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 왕립과학원 노벨위원회는 매년 10월이 되면 노벨상 수상자들을 발표한다. 세상에는 수많은 상이 있지만 노벨상만큼 영예로운 상은 없다. 초창기엔 포상금이 20년 연봉에 해당할 정도로 많았기에 유명했다지만 지금은 과학자들의 명예를 하늘로 치솟게 할 만큼 이름만으로도 영예로운 상이다. 알프레드 노벨은 유산을 인류의 문명 발달에 학문적으로 기여한 사람들을 선정해 포상해 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노벨상은 문학상, 평화상, 경제학상보다 물리학상, 화학상, 생리의학상 등 자연의 원리를 밝힌 과학적 업적을 남긴 학자들에게 수여하는 과학상을 더 소중하게 다룬다. 국민 소득과 경제발전에도 불구하고 노벨 과학상을 탄 과학자가 아직까지 등장하지 못한 국내 과학기술 수준을 안타깝게 여기는 시각이 많다. 사람들이 과학상들에 특히 관심을 두는 까닭은 과학기술력이 국력이라고 믿기 때문이며 동시에 인류문명에 크게 이바지 한 과학적 성취가 무엇인지 궁금하기 때문이다. 최근의 경향을 보면 물리학상은 주로 입자물리학 분야에서 수상자를 선정하고 화학상은 주로 생화학 분야, 그리고 생리의학상은 유전학 분야의 공적을 주로 선정하고 있다. 21세기에 이르러선 인류문명을 개척할 분야가 과연 이들 분야만으로 대표될 수 있는지 의문이 든다.

 

노벨 생리의학상은 생체시계 규명

올해 생리의학상은 생체시계의 작동 원리를 규명한 공로로 메인대학교 제퍼리 홀(Jeffrey Hall) 교수와 브랜다이스대학의 마이클 로즈배쉬(Michael Rosbash) 교수, 그리고 록펠러대학의 마이클 영(Michael Young) 교수가 공동수상했다.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는 지구의 자전에 동조해 생체시계가 작동되고 있다. 생체시계는 행동, 호르몬 수치, 수면, 체온 및 신진 대사와 같은 중요한 기능을 조절한다. 생체시계가 외부 환경과 일시적으로 어긋나면 생체조절에 혼란이 발생한다. 시간대가 크게 다른 해외를 여행할 때 누구나 겪는 게 시차적응이다. 불규칙한 야간근무를 하면 생체시계가 고장 날 수도 있다. 홀과 로즈배쉬 교수는 초파리의 생체리듬을 조절하는 ‘PER’ 단백질을 만드는 명령을 담고 있는 주기(Period) 유전자를 분리해서 관찰했다. 이 유전자의 정보를 복사한 RNA는 세포질에서 ‘PER’을 생성하는데, 이 ‘PER’은 24시간을 주기로 야간에는 세포핵 속에 쌓이고 주간에는 농도가 줄어드는 일(日) 주기성을 띤다고 설명했다. ‘PER’이 세포핵 속에 쌓이는 야간에는 주기 유전자의 작동이 억제되고 주간에는 세포질 내에서 생성된 ‘PER’이 소멸되면서 세포핵 속의 ‘PER’이 줄어드는 현상을 발견했다. 한편 영 교수는 ‘PER’이 주간에는 세포질 속에서 ‘TIM’ 단백질과 결합되어 소멸된다고 밝혔다. 이 원리에 따르면 약물로 ‘PER’ 양을 조절하면 생체시간이 인위적으로 늦춰지거나 빠르게 조절될 수 있다.

