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ffectionate Things

 

이제 박동윤 화백은 멈출 줄 알게 되었다. 이는 마치 도공들이 그들의 인위를 다시 ‘불’의 자연에 내맡기는 것과 같다. 이제 그 자체로 다른 힘들과 성질을 가지는 사물들은 다른 힘들과 교섭하여 뼈대와 살을 만들고 하나의 날에 스스로 성격을 부여한다. 이 힘들의 내적관계는 하나의 날을 성격화 하는데 그치지 않고 각각의 날들 간의 유기적 관계로 번져 간다.

아니 처음부터 하나의 날은 다른 날들과 유기체적 관계 안에 있었다. 하나의 날은 다른 날들과의 유기체적 관계 안에서 자신의 성격을 만들고 그렇게 만들어진 성격은 나비효과처럼 다른 날들의 성격에 반영된다. 이렇게 해서 박동윤의 근작은 인공적 자연이라는 역설을 실현한다.

박동윤(朴東潤)작가는 이제 살아 있는 사물과 만날 수 있게 되었다. 이 유기체적 사물은 그 자체로 살아 있음을 강하게 주장하기에 인간의 대상화를 거부 한다. 이제 인간과 사물은 살아 있는 유기체로서 대등 소통할 수 있게 되었다.

판화작업에서 시작된 꽃, 창살, 백자, 화살, 목가구 등, 이 최초의 애정의 대상들은 사실 인공의 문화와 역사, 주체의 정신과 기억 안에 있던 대상이었다. 이것들은 애정의 결과이거나 향수이지 애정의 기원은 아니다. 또 그 애정은 타인과 공동체, 정신의 애정이며 그렇기에 매개된 애정이다.

 

▲ Affectionate Things-Side View, 130×89㎝ Hanji on Canvas, 2017

 

이제 왜 서양화가 박동윤(ARTIST PARK DONG YOON)이 2006년 이후 줄곧 그리드와 불편한 동거를 하면서 동시에 그리드를 넘어서려 했는지가 분명해 졌다. 그리드는 하나의 애정이 깃든 사물(창살)이면서 화면에 질서를 부여하는 가장 인간적인 정신적 발명품이며 그 안의 다른 사물을 질서에 예속하고 통일하는 존재다. 그것은 이성의 합리성과 정신과 그 문화적 요인을 상징한다.

그리드는 인간이 합리적 필요에 따라 만든 것이면서 불행하게 사물과 인간을 그 안에 가둬두는 족쇄 같은 것이기도 했다. 화가는 필경 초기추상에서 자신이 애정하는 사물(한지와 그 물성, 성질)이 ‘구성(COMPOSITION)’이라는 명목과 ‘미’라는 합리적 구실에 봉사하고 있다는 깨달음 그리고 그 출구 없음에 좌절했는지도 모른다.

최초의 ‘날’은 그가 발견한 하나의 출구였고 이후 그의 회화는 점차 날을 하나의 사물로 하여 그 사물을 그리드(주체)로부터 탈출시키는 과정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따라서 그리드를 해체하는 과정은 사물이 온전히 그 사물됨과 존재의 고유성으로 출현하게 하는데 필수적인 과정이었다.

△글=조경진(철학박사, 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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