때 발군이더라. 하드웨어가 아닌 소프트웨어 조작으로 심도를 표현하니 한계가 있긴 하다. DSLR 카메라에 대구경 망원 렌즈를 물려 조리개를 활짝 열고 찍어낸 그 느낌과 비교하면 가끔 지나치게 어색할 때가 있다. 아웃포커싱 모드에선 줌이라든지 흑백모드를 설정할 수 없다는 점도 아쉽고.

일반 모드에서 선예도는 정말 뛰어나다. 큼직한 이미지센서가 달린 렌즈 교환식 카메라 못지 않다는 생각마저 든다. 색감도 차분하며 풍부하고. 다만 인물사진을 찍을 땐 아쉽다. 왠지 모르겠지만 정성 들여 찍어도 덜 예쁘고, 덜 멋지게 나온다. 적당히 뽀얀 느낌이 나야 찍힌 사람이 만족할 텐데 그게 아니다. 반대로 풍경사진은 끝내준다. 기본 설정 값이 풍경에 더 특화된 듯하다.

‘쯕끅.’ 라이카 카메라를 모방한 이 셔터음은 언제 들어도 질리지 않는다. 내가 전문 촬영 장비를 사용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P9에 취해 있다가 가끔 폰이 아닌 카메라로 사진을 찍으면 결과물이 밋밋하단 생각이 먼저 든다. 이유는 P9이 별도 보정 없이도 느낌 좋은 사진을 뽑아주는 덕이다. 

당연히 일반 카메라랑 비교하면 제약이 많다. P9으로는 다양한 렌즈군을 활용할 수 없으며 하드웨어로부터 오는 한계도 분명한 탓이다. 대신 일상에서 가볍게 후보정 없이도 그럴듯한 사진을 찍고 싶다면 P9이 더 앞선다는 생각이다. 카메라를 들었다가도 자꾸 내려놓게 되는 이유.

이야기가 너무 길었다. 8개월 동안 P9으로 찍은 무보정 사진 30장을 추렸다. 사진 실력이 초라하다는 점은 감안해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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