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육성을 위한 국가보조금이 줄줄 새고 있다. 지난 5년간 300억에 가까운 농업 국고보조금이 실제 사업용도로 쓰이지 않고 엉뚱하게 쓰이는 등 부당 수령됐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업체들이나 농민들이 지원금을 받아 놓고 실제 사업 용도로 쓰지 않은 것이다. 1년에 평균 1760억 정도 쓰이는 농업 분야 기술 보조금이 방만하게 집행되는 셈이다. 

농림축산식품부가 11일 국회 농해수위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2012년부터 2016년까지 농업용 국고 보조금 부당 수령 금액이 278억 5000만원이었다. 적발된 건 수는 836건. 정부는 보조금을 부당 수령한 사람들에게 5년간 사업 참여를 제한시키고 지원금을 돌려받는다. 그렇지만 농식품부는 지난 5년간 51억 원(33건)을 돌려받지 못했다.

농림축산식품부가 핵심적으로 지원하는 스마트팜 산업이 포함된 시설 원예 현대화 사업이 가장 빈 구멍이 많았다. 정작 민간 차원에서 잘 성장하고 있는 온라인 농축수산 유통 분야는 제대로 된 투자도 받지 못하고 있다. 농업계 일각에서는 일방적인 지원 위주의 농업 보조금 정책에서 방향을 전환해 자본시장과 연계한 매칭 펀드 등으로 재원 소비 방식을 바꿔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 연도별 부정 보조금 수령액(출처=농림축산식품부)

농업 보조금 ‘시설 원예’ 분야에서 제일 많이 샜다

가장 구멍이 많은 분야는 ‘시설 원예 에너지 이용 효율화 사업’으로 부당 수령 건수가 219건이었다. 지열히트펌프나 수열히트펌프와 같이 에너지 절감형 농장 설비를 설치하거나 스마트팜을 활용해 에너지 소비량을 줄이는 사업들이다.

이 분야 전문가인 이인규 NIR 그룹 상무는 “농업경영비에서 40%가 에너지 비용이기 때문에 에너지 효율화 사업을 정부 차원에서 지원할 수밖에 없는 상황은 이해가 된다”면서도 “자부담 비중이 있기 때문에 일반인들은 쉽게 엄두를 못 내고 몇몇 기업들이 예산을 오용하기도 한다”고 지적했다.

이 상무는 또 “시설 원예 사업은 지주와의 이해관계, 지자체 공무원 협조 등 현실적인 문제를 풀어주는 데 더 집중하는 게 효율적으로 보인다”고 꼬집었다.

김영택 경북관광진흥원 이사장은 “지역에 가면 소 두 마리만 있는 6차 산업 목장, 비싼 설비만 들여놓고 작물 재배가 되지 않는 스마트팜이 꽤 있다는 말이 뜬 소문이 아닌 셈”이라고 지적했다.

김 이사장은 "많은 업체들이 이름만 거창한 사업 명목으로 스마트팜을 한다고 이야기하지만, ICT 관련 기능을 제대로 탑재한 자동화 시스템은 좀처럼 구현되지 않고 있다"며 "최근 성장하고 있는 시설원예 자동화 기업인 엔씽과 같이 실제로 스마트팜 시스템을 갖춘 경우가 흔치 않다"고 지적했다. 

▲ 국내에서 거의 유일하게 상용화된 사물인터넷형 스마트팜 솔루션을 개발한 엔씽(출처=엔씽 홈페이지)

과수시설 현대화 사업은 174건, 농업경영 컨설팅 사업은 68건의 부정 수령 사례가 있었다.

농협중앙회의 준법지원 업무 관계자는 “농촌진흥청을 비롯한 농식품부 산하기관 과제ㆍ용역 중 30%는 컨설팅회사에서 할 법한 사업들”이라며 “현장에서 읽지도 않는 보고서를 대충 편집해서 생산하거나 컨설팅이 필요한 대상 사업이 명확하지 않은 상태에서 진행되기도 해서 문제가 많다”고 지적했다.

