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 주요도시에 있는 법원 파산부가 개인회생제도를 보수적으로 운영하는 바람에, 채무자들의 고통이 가중되고 있다. 

부산 남구에 거주하는 김 모 씨(37세·여). 늘어난 가계부채 4750만원을 감당하지 못해 부산지방법원에 개인회생을 신청했다. 월급에서 생활에 필요한 최소 생계비를 빼고 나머지 금액모두 채무변제를 하겠다는 변제계획안을 냈다.

그녀가 법원에 제출한 변제계획안은 월급 142만원에서 김 씨 혼자 생활에 필요한 생계비 82만원을 뺀 나머지 60만원을 5년(60개월) 동안 상환하겠다는 내용이었다. 남편과 어린 자녀는 생계비 산정시 고려하지 않았다. 남편은 소득이 있기에 제외해도 될 듯했다. 

그러나 부산지법 파산부는 김 씨의 변제계획안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법원은 남편 수입 230만원을 합산해 3인 최저생계비 218만원을 뺀 나머지 154만원을 매달 상환하라는 계획을 요구했다.

법원의 요구에 따르게 되면, 김 씨는 2년 7개월(31개월) 만에 채무를 모두 상환해야 했다. 김 씨는 채무를 처음 변제계획안 보다 짧은 기간에 상환하지만 결과적으로 자신의 소득보다 많은 월 154만원을 갚아나가야 한다.

부산 소재 한 법무사는 "경남권인 부산, 울산, 창원 지역 중 부산법원의 개인회생 절차가 비교적 까다롭다"라며 "법원이 채권자의 손실을 의식해 배우자가 어느 정도 소득이 있다면 그 소득까지 합산해 개인회생의 월 변제금액을 산정하도록 한다"라고 설명했다.

부산법원이 채무자의 소득에 배우자의 소득을 합산해 채무 변제금액을 높이는 방법은 채권자의 사정을 많이 감안하는 것이지만, 이는 법에 어긋난 것이란 지적이다.

한국 파산회생변호사회 소속 법조인은 "현행 채무자회생법은 개인회생을 신청한 채무자의 월급에서 일정한 생활비를 빼고 나머지를 5년 동안 상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며 "여기서 배우자의 소득은 채무 상환의 대상이 되는 소득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이 법조인은 "개인회생제도가 채무자에게 최저생계비만을 가지고 생활하도록 하는데, 여기에 배우자 소득까지 채무 변제에 쓰도록 한다면, 최종 변제하기가 힘들다"고 주장했다.

파산 직전의 채무자 입장에서 개인회생은 다시 경제활동을 가능하도록 하는 통로다. 파산법원이 채권자의 손실을 의식해 법률 조건을 벗어나는 변제계획을 요구하는 것은 과하다는 지적이다.

개인회생, 채무조정 역할 못해

지난 5월 서울회생법원 도산세미나에서 밝힌 통계자료에 의하면 채무자가 개인회생을 신청해 변제를 최종 완료하지 못하고 중도 포기하는 비율은 2010년 24.7% 2011년 30.4% 2012년 32.8%로 해마다 늘고 있다.

▲전국법원 개인회생 중도 포기 현황, 출처=서울회생법원
▲개인회생 중도 포기율, 출처=서울회생법원

당시 발제로 나선 서울회생 법원 정규형 판사는 중도 포기율이 높은 것은 지나치게 낮은 생계비에 있다고 지적했다. 개인회생제도가 지나치게 내핍생활을 강요한 결과라는 분석이다. 여기에 배우자의 소득까지 더해 채무를 상환하라는 요구는 채무 이행을 더 어렵게 한다는 것이 파산 법조계의 비판이다.

미국의 경우 중위 소득자가 개인회생을 신청할 경우 생활비, 주택융자금에 대한 금융비용, 우선권 있는 채권에 대한 변제금을 공제할 수 있게 한다. 이중 생활비는 법원이 다양한 기준을 통해 '합리적으로 필요한 비용'을 공제하도록 제도를 운영한다.

▲ 미국 개인회생 제도의 생계비 공제내역, 출처=서울회생법원

우리나라는 가계부채가 심각한 상황에서 개인회생이 최저생계비를 기계적으로 공제하는 대신,  기준을 다양화 해 생활이 가능하도록 생계비를 정해야 한다. 법원도 이런 점을 감안해서 탄력적으로 운영해야 현실적인 채무조정이 가능하다는 분석이다.

채무자의 채무조정을 지원하는 '희망을 만드는 사람들'의 서경준 본부장은 "채무도 상환하고 생활도 가능한 채무조정이어야 장기간 채무이행이 가능하다"라며 "법원이 제도 운용을 유연하게 운영한다면 가계부채 문제 완화에 도움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