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대형증권사 부장으로 오랜 기간 IPO전문가로 활동해온 A씨는 고액연봉을 보장받고 코스피 상장을 준비하는 제조업체 비등기 재무이사로 스카우트됐다. 해당 제조업체는 오너와 오너 가족들이 주식의 대부분을 보유하고 있는 이른바 ‘가족회사’로, A씨 덕분에 회사는 A씨가 이직한지 1년 만에 숙원사업이었던 코스피 상장의 꿈을 이루었다.

그러나 그로부터 6개월이 흐른 뒤 A씨는 업무상 배임 혐의로 회사로부터 고소를 당했고, 직장 내 성희롱 문제까지 문제가 돼 사내 징계위원회에도 회부됐다. 얼토당토 않은 일로 궁지에 몰리게 된 A씨는 뜻하지 않게 뒤통수 맞게 된 억울함에 울분을 터뜨렸지만, 사직서를 쓰면 모든 일을 없던 것으로 해 주겠다는 인사팀의 제안을 받아들여 자의반 타의반으로 사직서를 썼다. 퇴직 후 A씨는 자신이 평소 오너에게 입바른 소리를 해 온 것이 이번 일이 발생하게 된 직접적인 동기였음을 인사팀 소속 전 직장동료를 통해 뒤늦게 알게 됐다.

#2. 글로벌 외국계 제약회사에서 비등기 전무이사로 근무하고 있는 B씨는 최근 자신의 업무량이 비정상적으로 많아지고 있음을 느끼고 있다. 원래도 B씨는 직장 내에서 업무량이 가장 많은 부서에서 근무를 하고 있지만, 지금의 업무량은 물리적으로 매일 밤을 새도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다.

이러한 사실은 회사에서도 충분히 인지하고 있지만, 회사는 B씨의 업무를 도와 줄 직원을 추가 배치하기는커녕 오히려 B씨가 제 때 업무를 마치지 못하고 있다며 질책성 이메일만 매일같이 보내오고 있다. B씨는 당초 신약개발을 위해 자신을 영입을 했던 회사가 신약개발을 모두 마치자 자신을 내쫓기 위해 이와 같은 일을 벌이고 있는 것은 아닌가하는 의심을 하고 있다.

임원이 해고를 당하는 데에는 반드시 그만한 ‘동기’가 있다.

여기서 말하는 ‘동기’란 표면적으로 드러난 해고의 사유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앞서 살펴본 두 가지 사례와 같이 임원의 해고는 다른 일반근로자의 해고와 달리 ‘표면적인 해고 사유’와 ‘실제 해고에 이르게 된 동기’가 서로 다른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우선 회사가 임원을 해고하게 되는 흔한 동기 중 하나는 비용절감을 위한 ‘토사구팽’이다. 임원은 회사 내에서 상대적으로 많은 급여를 받는 직급인 만큼 회사에 당장 필요 없는 임원은 일단 해고의 대상에 오르기 마련이다. 이는 회사의 필요에 따라 영입된 외부 전문가 출신의 임원도 다르지 않아, 해당 분야의 사업이 종료되어 ‘팽’을 당했다는 이야기는 심심찮게 들을 수 있다.

대기업과 같이 큰 조직에서는 ‘잘못된 줄 서기’ 자체가 해고의 동기가 된다. 드라마의 소재로도 자주 차용되는 대기업 내 권력암투는 실제로도 많은 경우에 있어 임원의 운명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그 밖에 경영악화의 책임을 임원에게 돌려 주주들의 불만을 무마시키는 ‘희생양’전략, 1인 또는 가족기업에서 오너를 향한 직언이 오너의 심기를 건드려 부메랑으로 돌아오게 되는 ‘괘씸죄’도 임원이 해고를 당하게 되는 주요한 동기 중 하나라 할 수 있다.

그러나 해고의 타겟이 된 임원들이 해고를 당하는 사유는 임원이 해고당하게 되는 동기와는 전혀 무관하다.

우리 근로기준법 상 회사가 비등기 임원을 합법적으로 해고시킬 수 있는 사유는 몇 가지로 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 중 징계해고는 회사가 선택할 수 있는 가장 손쉬운 방법 중 하나인데, 앞서 살펴본 첫 번째 사례와 같이 비등기 임원이 소액이라 제대로 회계처리하지 않은 회사 돈을 샅샅이 찾아내어 배임으로 고소한다거나 출퇴근 시간을 엄수하지 않은 것을 근무태도 불량으로 간주하는 등의 대표적인 경우다.

그러나 회사입장에서는 징계의 수위를 결정함에 있어 이 정도의 경미한 이유만으로는 합법적인 해고를 기대할 수 없기에 통상적으로는 직장 내 성추행·성희롱이나 영업비밀 유출 등 좀 더 강력한 사유를 덧붙이는 것이 일반적이다.

특히 최근에는 성범죄, 직장 내 성희롱에 대한 사회적 비난가능성이 높아짐에 따라 회사는 이미 퇴직한 여직원까지 수소문해 혹시 성희롱과 관련한 문제는 없었는지 진술서를 받아내고, 그것이 어렵다면 현직에 남아 있는 직원들의 전언까지 동원해 증거를 만들어낸다.

물론 이같은 노력이 노동위원회, 법원에서도 신빙성을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냐는 별도의 문제지만, 해고당하는 마당에 명예라도 지키겠다는 임원들은 이 단계에서 해고를 받아들이는 경우도 적지 않다.

비등기 임원을 해고하는 또 다른 방법은 업무 저성과를 이유로 한 것이다. 앞서 살펴 본 두 번째 사례가 대표적인 예인데, 사전에 임원의 성과를 평가할 기준을 마련해 놓고 해고 대상이 된 임원으로서는 감당하지도 못할 양의 업무를 부과한 후 마치 해당 임원이 능력부족으로 소기의 성과를 달성하지 못하였다는 이유로 해고하는 방식이다.

물론 이 경우에는 해고대상자에게 다른 기회를 제공해 고용을 유지하려는 노력을 하는 등의 절차도 밟아야 하지만, 이 역시도 형식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인 만큼 일단 회사가 비등기 임원의 해고를 결심한 이상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이 과정에서 회사는 해당 임원에게 사직서를 쓰라고 강요하기도 하고, 지금 사직서를 쓰고 자발적으로 퇴직하면 위로금을 지급하겠다며 대안을 제시하기도 하는데, 회사의 ‘화전양면전술’ 속에서 중심을 잡지 못하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사직서를 써야하나 하는 유혹을 느끼기도 한다.

그러나 임원의 입장에서는 어떤 경우라도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 한다. 호랑이 굴에 들어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는 옛 속담도 있지 않은가.

▲ 조태진 법조전문기자/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