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를 듣는 차? 로봇이 이끄는 1인 모빌리티(이동수단)? 주차만 해두면 자동으로 먼지를 닦아주는 세차 로봇? 공상과학영화에서 나오는 이야기가 아니다.

12일 경기도 화성에 있는 현대자동차 남양연구소에서 열린 제8회 R&D 아이디어 페스티벌에서 자동차의 미래 모습이 공개됐다.

이번 대회의 주제는 ‘R&D, 심장이 뛴다’. 대회 주제에 걸맞게 '심장을 두근대게 하는' 독특한 작품이 눈길을 끌었다. 

▲ 현대자동차가 주최하는 제8회 R&D 아이디어 페스티벌이 경기도 화성 현대차 남양연구소에서 12일 열렸다. 출처=이코노믹리뷰 허지은 기자

본선에 오른 출품작은 총 8개로 ▲안전 운전을 하면 포인트를 지급하는 ‘현대 스마일 택시’ ▲자동 안전벨트장치 ‘팅커벨트’ ▲자동 먼지 청소 기계 ‘더스트버스터’ ▲탈부착으로 손쉽게 이용하는 개인용 모빌리티 ‘모토노프’ ▲청각장애인을 위한 소리를 듣는 차 ‘심포니’ ▲로봇과 모빌리티를 합친 ‘로모’ ▲차 내부 공간을 자유롭게 구성할 수 있는 ‘플루이딕 스페이스’ ▲자동차 커버와 차고 개념을 합친 ‘쉘터’ 등 아이디어가 반짝이는 작품들이 가득했다.

대상, 청각장애인을 위한 소리를 듣는 차 ‘심()포니’

“애앵-” 요란한 사이렌 소리가 울리자 자동차 앞 유리에 초록 불이 켜졌다. 경찰차 사이렌이 울리자 이번에는 불빛이 파란 색으로 변했다. 소리를 인식하는 차 ‘심포니’다. 운전할 때 소리를 들을 수 없어 큰 불편을 겪고 있는 청각장애인들을 위해 고안했다. 실제 청각장애를 앓고 있는 연구원의 친척에게서 들은 생생한 고충을 반영했다고 한다.

▲ 청각장애인용 자동차 '심포니'. 앞유리 센서와 손목 밴드, 수화를 번역해주는 소프트웨어가 탑재돼있다. 출처=이코노믹리뷰 허지은 기자

심포니는 사이렌∙경적 등 도로 위 소리들의 주파수 대역을 분석해 이를 운전자에게 알려주는데, 크게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로 구성돼 있다. 먼저 하드웨어로는 자동차 앞 유리와 손목에 차는 밴드로 운전자에게 소리를 ‘전달’해준다. 예를 들어 가까운 곳에서 구급차 사이렌이 들리면 자동차 앞 유리에 설치한 LED에 초록색 불이 들어오고, 경찰차의 경우 파란색이 켜지는 식이다. 손목에 찬 모션인식 밴드를 통해 소리를 진동으로 느낄 수도 있다.

▲ 심포니의 수화 번역 소프트웨어 '포니톡' 시연 모습. 카메라 센서가 수화를 인식해 음성 언어로 번역해준다. 사진=현대자동차 제공

소프트웨어로는 수화 번역 시스템인 ‘포니톡’이 함께 들어있다. 포니톡은 카메라 센서 앞에서 운전자가 수화로 말하면 이를 어플리케이션이 인식하고 음성으로 번역하는 시스템이다. 간단한 음식 주문은 물론, 내비게이션과 연동하면 목적지를 수화로 쉽게 설정할 수도 있다.

심포니 시연을 맡은 현대차 정진 연구원은 “실제 청각장애를 앓고 있는 친척에게서 이번 아이디어를 얻었다”면서 “단순한 이동수단을 넘어서 감동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최우수상, 로봇 모빌리티 ‘로모’∙착한 자동차 ‘현대 스마일 택시’          

귀여운 로봇이 한쪽 팔을 높이 들고 시연장으로 들어왔다. 로봇과 모빌리티를 결합한 ’로모’였다. 로모의 앞부분엔 양 팔이 달린 로봇이 설치돼있고 뒷부분엔 앉거나 짐을 실을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됐다.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카트’를 연상케하는 모양새지만 똑똑한 로봇이 함께한다는 게 특징이다. 로모의 양 팔을 이용해 짐을 옮기거나, 음식물쓰레기를 버리는 등 생활 보조 용도로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로모 시연을 맡은 유경호 연구원은 “기존 배달로봇 등은 특정 기능만 사용할 수 있는 반면 로모는 딥러닝 기술로 다양한 기능을 탑재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 로봇과 모빌리티를 결합한 '로모'. 앞면 센서로 사람을 인식할 수 있고, 양 팔로 짐을 옮기거나 음식물쓰레기를 버리는 등 심부름도 수행할 수 있다. 사진=현대자동차 제공

착한 자동차의 ‘현대 스마일 택시’는 직원 120명으로 구성된 청중평가단으로부터 가장 많은 선택을 받았다. 현대 스마일 택시는 교통법규를 준수하거나 안전운행을 하면 택시 포인트가 쌓이도록 했다. 예를 들어 차선 변경 시 깜빡이를 켜고 바꾸거나, 안전벨트를 매고 운전하면 10포인트를 얻는 식이다. 반대로 급정거를 하면 포인트가 깎이기도 한다. 택시 기사에게는 교통 법규를 준수하도록 동기를 부여하고, 승객은 안전한 승차를 보장받을 수 있도록 한 ‘일석이조’의 시스템이다. 

