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존감이라는 독> 류샹핑 지음, 허유영 옮김, 추수밭 펴냄

‘갑질’로 표현되는 가진 자들의 안하무인적 행태는 어디서 기인한 것일까. 베이징사범대학교 심리학대학원 교수인 저자는 ‘높은 자존감의 독(毒)’을 원인으로 지목한다. 자존감이 높아도 문제라는 분석이다. 저자는 자존감은 높을수록 좋다는 기존의 이론에 반하는 여러 연구를 소개하면서, 자존감 만능주의를 비판하고 자존감이 언제나 ‘득’이 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내면에 ‘독’이 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나아가 ‘낮은 자존감의 힘’을 역설한다.

저자는 자존감이란 “진심 어린 애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긍정적인 생각”이라고 정의한다. 일반적인 이해와는 상당히 다르다. ‘갑질’의 경우 ‘자존심 장애’에 해당한다. 한국에서는 너그러운 인물로 알려진 <삼국지> 관우에 대해 저자는 ‘자존심 장애’를 겪은 대표적 사례로 꼽는다. 관우는 재능이 출중하고 용맹했지만 자신을 과대평가하고 주위 사람들을 동정하지 않은 ‘자기 과시형’ 인물로서 건강한 자존감을 갖지 못했다는 것이다.

자존감 장애의 하나로서 ‘조건부 자존감’도 있다. 시험 결과나 성공 여부 등 특정 상황에 좌우되는 자존감이다. ‘진정한 자존감’이 아니다. 이렇듯 자신의 가치만 인정하고 타인의 가치를 인정하지 못하며 외부 조건에 휘둘린다면 “단편적이고 불충분한 반쪽짜리 자존감”을 가진 것이다.

저자는 높은 자존감과 낮은 자존감에 대한 일반적 편견을 지적한다. 자존감이 높으면 무조건 좋고, 낮으면 항상 나쁜 게 아니라는 주장이다. 높은 자존감을 가진 사람들도 단점이 있다. 상대에 대한 공격성이 강하며, 위협을 받으면 심하게 집착한다. 첫인상은 호감을 주지만 그 인상을 오래 유지하지 못하고, 자기중심의 나르시시스트이기도 하다. 높지만 불안정한 자존감은 오만과 공격성을 보인다.

물론 낮은 자존감은 단점이 더 많다. 자신감이 부족하고, 고민이 많으며, 부정적인 생각을 하기 쉽고, 초조하거나 우울해하기 일쑤다. 권력에 맹종하고 비굴한 모습으로 비칠 수 있다. 하지만, 낮은 자존감은 장점도 적지 않다. 자존감이 낮은 사람들은 처신이 신중하여 질투나 공격을 받지 않는다. 위협을 받으면 자기 보호 기능이 발휘된다. 평소 자신을 낮추고 겸손하여 호감을 준다. 사람들은 이들을 경계하지 않고 도움을 주려고 한다. 저자는 낮은 자존감에 대해 “진화를 통해 습득한 생존전략”이라고 평가한다. 천적을 피해 몸을 숨기는 본능적 행동,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는 반성과 자책, 에너지 비축을 위해 감정을 누그러뜨리는 행동은 영리한 생존 방식이다. 낮은 자존감이란 부정적 자존감이 아니다. 낮은 자존감과 자기 비하를 혼동해서는 안 된다.

자존감은 교육을 통해 변화될 수 있을까. 저자는 한번 형성된 자존감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특히 낮은 자존감의 경우 복잡한 환경과 심리적 요인이 작용한 결과이므로 높은 자존감의 특징을 모방한다고 바뀌지 않는다. 실제로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서 연간 수십 만 달러를 들여 자존감 교육을 실시했고, 중국에서도 ‘상식 교육’이란 이름의 자존감 교육을 시행한 바 있다. 자존감 높이기 교육에서는 교사와 학부모가 아이들에게 “네가 최고야”라고 말하고, 학생들도 거울을 보며 “나는 대단한 사람이야”라고 말한다. 그런데 막대한 예산이 투입된 자존감 교육은 오히려 자존감이 더 낮아지는 뜻밖의 결과를 초래하며 실패한 프로젝트가 되고 말았다.

자신에게 격려와 칭찬을 해주는 데도 왜 효과가 없었던 걸까. 자존감이 낮은 사람들은 그 말을 믿지 않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런 연구들을 근거로 “(무턱대고) 높은 자존감을 추구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며 실패할 가능성이 크다. 높은 자존감을 추구할수록 오히려 자존감이 더 낮아질 수도 있다”고 경고한다.

저자는 “자존감 상승에만 집착하지 말고 마음의 안정감, 자신에 대한 신뢰감을 향상시킬 수 있는 적절한 치료와 상담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낮은 자존감의 단점을 극복하려면 이런 심리학 지침이 필요하다 ▲완벽주의식 자기 평가를 피하라. 흑백 논리로 자신을 평가해서도 안 된다 ▲장점을 발휘하라. 나의 단점에만 주목하지 말고 장점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진정한’ 관심과 칭찬을 느껴라. ▲자주성과 주도성을 길러라.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추구하라 ▲결과보다 과정을 중시하라. 성공을 통해 얻는 만족감이 아닌 자신의 잠재력 실현에 더 주목하라 ▲내면의 문제에 지나치게 빠져들지 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