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 씨는 <어벤져스> 새 시리즈를 아이맥스로 예매하기 위해 극장 앱에 들어가 예매창을 열었다. 순전히 중학교에 다니는 아이의 성화 때문이다. 마블 시리즈의 절대적인 마니아인 아이는 벌써 6개월 전부터 <어벤져스> 타령을 했다. 이런 아이의 바람을 무시할 수 없어 얼른 예매에 나선 것이다. 벌써 중앙 지역의 좋은 좌석은 비어나가기 시작했다. 예매가 열린 지 이제 겨우 30분 정도 지났을 뿐인데 이런 걸 보면 마블 팬이 많긴 많은가 보다. 급한 마음에 스마트폰을 조작하는 P 씨의 손은 바빠졌다.                 

‘예매율’과 ‘예매수량’은 스크린 편성을 할 때 감안하는 주요 지표다. 영화에 따라 관객의 예매 지표는 확연히 달라진다. 각 시즌마다 기대작이 개봉할 때면 관객들은 앞다퉈 예매에 나선다. 개봉과 함께 조금이라도 빨리 보겠다는 마음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마블’ 시리즈 같은 경우가 대표적인 예다. 우리 세계에는 존재하지 않는 히어로를 보기 위해 관객들은 개봉이 한참 남았는데도 기꺼이 주머니를 연다.

예매수량이 많고 예매율도 높은 경우 다수의 스크린이 편성될 가능성이 높다. 특히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중 아이맥스나 4DX 등 특별관 포맷에 잘 맞는 경우 예매에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는 경우가 많다. 2014년 <인터스텔라>의 경우를 생각해 보면 쉽게 이해가 간다. 이 영화의 연출자인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매 영화마다 아이맥스를 가장 잘 활용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 까닭에 <인터스텔라>는 예매 오픈과 동시에 금세 매진으로 이어졌다. 개봉 후 몇 주가 지난 뒤에도 이 영화의 아이맥스 버전은 매진 사례가 속출했다. 스크린 편성에 유리한 고지를 점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다.

한 가지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예매율과 예매수량이 반드시 비례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앞서 살펴본 시즌별 특성에 의해 성수기에는 예매수량이 많아지고, 반대로 비수기에는 적어진다. 따라서 비수기 중에는 예매율은 높지만 예매수량은 성수기의 2, 3위 영화에도 미치지 못하는 영화들도 종종 나타난다.

배급사들은 저마다 자신들의 영화 예매를 빨리 열어달라며 극장을 대상으로 미묘한 신경전을 펴기도 한다. 하지만 인지도가 떨어지는 영화의 경우에는 아무리 예매를 빨리 열어도 개봉 당일까지 예매수량이 미미한 경우가 대다수다. 그래서인지 일부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하는 영화들은 오히려 너무 일찍 예매를 여는 것을 꺼리기도 한다.

결국 영화의 사전 인지도가 확보되지 못하면 아무리 예매를 빨리 열어도 실제 예매율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점은 명백하다. 관객의 마음을 얼마나 차지할 수 있느냐가 스크린 편성의 키가 되는 것이다.

이미 개봉한지 몇 주가 지난 기존 상영작의 경우 이런 관객 선호도는 더욱 뚜렷하게 구분할 수 있다. 극장마다 별도의 산정 기준이 있지만 CGV의 경우 ‘NPS(Net Promoter Score) : 순 추천고객 지수’라는 지표를 중요하게 참고한다. 영화를 보고 난 관객에게 다른 사람에게 추천할 것인지를 물어본 후 추천고객비율에서 비추천고객비율을 빼서 산출하는 지표다. 관객이 영화를 재미있게 봤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관람을 추천하지 않을 경우 NPS 수치는 낮게 나타난다. 반면 타인에게 관람을 적극 권유할 경우 NPS 수치는 높게 나타난다. 대체로 NPS 수치가 높게 나온 영화는 2주차, 3주차로 가도 관객 감소폭이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다. NPS 수치가 낮은 영화들은 반대로 시간이 지날수록 입소문이 안 좋게 나고, 관객도 급격히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

비슷해 보이는 조건의 극장이라도 지역별로 편성의 차이를 보이는 것도 관객의 기호를 감안한 결과다. 상권 특성, 고객 성향, 현장의 콘셉트, 경쟁 상황 등의 차이로 극장마다 각기 다른 관객층을 갖는다. 예를 들어 경기도 분당이라는 같은 지역에 있지만 CGV야탑은 20~30대 젊은 층부터 50~60대 장년층까지 고객층이 골고루 분포돼 있는 반면 CGV오리는 20~30대는 상대적으로 적고 고연령대 관객의 집중도가 높다. 특히 CGV오리에는 아트하우스가 있어 예술영화를 즐기는 관람객도 많다. 이런 까닭에 같은 기간 여러 편의 영화를 동시에 개봉할 경우 그 결과가 확연히 다르게 나타난다. 편성 단계에서 극장별로 영화 편성이 달라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결론적으로 스크린 편성의 키는 철저하게 ‘관객’이 쥐고 있다. 관객이 많이 찾는 영화엔 스크린이 많이 배정되고, 관객이 적게 찾는 영화는 그 반대다. 많은 관객들이 가까운 극장에서 보고 싶은 영화를 잘 볼 수 없다는 불만을 나타내기도 하지만 극장 입장에서는 이런 복잡한 과정을 통해 더 많은 ‘관객’의 기호를 반영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