부당 보조금 적발 추이를 보면 2012년 159건에서 2013년 55건으로 줄었다가 2014년부터 186건으로 대폭 늘어 2015년에는 334건으로 치솟았다. 지난 해 농업 보조금 부정 수령 건수는 102건이었다. 대부분의 사업은 거짓으로 기록되거나 실제로 이루어지지 않는 사례들이었다. 이름뿐인 ‘6차산업’ 명목 지원이 693건(82.9%)이었다.

▲ 연도별 부정보조금 환수실적(출처=농림축산식품부)

잘 나가는 농수산물 유통업은 외면

일방적 지원 시스템이 아니라 농식품 투자 분야에서도 편중된 ‘지원’은 마찬가지다. 온라인 농수산물 유통 플랫폼을 운영하고 있는 A 씨에게는 시름이 있다. 연초부터 농업정책보험금융원이 운영하는 농식품모태펀드를 좇아 다니며 수 차례 회의를 했지만, ‘투자가 어렵다’는 차가운 반응만 돌아왔기 때문이다.

A 씨의 회사는 온라인 농수산물 유통 분야에서 매출 1위이고 기업 가치도 100억이 넘는다. 그러나 농식품 모태펀드 관계자는 “수산물 비중이 너무 높아 우리가 투자할 수 없다”는 냉랭한 대응으로 일관했다. 그리고 이 관계자는 “해양수산부 관할 하에 있는 수산 펀드로 찾아 가보라”고 말했다.

수산 펀드에서도 A 씨의 회사에 대접이 박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온라인 수산물 유통업’ 자체를 들어보지 못했다는 게 주된 이유였다.  A 씨는 온라인 수산물 유통 시장의 가능성에 대해 담당자에게 상세하게 설명했다. 예를 들어 G마켓은 2016년 1월에서 5월 사이에 매출액이 전년대비 84%가 증가했다. 2013년에서 2015년까지 일반 신선식품 매출은 평균 24% 증가했지만, 수산물 매출은 50% 이상 늘어났다. 옥션에서도 2016년 1년간 수산물 매출이 전년보다 45%나 뛰었다.

실제로 G마켓 관계자는 “온라인 몰에서 신선식품을 판매하던 초기에는 불신이 있었지만, 온라인 구매 시 제품이 산지에서 직배송된다는 것을 알게 된 소비자들이 높은 신뢰도를 보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수산 펀드 관계자는 ‘전례에 없는 투자 결정’이라는 답변만 되풀이 했다. A 씨는 관련 창투사들을 방문해 보았으나 이들과 ‘커넥션’이 없는 상태에서 제대로 된 투자 유치를 이끌어 내는 것은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됐다. A 씨는 “수산 펀드가 사업성이 불투명한 원물 생산과 관련해 자주 투자를 하면서, 온라인 유통이라는 업태(業態)에 대해서는 이해하지 않으려고 하는 게 유감”이라고 지적했다.

자본시장과의 연계방향 등 재원 활용 방안 재구성 필요해

이 상무는 “농업 지원 체계를 바꿔서 자본시장과의 연계를 통한 매칭펀드 등 농업 지원을 합리화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며 “수십 조가 농업계에 지원되었는데 아직 괄목할 만한 비즈니스 하나 발견되지 않는 것은 유감”이라고 지적했다.

안선하 서울연구원 연구원은 “일본이나 싱가포르처럼 실제 기술 투자가 이뤄 지는 모델로 바꾸고, 고용 창출이 이뤄질 수 있는 분야에 선 투자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안 연구원은 “영국이나 미국 등은 지하농장을 만들어 토지를 생산적으로 활용하려는 창의적 아이디어에 투자한다”면서 “공익적 차원에서 농업을 보호하는 것뿐만 아니라 농민들의 수익성을 위한 사업 가치가 있는 분야를 위주로 재원을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