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가계통신비 인하 정책이 혼란을 거듭하고 있다. 1만1000원 기본료 폐지가 사실상 물 건너간 후 약정할인율 25%가 적용되는 등 관련 정책이 쏟아지고 있으나 근본 해결책이 되기에는 어렵다는 말이 나온다.

결국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문제의 원인을 살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가계통신비가 높아 부담이 된다’는 전제에서 문제의 원인을 살피려면 제조사와 통신사, 시장 상황이라는 3개의 축에서 생각해야 한다는 주장이 공감을 얻고 있다.

가설 하나. 통신사가 범인인가?

‘가계통신비가 높아 부담이 된다’의 전제에서 제일 먼저 살펴야 할 곳은 통신사다. 즉, 통신사가 가계통신비 부담의 주범이라는 가설을 세울 필요가 있다. 사실일까?

단말기 유통구조 개선법부터 살펴보자. 단통법 시행 후 통신사들의 영업이익이 큰 폭으로 올랐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마케팅 비용이 줄고 단말기 보조금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33만원 보조금 상한제가 도입된 후 소비자가 체감하는 단말기 구입 체감율이 크게 떨어졌다.

더불어민주당 최민희 의원이 지난달 1일 방송통신위원회에서 받아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2014년 이용자 1인당 평균 29만3261원인 보조금은 지난해 22만2733원으로 7만528원(24%) 감소했으며 올해 6월 기준으로는 평균 17만4205원으로 다시 4만8528원(21.8%) 줄었다. 통신3사는 지난해에만 약 1조5000억원, 또 올해 6월까지 약 5000억원의 지원금을 줄인 것으로 추정된다.

이 자료는 특정 스마트폰, 특정 요금제만 해당되기 때문에 통신사가 가계통신비 부담의 범인이라는 핵심증거가 되기는 어렵다. 게다가 본질인 가계통신비 부담 이슈와는 거리가 멀기 때문에 일반 상황에서 비교분석이 필요하다. 즉, ‘단통법 등을 고려하지 않는 상태에서의 통신 서비스 요금이 차지하는 가계통신비 비율’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디지털 이코노미 아웃룩 2013에 따르면 한국 가계통신비 지출액은 평균 148.39달러를 기록해 전체 3위를 차지했다.   심지어 무선통신요금 지출액은 115.50 달러를 기록해 전체 1위에 오르는 진기록을 달성했다. 그러나 2년이 지난 후 다시 발표된 디지털 이코노미 아웃룩 2015에 따르면 한국은 음성과 문자, 데이터 등에 따라 5개 트랙으로 나눈 요금 부담률을 조사한 결과 8위에서 19위 수준으로 내려갔다.

2년 만에 현격하게 차이나는 순위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먼저 2013년 자료는 가처분소득 위주이며 2015년 자료는 구매력평가 환율(PPP)에 따라 순위를 매겼기 때문에 직접 비교는 불가능하다. 순위의 기준도 잘 살펴야 한다. 2015년 자료의 근거다. 2013년과 달리 단말기 부담을 뺀 통신 서비스 요금만 비교해 순위를 매겼다. 이런 이유에서 명확한 경계를 나누기는 어렵지만, 통신 서비스만 보면 국내는 상대적으로 저렴하다는 결론이 나온다.

여기에 통신 인프라를 중심으로 구동되는 다양한 플랫폼 서비스도 고려해야 한다. 지도와 내비게이션, 기본적인 DMB부터 N-스크린, 게임 등을 망라하는 다양한 기능이 통신 인프라를 통해 플랫폼 서비스로 구현된다는 점도 가계통신비 중 통신 서비스 비용 판단의 근거가 될 수 있다.

▲ 자료사진. 출처=펙셀

가설 둘. 단말기 제조사가 범인인가?

가계통신비의 일부인 통신비가 상대적으로 낮다는 점은 어느 정도 확인되지만, 이에 대한 명확한 데이터가 없기 때문에 단언하기는 어렵다는 반론도 있다. 그러나 확보할 수 있는 데이터를 통해 가계통신비의 중요한 핵심이 단말기 가격에 있다는 주장이 나오는 것을 유심히 지켜볼 필요가 있다.