 

노벨 화학상은 단백질 분자구조 관찰기술

노벨 화학상은 단백질 구조를 3D로 관찰하는 기술을 개발한 과학자들에게 돌아갔다. 리처드 헨더슨(Richard Henderson) 영국 케임브리지대 전(前) MRC 분자생물학연구소장, 요아킴 프랭크(Joachim Frank) 미국 콜럼비아대 교수, 그리고 자크 두보쉐(Jacques Dubochet) 스위스 로잔대 명예교수 등이 주인공들이다. 수상자들은 단백질과 같은 복잡한 생물분자를 거의 원자단위의 고해상도 3D 이미지로 관찰할 수 있는 저온전자현미경 관찰기술을 개발해냈다. 캠브리지 대학의 핸더슨 교수는 1975년에 저온전자현미경을 이용해서 박테리오로돕신(Bacteriorhodopsin)이란 단백질을 처음으로 3D 모델로 표현해냈다. 미국 컬럼비아대학의 프랭크 교수는 전자현미경으로 관찰한 단백질 2D 스냅사진을 3D 이미지로 추론하는 이미지 프로세싱 소프트웨어를 개발했다. 단백질 기능을 결정하는 3D 구조를 정확히 규명할 수 있게 해줬다. 두보쉐 교수는 단백질 구조를 전자현미경 내에서 보존해주는 극저온 동결기술을 개발했다. 단백질을 물에 녹인 현탁액을 얇은 금속망에 넣은 후 –180도의 액체 에탄 속에 급속 냉각해 단백질 분자구조를 자연 상태로 유지해주는 기술이다. 이로서 핸더슨 교수는 단백질 구조를 원자크기의 고해상도로 촬영할 수 있게 됐다. 병원균, 미토콘드리아, 단백질, 리보솜 등을 구성하는 원자들의 배열구조를 상세히 관찰할 수 있어 신약개발에 획기적인 계기를 마련해주었다. 흥미롭게도 이들 노벨화학상 수상자들은 모두 전공이 물리학이며 생물학 분야에서 연구에 종사해온 학자들이다. 화학상을 물리생물학자들이 독차지한 것은 노벨화학상이 주로 생화학 분야 주제들에 관심이 높기 때문이지만, 다른 한편으로 자연의 맨 밑바닥은 모두 원자로 해석되는 세계로 물리, 화학, 생물로 굳이 구분할 뚜렷한 명분이 없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노벨 물리학상은 중력파 증명

노벨 물리학상은 중력파를 처음으로 관측한 라이너 바이스(Reiner Weiss)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 명예교수, 배리 배리시(Barry Barish) 캘리포니아공과대학 교수, 그리고 같은 대학 명예교수인 킵 스론(Kip Throne)에게 돌아갔다. 100년 전 아인슈타인이 발표한 일반상대성이론에서 예측한 중력파는 시공간이 휘어지면서 방출된 에너지로 인해 생성되며 블랙홀이 생성되거나 별이 폭발하는 등 커다란 우주현상에 수반하는 거대한 파동이다. 중력파를 증명하면 노벨상을 수상한다는 통설은 물리학계의 오랜 믿음이었다.

지금까지 노벨상 수상자들이 밝혀낸 과학적 현상이나 기술개발들은 인류문명의 발전에 커다란 공헌을 해왔다고 믿지만 최근 들어서는 자연현상의 규명이 체감할 만큼 인류문명 발달에 커다란 영향력을 미쳤다고 보기 힘들다. 물리학상을 받은 중력파만 해도 그 존재를 실험적으로 확인했다는 사실로 인해 인간의 삶이 실제로 변하진 않는다. 의학상을 받은 생체시계의 원리규명도 인류문명에 어떤 큰 변화를 일으킬지 의문이다. 다만 화학상을 받은 저온전자현미경 기술은 수많은 단백질 구조를 규명함으로 인해 질병치료나 예방에 큰 도움을 줄 것 같다.

그렇다면 미래에 등장할 노벨상 후보기술들은 과연 얼마나 인류문명을 새롭게 개척해낼지 궁금해진다. 자연에 관한 지식이 이미 포화될 정도로 발달한 현대기술의 터전 위에 새로운 자연현상을 밝혀내는 일이 어렵다고는 하지만 최근에 선정되는 노벨상들은 그들만의 잔치에 머무는 감이 있다. 특히 노벨물리학상은 천제물리나 입자물리에 매몰되어 인류문명에 크게 이바지한 중요한 물리기술들 예를 들면 반도체기술과 같은 고체물리분야가 소홀히 다뤄지고 있다. 다른 한편으론 자연과학이 인류문명의 변화를 일으킬 만큼 충분한 빈 공간이 점차 사라지고 있다는 느낌이다. 오히려 인류가 만들어낸 사회적 갈등 현상들을 면밀하게 분석하고 밝혀내는 지식들이 인류의 삶에 더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인공지능 기술이다. 노벨의 유언대로 인류문명을 새롭게 개척하는 학문적 업적을 기리고자 한다면 21세기 문명에 걸맞은 새로운 학문 분야를 노벨상에 추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21세기 문명에 걸맞은 노벨상 분야가 필요