▲ 착한 자동차 '현대 스마일 택시'. 안전 운행을 독려하는 소프트웨어가 탑재돼있다. 출처=이코노믹리뷰 허지은 기자
▲ 현대 스마일 택시 내부 소프트웨어 모습. 주행/시작 버튼과 누적된 포인트 등을 알 수 있다. 출처=이코노믹리뷰 허지은 기자

주목할 점은 이 모든 과정이 어린 아이의 목소리로 안내된다는 점이다. “과속하면 안 돼요! 안전벨트를 매요!” 택시기사의 자녀나 손주 격인 어린이의 목소리로 설정해 이를 거부할 수 없도록 했다. 여기에 홀로그램으로 사진이 표출될 수 있도록 했다.

시연을 맡은 김하늘 연구원은 “현대 스마일 택시의 가장 큰 장점은 운전자의 주행 데이터를 수집할 수 있다는 점”이라며 "다가올 자율주행 시대에 연구·개발은 물론 상품성 개선에도 적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자동 안전벨트 ‘팅커벨트’ 자동세차 로봇 ‘더스트버스터’도 눈길 끌어

‘자율주행’에 발맞춘 ‘자동’ 발명품들도 눈길을 끌었다. 자동으로 안전벨트를 매주는 ‘팅커벨트(Thinker Belt)는 가이드와 자동 체결 버튼의 이중 모듈로 구성됐다. 버튼 하나로 벨트를 자동으로 매주기 때문에 편리하고, 특히 몸이 불편하거나 벨트를 혼자 매기 어려운 어린이에게 유용한 작품이다.

▲ 자동 세차로봇 '더스트버스터'. 본네트에서 자동차 루프까지 진공압착기능으로 먼지를 닦아낸다. 출처=이코노믹리뷰 허지은 기자
▲ 자동 안전벨트 '팅커벨트'. 가이드 팔이 벨트를 잡아당기고 자동 체결 버튼이 벨트를 채워준다. 출처=이코노믹리뷰 허지은 기자

자동세차 로봇인 ‘더스트버스터’는 자동차 엔진룸에 수납할 수 있는 미니사이즈 로봇이다. 진공 압착 시스템으로 로봇은 자동차 윗면은 물론 옆면에도 붙을 수 있으며, 앞 유리와 자동차 루프의 ‘단차’까지 극복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시연을 맡은 이병우 연구원은 “’차주가 자는 동안 자동으로 청소된다’를 콘셉트로 잡았다”라며 “황사∙꽃가루∙미세먼지 등 야외 주차 시 더러워지는 자동차 청소에 용이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연구원들 자발적으로 참여…올해로 8회 째

올해로 8회를 맞이한 아이디어 페스티벌은 ‘R&D , 심장이 뛴다’라는 주제로 현대차 연구원들이 자발적으로 참가해 차량∙기술을 구상하고 만들어내는 연구개발본부 고유의 문화행사로 자리잡았다.

이날 진행된 R&D 아이디어 페스티벌 본선대회는 지난 3월부터 이어온 대장정의 마지막이다. 3월 참가자 모집을 실시하고 4월 아이디어 컨퍼런스를 열어 1박 2일간 아이디어 개선 회의와 분야별 전문가 컨설팅을 실시했다. 컨퍼런스 이후 예선 심사를 거쳐 본선 진출 8개팀을 선정하고 지난 7월 1차 심사, 지난달 2차 심사를 거쳐 이날 본선대회가 열렸다.

수상 결과로는 ▲대상 심포니 ▲최우수상 로모 ▲청중평가 최우수상 현대 스마일 택시 ▲우수상 더스트버스터·쉘터·모토노프·팅커벨트·플루이딕스페이스가 선정됐다. 

우수상 시상을 맡은 권문식 현대자동차 부회장은 “상상도 못 했던 아이디어가 창의적으로 나오는 것을 보며 매년 놀라움을 느낀다”면서 “연구원들의 아이디어가 상용화될 수 있으려면 여러 분야의 아낌없는 협조가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우수상과 대상 시상을 맡은 양웅철 부회장은 “연구원들이 제한된 예산으로 훌륭한 결과를 성취해냈다”면서 “(권 부회장이) 앞에서 말씀한 것처럼 출품작이 실제로 양산될 수 있게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