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9일 월요일은 미국의 콜럼버스 데이(Columbus Day)로 미국인들은 3일간의 긴 주말을 즐겼다. 콜럼버스 데이는 1492년 10월 12일 이탈리아의 탐험가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처음으로 아메리카 신대륙에 상륙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미국 정부는 지난 1937년 매년 10월의 두 번째 월요일을 콜럼버스 데이로 기념하기 위해 연방 공휴일로 지정했다.

콜럼버스는 인도에서 향신료를 구하기 위해서 아시아를 향해서 항해했으나 우연히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했다. 실제로는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처음 발견한 것은 아니다. 아메리카 대륙에는 이미 원주민들이 살고 있었으며 콜럼버스보다 앞서 일부 유럽인이 미국 동부 쪽에 상륙한 적도 있다.

그러나 앞서 유럽인들의 아메리카 대륙 발견은 단순한 방문에 그친 반면,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에 상륙한 이후 당시 유럽의 상황과 새로운 대륙에 대한 갈망이 맞아떨어졌다. 그 때문에 유럽인들이 대거 아메리카로 몰려와 식민지를 만들고 오늘날의 미국이 만들어진 덕택에 콜럼버스는 ‘아메리카를 발견한 사람’이 됐다.

당시 유럽은 종교개혁과 종교전쟁으로 종교난민이 대거 발생했고 각 지역의 군주들의 강세로 인해 시선을 돌릴 곳이 필요했다. 게다가 식민지를 건설함으로써 얻어지는 이득도 새로운 대륙 발견의 강력한 매력이 됐다.

당시 지구가 둥글다는 새로운 사상을 받아들이고 대부분의 탐험가들이 택했던 방향이 아닌 정반대 방향을 통해서 아시아 대륙에 닿고자 했던 콜럼버스의 모험은 개척정신의 상징으로 많이 칭송받곤 했다.

그러나 콜럼버스의 모험이 단순히 새로운 대륙을 발견하려는 모험심에서 발동한 것은 아니다. 스페인의 여왕 이사벨라가 콜럼버스에게 신대륙을 발견하면 제독으로 임명해 나라를 통치할 수 있도록 약속했고, 결국 신대륙 발견에는 콜럼버스의 부와 권력에 대한 욕심이 크게 작용했던 것이다.

그리고 당시 아메리카 대륙에 상륙한 콜럼버스와 그의 일행들이 이미 그곳에 정착해서 살고 있던 원주민들에게 행한 잔혹한 행위들은 미국에서 콜럼버스 데이 때마다 시위가 벌어지게 하는 이유다.

콜럼버스 데이에 대한 반대는 19세기부터 시작됐는데 초기에는 카톨릭 신자인 콜럼버스를 기념하면서 카톨릭의 영향이 커질까 우려하는 시선이 우세했다. 이후 20세기에 들어와서야 원주민들에 대한 콜럼버스의 행위를 중심으로 반대 의견이 뭉쳐졌다.

특히나 아메리카 대륙 원주민들의 문명을 미개하다고 치부하고, 유럽인들이 아메리카를 발견하면서 기술과 과학, 이성적인 사고 등을 미주 대륙에 도입했다는 식으로 잘못된 정보를 주입했다는 주장이 힘을 얻었다.

한 역사학자의 “콜럼버스 데이는 미국 원주민들을 집단 학살한 것을 기념한 날”이라는 말이 설명하듯이 원주민의 후손 등은 콜럼버스를 기념하는 이 날이 적절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지난 9월 맨해튼 센트럴 파크에 있는 콜럼버스 동상에 붉은 페인트가 칠해지고 “증오는 용인되지 않는다”는 문구가 쓰이면서 콜럼버스의 인종차별 역사를 다시 한 번 각인시켰다.

또 맨해튼의 중심지에 있는 콜럼버스 서클의 이름을 변경하고 동상도 철거하자는 주장이 나와서 뉴욕시는 이를 검토키로 했다.

이미 LA에서는 지난 8월에 콜럼버스 데이가 아니라 원주민의 날로 명칭을 변경하는 안이 통과됐다. 이에 따라 오는 2019년부터 LA에서는 콜럼버스 데이가 아닌 원주민의 날(Indigenous Peoples Day)로 개칭되고 공식 휴일로 기념하게 된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이 콜럼버스 데이의 개칭에 찬성하는 것은 아니다. 드 블라지오 뉴욕시장이 콜럼버스 데이의 이름을 바꾸는 것을 검토하겠다고 발표한 이후, 콜럼버스 데이 퍼레이드에서 일부 관람객은 드 블라지오 시장에게 야유를 퍼붓기도 했다.

콜럼버스 데이 폐지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주로 이탈리아계 미국인으로 자신들이 미국으로 이주하게 된 계기가 됐고 문화를 기념하는 날이므로 원주민의 날로 바뀌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뉴욕 주지사이자 이탈리아계 미국인인 앤드루 쿠오모는 콜럼버스 서클과 동상에 대한 지지를 밝히며 자신이 주지사로 있는 한 콜럼버스 동상은 굳건히 자리를 지킬 것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