노벨화학상 수상자가 발표되던 날 구글은 2세대 픽셀 폰 공개행사를 가졌다. 소프트웨어를 중심으로 기술개발에 주력해온 구글이 하드웨어 상품도 개발하겠다며 10여종의 하드웨어 상품들을 선보였다. 구글 CEO인 피차이(Pichai)는 모든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에 인공기술을 탑재한다는 의지를 표명했다. 구글은 인공지능으로부터 영감을 얻어 상품을 개발할 예정이며 인공지능이 들어있지 않은 상품은 상상할 수 없다고 피차이는 말했다. 구글이 추구하는 ‘인공지능(AI) 우선 전략’을 네 가지로 그는 설명했다. 첫째 ‘AI로 음성 및 언어 그리고 몸짓 등을 감지하고 이해하는 오감 대화형(Conversational, Sensory) AI’, 둘째 ‘컴퓨팅이 모든 사물 속으로 침투해서 생활을 지원하는 사물 침투형(Ambient, Multi-Device) AI’, 셋째 ‘사람을 이해하고 주변의 변화에 적응해 지원하는 철저한 맥락 중심(Thoughtfully Contextual) AI’, 그리고 넷째 ‘컴퓨터가 주변의 변화를 지속적으로 배우고 적응하는 학습 적응형(Learns and Adapts) AI’다.

앞으로 인공지능은 사용자 개인별로 취미나 사생활, 구매활동, 여행, 기타 모든 일상생활을 자동으로 지원해준다고 본다. 인공지능 개인 비서는 명령에 의해서 움직이지 않고 미리 알아서 일을 챙겨줄 만큼 철두철미해질 것이다. 구글이 선보인 좋은 사례로 초소형 카메라 클립(Clips)이 있다. 이 카메라는 셔터를 누르지 않아도 스스로 판단해서 흥미로운 장면을 7초 동안 자동 촬영해 주는 기능이 있다. 자동으로 근사한 배경을 인지하고 얼굴을 인식하며, 잘못된 사진은 버리고 흥미로운 장면들을 자동 편집해주는 기능을 갖췄다. 이 기능은 구글 클라우드와 별도로 클립 내에 삽입된 인공지능이 직접 수행하므로 생성된 콘텐츠는 클립 내에 보관된다. 또한 이번 행사에서 선보인 픽셀 버즈(Buds)는 구글 번역기의 음성번역 기능을 무선 이어폰으로 옮겨 놓았다. 이어폰으로 상대방 언어를 자신의 언어로 통역해 들을 수 있고 자신의 언어를 상대방 언어로 번역해서 들려줄 수 있는 기능이다. 구글 번역기는 이미 음성번역 기능을 제공하는 40개국 언어로 순차 통역이 된다. 또박또박 정확하게 말하면 매우 정확한 통역이 가능하다. 픽셀 버즈의 동시통역은 스마트폰에 삽입된 인공지능 번역기를 활용한 기술이다. 구글은 스마트폰 앱으로 서비스되고 있는 기능들을 모두 인공지능으로 흡수해 자동 서비스하는 방향으로 갈 것이다. 스마트폰의 화면을 직접 조작하지 않아도 말로 인공지능 앱을 실행시키는 고급 서비스를 제공받게 될 것이다.

인공지능은 21세기 인류문명을 획기적으로 바꿔줄 만큼 대단히 폭발력이 높은 기술이다. 인공지능 기술이 이토록 발전하게 된 건 다층신경망 학습의 역전파 알고리즘을 고안해낸 캐나다 토론토대학의 제프리 힌튼(Geoffrey Hinton) 교수 덕분이다. 그에게도 노벨상 이상의 영예가 주어져야만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