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원은 매 순간 여리박빙(如履薄氷)의 마음가짐으로 살아야 하는 위태로운 자리다. 어떤 일로 인하여 손해배상청구를 당할지 모르고, 또 어느 순간에 해고당할지도 모를 불안한 지위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임원으로 있는 동안 몇 가지 점에 주의를 한다면 적어도 허무하게 불이익을 입고 좌절하는 최악의 상황은 피할 수 있을 것이다.

우선, 임원 자리를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처세술은 필요하다.

임원은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꿈꾸는 최고의 자리인 만큼 사방에 자신을 시기하고 감시하는 눈과 귀가 항시적으로 열려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따라서 평소 아무리 단순한 일이라도 끝마무리까지 잘 되었는지를 살펴 차후 논란의 빌미를 제공하지 않도록 해야 하고, 상사, 부하직원, 동료들과도 원만한 관계를 유지해 원한을 사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조직 내에서 적이 많은 임원은 막상 궁지에 빠졌을 때 도움을 청할 곳이 없어 소송이나 부당해고 구제 과정에서 입증 상의 어려움으로 인해 패소하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처세술에만 의존해 임원생활을 한다면 기회주의자라는 오명을 피할 수 없겠지만, 명철보신(明哲保身)에 무관심하게 자기 소신대로만 밀고 나간다면 분명 화를 입게 된다.

총대를 멜 때에는 객관적인 근거를 가져야 한다.

임원은 회사의 업무상 결정권 및 집행권을 가져 자신의 소신대로 업무를 추진할 수 있지만, 아무리 좋은 의도를 가지고 시작한 일이라도 결과가 나쁘면 그에 대한 책임은 고스란히 당사자가 지게 된다.

이 경우 컨설팅 회사, 회계법인, 법무법인 등 외부 전문가들의 의견서를 주장의 근거로 삼게 되면 이러한 위험을 분산시키는 효과가 있다. 일반적으로 외부 전문가들은 잘못된 결과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보수적인 의견서를 내려는 경향이 있으므로, 이들 의견서에 기초한 의사결정 및 업무 추진은 사업의 실패 가능성도 줄여준다.

자신을 타겟으로 하는 ‘물밑 작업’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판단이 들 경우에는 반드시 증거를 남겨 추후 소송상 분쟁이 발생하였을 때 활용할 수 있도록 대비해야 한다.

이메일을 쓸 때에는 참조기능(CC)을 적절히 활용해 중요한 결정에 대하여 자신이 혼자 책임지는 상황을 막아야 하고, 필요할 경우에는 관련자들과의 전화 통화나 대화내용도 녹음하는 것이 좋다.

임원에 대한 해고나 징계가 이루어지는 과정에서는 회사에 의해 해당 임원이나 관련자들과의 접촉이 차단당해 임원으로서는 증거 수집이 사실상 불가능해진다. 가능하다면 증거수집 단계부터 변호사 등 전문가의 도움을 받기를 권유한다.

회사, 오너 등 인사 결정권자의 약점을 미리 파악해 둔다.

순수하게 윤리적인 측면에서만 본다면 남의 약점을 이용해 뭔가를 얻어낸다는 것 자체가 바람직한 것은 아니지만, 실무적으로 보면, 자신에게 불이익을 주려는 상대방인 인사 결정권자의 약점을 많이 알고 있다는 것보다 더 강력한 협상카드는 없다.

임원에 대한 회사의 손해배상청구, 해고 등의 불이익 처분은 회사와 임원 사이 힘의 불균형으로부터 비롯한 것인데, 임원이 회사, 오너 등의 약점을 알고 그에 관한 증거를 확보하고 있다면, 회사와 임원은 서로 대등한 관계에서 협상을 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어떤 경우라도 사직서를 쉽게 써서는 안 된다는 점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전편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우리 근로기준법은 그 자체로 해고의 요건과 절차가 매우 까다로워 회사는 임원을 해고하는 것보다 사직처리하기를 원한다.

본인의 자발적 의사로 사직하는 데에는 특별한 이유가 필요하지 않으므로, 일단 사직서를 확보할 수만 있다면 회사 입장에서는 매우 수월하게 임원을 내쫓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회사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임원을 어르고 달래 임원으로부터 사직서를 받아내려 한다.

회사가 임원에게 거액의 위자료나 퇴직금을 내걸고 사직서 쓰기를 제안하는 것 역시 임원이 부당해고 구제 신청을 했을 때 발생할 시간과 비용을 모두 고려한 것이다. 반대로 사직서를 쓴 이후에는 더 이상 회사에 대하여 부당해고를 다툴 수 없게 된다는 사실도 알아야 한다. 부득이 사직서 쓸 것을 결정했다면 그에 합당한 충분한 보상을 받아야 할 것이다.

세상 어느 곳에도 임원을 위한 회사는 없다.

다만, 정글과 같은 무한 경쟁 속에서 살아남는 임원들만이 있을 뿐이다. 이미 많은 것을 이루었음에도 불구하고 공든 탑이 무너질세라 오늘 밤도 전전긍긍 잠 못 이룰 수밖에 없는 임원들에게 신의 가호가 함께 하기를.

▲ 조태진 법조전문기자/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