변재일 의원실은 10일 약정할인율 25% 인상 등 가계통신비 인하 정책이 시작됐지만 단말기 가격의 지속적인 상승으로 가계통신비 부담은 줄어들지 않고 있다고 주장했다. 변 의원실이 시장조사업체 가트너의 보고서를 인용해 발표한 것에 따르면 2015년부터 2017년 2분기까지의 국내 단말기 판매가격(ASP/Average Selling Price)은 514달러로 해외 단말기 평균가격(197달러)보다 2.6배 높은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제조사별 국내외 단말기 평균 판매가격 비교에서도 국내의 평균 단말 판매가격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삼성의 국내 단말기 평균 판매가격은 평균 508달러로 해외 평균 223달러보다 2.3배 높았고, LG의 경우에도 국내 단말기 판매가격은 평균 361달러인 반면 해외 판매 가격은 평균 176달러로 국내에서 2.1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쉽게 말해 가계통신비에 들어가는 비용 중 단말기 비용이 상당부분 차지하고 있으며, 이 지점이 가계통신비 부담의 원흉이라는 해석이다. 변 의원은 “우리나라 소비자의 평균 단말 구입가격이 해외보다 비싼 상황을 감안한다면, 가계통신비 인하는 통신서비스요금 인하만으로는 한계봉착한 것으로 정부와 정치권이 단말기 고부담 문제에 적극 나서야 할 것”이라면서 “저가의 단말기 보급을 확대해 국민의 단말기 선택권을 확대시켜 저렴한 단말기 사용할 수 있는 환경 마련해야한다”고 강조했다.

국내와 해외가 무려 2배 이상 단말기 가격이 차이나는 것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편차는 있지만 특정 모델 단말기가 국내와 해외에서 2배 이상 차이나는 경우는 없다. 변 의원실 자료는 각국의 스마트폰 시장의 특성과 관련이 있기 때문에 2.3배, 2.1배의 차이가 나왔다는 설명이다. 국내의 단말기 평균 가격이 514달러에 달하는 것은 프리미엄 스마트폰을 선호하는 국내 시장 상황이 반영된 결과다.

▲ 출처=변재일 의원실

그런 이유로 변 의원실 자료의 정확한 행간을 읽으려면 스마트폰의 저변 확대에 대한 시각차이를 고려해야 한다. 외국과 비교해 2배 이상의 단말기 평균 가격이 가계통신비 부담의 원인이기 때문에, 중저가 스마트폰의 저변을 넓혀야 한다는 것이 핵심주장이기 때문이다.

변 의원실 관계자는 “삼성전자의 경우 J 시리즈 이하의 스마트폰은 국내에서 판매하지 않으며, 국내에서 주로 프리미엄 스마트폰 중심의 판매전략을 취하고 있다”면서 “중저가 스마트폰 저변을 넓혀 고객의 선택권을 보장, 이를 통한 가계통신비 인하 정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반면 전자업계는 고개를 갸우뚱하고 있다. 프리미엄과 중저가 스마트폰 라인업을 충분히 마련했기 때문에 국내 시장의 특성이 프리미엄 스마트폰을 선택하는 것이고, 이는 자율경쟁과 시장선택에 맡겨야 한다는 입장이다.

결론적으로 변 의원실의 주장은 가계통신비 부담의 핵심이 통신 서비스가 아닌 단말기 가격에 있으며, 이는 밝혀진 데이터로 보면 어느 정도 사실로 증명됐다. 삼성전자와 LG전자가 이를 부추겨 프리미엄 스마트폰이 필요없는 사람들에게도 무리하게 마케팅을 벌이고 있다는 지적이다. 반면 전자업계는 프리미엄과 중저가 스마트폰 선택의 폭을 충분히 보장했고, 국내 스마트폰 시장이 프리미엄 중심으로 흘러가는 것은 순전히 소비자의 선택과 시장의 특성이라고 반박한다. 지난해 기준 국내 스마트폰 보급률은 85%로 이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 출처=변재일 의원실

가설 셋. 시장의 상황?

자연스럽게 거론되는 것이 시장의 상황이다. 가계통신비가 부담이 된다는 전제로 통신비와 단말기 가격을 분리해 살펴본 결과 각각의 주장에 대한 이론이 있기 때문이다. 통신비는 2015년 OECD 자료를 살펴본 결과 이견의 여지는 있으나 상대적으로 낮은 편이고, 단말기 가격은 높은 부담을 요구하지만 시장의 특성이라는 돌발변수가 있다.

다음으로 생각할 수 있는 것은 통신과 제조의 분리, 즉 양쪽을 분리해 간단하게 생각하는 것이다. 단말기 완전자급제가 나름의 해법이 될 수 있는 이유다. 다만 단말기 완전자급제가 시행될 경우 가격에 민감해진 제조사들이 친 소비자적 방식을 택하기 어렵고, 일선 대리점이 대거 무너져 기본적인 스마트폰 유통 시장이 붕괴될 수 있다는 기회비용이 존재한다.

시장의 상황을 문제로 삼아 통신과 제조를 분리하는 단말기 완전자급제가 부상하고 있지만 이러한 방식이 곧장 가계통신비 인하로 이어질 것이라는 단정도 어려운데다 의도하지 않은 유통시장 교란 등이 발생할 수 있다는 뜻이다. 업계의 고민이 깊어지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