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드 결제일은 한 달 30일 중에 가장 힘 빠지는 날이다. 특히 휴가철에 허탈함과 동시에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일이 생길 때가 있다. 여름 휴가를 보내려고 2주 전에 온라인으로 예약한 호텔에 내가 기억하는 결제 금액보다 높은 금액이 지불될 때다.

의구심에 확인한 예약 통지서에서 지불된 금액이 내가 예약한 가격보다 높다는 걸 확인하고 온라인 여행사에 전화를 걸지만, "아... 그 게 아마 환율 변동 때문에 그럴 거에요" 라는 모호한 대답만 돌아온다. 차액이 크지는 않지만 설렘 대신 찝찝한 기분으로 여행을 시작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이야기가 남일 같지 않다면 아마 외국계 온라인 여행사를 통해서 예약을 했을 것이다. 외국계 여행사의 경우 정산 받는 주체, 즉 당신이 결제한 금액을 최종적으로 가져가는 본사가 해외에 있기 때문에 거래가 한국에서 이루어져도 외화 기준으로 결제가 이루어진다.

그리고 결제를 중개하는 카드사는 예약한 시점의 환율이 아닌 결제 금액이 지불되는 청구 시점의 환율이 적용되도록 되어있기 때문에 통장에서 금액이 빠져나가기 전까지 확실한 지불 금액을 알 수 없다. 보통 미세한 차이가 나기 때문에 모르고 지나치는 경우가 많지만 예약한 시점과 결제한 시점 사이에 환율이 크게 올라가면 당신은 통장 잔고를 보고 놀랄 수 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국내 숙박시설을 예약하더라도 상황은 같다. 예약한 여행사의 본사가 위치한 국가의 화폐로 정산되기 때문에 우리나라 호텔에서 투숙하면서 외화 환율 변동의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에 놓이는 것이다.

이런 현상을 심화하는 원인은 국내 기업의 낮은 시장 점유율이다. 2016년 기준으로 온라인 개별 자유 여행자(Free Independent Traveller) 시장 규모는 약 1조원으로 파악되는데, 이 중 외국계 여행사의 점유율이 70% 이상이다. 2008년부터 미국과 유럽의 '공룡 여행사'들이 한국 시장에 대거 진출하기 시작했는데, 국내 땡처리 숙박 앱이 우후죽순 생기기 시작한 2013년보다 5년이나 앞섰고 탄탄한 기술력과 다양한 브랜드를 기반으로 국내 시장 점유율을 선점했다.

하지만 낙심할 일은 아니다. 지금의 공룡 여행사들도 처음에는 자국에서 땡처리 숙박 앱으로 몸집을 불리고, 해외 여행사와의 협업으로 아웃바운드 수요를 충족한 후, 현지 시장에 진출한 것이기 때문이다.

2013년에 땡처리 숙박 앱으로 시작한 국내 여행사들이 이제는 가상현실(VR)기술로 360도 객실 사진을 제공하기 시작했고, 분기마다 여행 트렌드 보고서를 발표하며 고객 다각화를 위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해외 아웃바운드 수요를 잡기 시작한 여행 스타트업도 심심치 않게 보인다.

그리고 무엇보다 고객과 같은 문화권에서 만들어져 고객에 대한 이해도 측면에서 큰 강점이 있다. 컨슈머인사이트가 낸 <여행 행태 및 계획 조사>에 따르면 2017년 1분기에만 내국인 출국 인원이 650만명으로 전년 동기대비 17.2% 증가했으며 향후 3개월 이내 국내여행 계획 보유율은 70.5%에 달한다.

이같은 여행 열풍에 힘입어 국내 여행사들이 시장의 '메이저 플레이어'로 성장하게 된다면, 어쩌면 휴가 이후 카드 결제일에도 흐뭇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