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쏘 타임 서스펜디드. 출처=에르메스

2011년 올해의 시계(Watch of the year)와 같은 해 제네바 시계 그랑프리(GPHG) 남성 시계 부문 수상작은 어느 때보다도 이례적이고 로맨틱했다. 정통 시계 브랜드의 정교하고 정확한 시계들을 제치고 우승을 차지한 주인공은 에르메스의 아쏘 타임 서스펜디드였다. 패션 하우스 에르메스가 세계 3대 시계 브랜드를 제치고 왕관을 거머쥐었지만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에르메스가 아쏘 타임 서스펜디드에 담은 것은 손목 위에서 흐르는 시간뿐만 아니라 멈추고 싶은 찰나와 되돌아가야 하는 순간,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언제까지 시간을 그냥 흘러가게만 둘 것인가

▲ 타임 서스펜디드 작동 사진. 버튼을 작동하면 12시 방향에 핸즈가 모이고, 오른쪽 하단 데이트 레트로그레이드의 핸즈가 사라진다. 출처=watchprosite

행복한 시간은 누구에게나 있다. 그 순간을 잡을 수만 있다면 무엇이라도 지불할 수 있을 것 같은 간절한 시간. 에르메스의 시계는 그 시간을 잡기 위해 무려 시계가 존재하는 의미를 지불했다. 그것은 바로 시간의 흐름을 확인하는 것. 에리얼이 목소리와 다리를 바꿔 짧고 강렬한 사랑을 얻었듯이, 시간을 표시하는 기능을 포기한 이 시계는 '멈춰 두고 싶은 순간'을 구현해냈다. 시계의 이름은 르땅 쉬스빵뒤(Le temp suspendu). 영어로는 타임 서스펜디드(Time suspended)다. ‘아장호(Agenhor)’의 수장인 쟝 마크 비더레이트가 에르메스와 손을 잡고 독자적으로 개발한 무브먼트를 탑재한 이 시계는 아쏘의 기본 형태를 따라가며 9시에 ‘시간 정지/복원’버튼이 있다. 버튼을 누르게 되면 시와 분을 가리키는 핸즈가 12시 방향으로 작은 v를 그리며 정렬하고, 데이트를 가리키는 핸즈는 사라진다. 놀랍게도 시계를 통해 시간을 확인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더 정확하게, 더 정교하게 시간을 표현하는 것이 미덕인 시계 업계에서 기존 시계의 의미 자체를 벗어난 에르메스의 아쏘 타임 서스펜디드는 위트이자 낭만, 그리고 충격이었다.

▲ 멈춤 버튼을 누른 타임 서스펜디드. 출처=lombard-perspectiva

타임 서스펜디드는 여기에서 더 나아가 '멈춰진 시간'이라는 감성적 공간에서 다시 완벽하게 현실로 되돌아올 수 있도록 돕는다. 9시 방향에 있는 버튼을 다시 한번 누르면 핸즈는 현재 시간을 다시 표시한다. 예를 들어 [1일 10시 10분]에 버튼을 눌러 시간을 정지하고, 3일 후 10시 30분에 다시 버튼을 누르면 곧바로 시계는 [4일 10시 30분]을 표시한다. 시계를 멈춘 동안 흘러가고 있던 시간을 기억하고 있는 것이다. 낭만을 아는 사용자는 단순히 시간을 보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다룰 수’있게 된다. 시간의 흐름을 멈추고 싶을 때 시간을 멈춰두고, 다시 현실로 돌아오고 싶을 때 돌아온다. 어떤 의미로 타임머신이라고도 할 수 있다.

에르메스의 낭만, 오롯이 특별한 콘셉트

▲ 프랭크 뮬러 시크릿 아워스 광고. 출처=유튜브

시간을 멈췄다 되돌리는 기능은 사실 에르메스가 최초가 아니다. 토마스 프세셔의 ‘템푸스 비벤디(Tempus Vivendi)’, 프랭크 뮬러의 ‘시크릿 아워스(Secret Hours)’도 에르메스의 아쏘 타임 서스펜디드보다 먼저 발표된 시간을 멈췄다 되돌리는 기능의 시계들이다. 하지만 이 시계들이 아쏘 타임 서스펜디드와 다른 것은 그 목적에 있다. 프랭크 뮬러는 특유의 재미요소를 목적으로1), 토마스 프레셔는 멋있는 외관을 목적으로 기능을 구현했지만, 에르메스의 타임 서스펜디드는 오롯이 “행복한 시간을 멈추고 싶다”는 감성적인 목적에서 출발해 기능을 구현했다. 

▲ 에르메스 H1912 인하우스 무브먼트. 출처=watchadvisor

시간을 멈추고, 기억하며, 레트로그레이드로 표현하는 방식은 매우 복잡하고 정교한 메커니즘을 필요로 한다. 에르메스는 장 마크 비더레이트와 함께 독자적으로 무브먼트를 개발해 타임 서스펜디드 기능을 만들었고, 2012년부터는 보셰 매뉴팩쳐와 협업해 H1912 인하우스 무브먼트를 완성하게 되었다. 이로 인해 아쏘 타임 서스펜디드는 감성적인 면뿐만 아니라 기술적인 면 또한 갖추게 되었다.

 

갖고 싶은, 가져야만 하는

▲ 새로운 아쏘 타임 서스펜디드. 버튼을 누르면 핸즈가 12시로 모이는 것은 같지만 스몰 세컨즈가 무려 거꾸로(시계 반대 방향으로) 흐른다. 출처=에르메스

에르메스는 남녀 할 것 없이 모두가 갈망하는 브랜드다. 에르메스의 수트는 부자가 된다면 반드시 입겠다 다짐하는 꼭 갖고 싶은 옷이고, 에르메스의 버킨백은 몇 년을 기다려서라도 가져야만 하는 여성들의 성배다. 하지만 에르메스가 그 무엇보다도 선사하고 싶었던 것은 “멈추고 싶은 만큼 소중한 순간”이었다. 에르메스 시계 부문의 CEO인 로랑 도르데는 아쏘 타임 서스펜디드를 “행복한 순간, 침묵하고 싶은 순간, 그리운 누군가를 생각하는 순간, 혹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는 순간”에 필요한 시계라고 이야기하며 개인적으로 가장 즐겨 착용하는 시계라고 밝히기도 했다. 

에르메스는 타임 서스펜디드 기능을 통해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는 순간, 멈추고 싶은 그 시간 혹은 그리운 누군가를 생각하며 시간의 흐름마저 침묵시키고 싶은 ‘마음'을 지켜낸다. 시간을 잡아 두진 못하지만 타임 서스펜디드의 버튼을 눌러 시간을 숨기는 행동을 통해 소중한 순간을 멈춘 듯한 기분에 젖게 만드는 것. 그것이 프랑스 최고의 브랜드 에르메스가 표현하는 시간에 대한 낭만적인 찬사다.

주석1) 프랭크 뮬러의 시계는 파격적이고 재미있기로 유명하다. 크레이지 아워와 같은 시계는 다이얼에 무작위로 배치된 시간을 점핑하며 표현한다.
 
<참고문헌>
에르메스, watchprosite, lombard-perspectiva, watch-insider, monochro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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