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우리나라 조선업계 대표 기업 몇 곳의 직원들을 만났다. 현재 조선업계는 수주 부진으로 생존을 위협받고 있을 만큼 심각한 경영난을 겪고 있다. 그 직원들의 얼굴은 한결같이 어두웠다. 추석 연휴를 기대하는 설렘은 어디서도 찾을 수가 없었다. 그들의 얼굴에는 구조조정의 칼날을 염려하는 수심이 가득했다.

추석 연휴 내내 곱씹어본 것은 구조조정이 뭐냐는 물음이었다. 글자 그대로 구조조정은 기업의 사업 내용이나 조직을 재구성해 더 좋게 하는 것이다. 경영이 좋을 때나 어려울 때나 항상 구조조정이 이뤄져야만 기업은 성장할 수 있다. 마치 사람의 생살이 돋을 때 피부가 늘어나야만 살갗이 터지지 않고 육신이 커지는 것과 같은 이치다. 변화란 기업이나 개인, 사회에까지 공히 적용되는 논리다. 그런 점에서 구조조정 자체를 문제 삼는 것은 괜한 시비일 수 있다.

이들 업체의 직원들이 연휴를 잊을 만큼 괴로웠던 이유는 그런 뜻의 구조조정이 아니라는 것에 있었다. 국내 최대 조선회사라는 A사를 비롯한 이들 업체에게 구조조정은 감원의 동의어로 통한다. A사 관계자는 “채권은행단이 경영진이 인력감축을 요구하고 경영진이 부서장에게 감원 대상자를 뽑으라는 지시를 내리기 일쑤다”면서 “이 과정에서 숙련된 기술을 보유한 장기 근속자는 물론, 입사한 지 몇 년 안 된 젊은 사원들도 구조조정의 칼날을 목으로 받아야 했다”고 털어놨다.

수주가 되지 않고, 금융비용은 천문학적으로 늘어나는 현실에서 감원 외에 달리 선택의 방도가 없다고 판단하는 경영진의 고충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이들이 수도 없이 해외 시장의 문을 두드리고, 정부나 채권은행의 다리를 붙잡고 하소연했을 줄로 안다. 그럼에도 직원들의 눈에 비치는 것은 인원감축뿐이라는 현 상황은, 구조조정이 잘못돼도 한참 잘못된 것이라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인력을 감축하기는 쉽다. 그렇지만 미숙련자를 고용해서 노련한 솜씨를 갖춘 숙련된 노동자로 양성하기란 대단히 어렵다. 회사나 개인이나 피와 땀을 흘려야만 가능하다. 조선업계에서 이뤄진 이런 이들의 감원이 아쉬운 이유다. 더욱이 이들이 경영진이 내놓은 ‘위기돌파 명분’의 희생자가 됐다는 점에서 곱게 볼 수만은 없는 일이다.

회사가 어렵다면 생존을 위해 전 임직원이 회사 살리기에 매달리는 것은 당연하다. 사주라고 해서 예외는 있을 수 없다. 불필요한 경비 지출을 줄이고 자산을 팔아서 빚부터 갚아야 한다. 우리가 자는 사이에도 빚에 더해지는 이자는 기업을 일어서지 못하도록 하는 주범인 탓이다. 그리고 한 푼이라도 더 벌기 위해 수주에 매달리는 것은 두 말할 필요가 없다.

B사 직원은 이런 말을 하면서 울분을 터뜨렸다. 직원들을 자르고, 직원들의 경비를 줄이라고 하면서도 정작 본인은 골프 레슨을 하는 데 회사 비용을 지출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직원만 뼈를 깎는 구조조정은 반향(反響) 없는 메아리와 같으며, 과연 경영진이나 오너는 허리띠를 졸라맸는지 물었다. 이렇게 울분을 터뜨린 그 역시 감원 대상에 올라 최근 회사를 떠났다.

이런 식의 구조조정이라면 당장의 회사 존립은 물론, 장기 성장 여력의 확충을 기대하기 힘들다. 내부 직원의 공감도 얻지 못하는데 어떻게 채권은행단과 정부를 납득시킬 수 있겠는가.

이런 식의 구조조정이라면 경기가 조금 좋아져도 흐지부지되고, 경기가 또 나빠지면 다시 등장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 상황 대응에 급급해 장기 성장 잠재력 확충이나 경쟁력 향상은 꿈도 꾸지 못한다. 직원들의 업무 향상을 위한 자기계발은 남의 나라 일이 되고 만다. 그 결과는 다시 직원 사기 하락, 경쟁력 저하, 회사 경쟁력 추락 등으로 이어지기 마련이며 이미 이들 조선업체에서 현실화되고 있는 상황이다.

산업경쟁력 향상을 바탕으로 세계 조선시장을 싹쓸이하는 중국이라는 거대한 경쟁자와 힘에 부친 싸움을 해야 하는 우리 조선업계 경영진이 느낄 부담을 모르지 않는다. 다만 회사를 떠나는 한 사람 한 사람이 단지 비용이 아니라 경쟁력임을 깊이 생각해 달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들이 회사를 떠나면 회사가 오랜 기간 월급을 주며 키운 기술력이 사장되고, 그들이 다른 경쟁사에 취직하게 되면 바로 회사에 비수를 돌릴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이런 식으로 구조조정이라는 미명하에 인력감축의 칼바람을 불게 한다면 과연 누가 경영진을 믿고 밤낮으로 일하겠는가 묻지 않을 수 없다.

순진한 생각이지만 인간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마음이 기업가정신이 아닐까 하며 긴 연휴를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