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기업과 공공기관 채용비리로 말이 많다. 갑자기 이곳저곳에서 온갖 말이 들린다. 혹자는 악취가 진동한다며 해당 기관을 질타하고 있다. 공감한다. 그럼에도 이런 질타, 비판은 겉만 보는 일시의 행동일 뿐 공기업과 공기관이 가진 구조적 한계를 외면하는 것이다. 권력자들이 공기업과 공기관을 ‘을’로 보는 ‘갑질’을 멈추지 않는다면 재발할 수 있는 고질임을 왜 모를까?

최근 드러난 공기업 공기관 채용비리를 보면 허탈하기 그지없다. 바늘구멍보다 좋은 취업 문턱을 넘기 위해 돈 없고 힘 없는 아버지 어머니의 자식들의 피땀이 물거품이 되기에 더욱 그렇다.

산업통상자원부 산하 한국가스안전공사는 2015년과 2016년 공채 면접과정에서 “여자는 출산·휴직하니 채용 말라”며 여성지원자를 고의로 탈락시킨 것으로 드러났다. 합격권에 있던 여성 7명의 면접 점수를 조작해 불합격시킨 것으로 밝혀졌다. 특히 면접에 올라온 여성 지원자 11명 전원의 점수를 낮춘 것으로 밝혀졌다. 청주지검 충주지청이 이 문제를 파헤치고 박기동 전 사장을 업무방해와 뇌물수수 혐의로 구속기소하지 않았다면 파묻힐 일이었다.

문제는 가스안전공사의 채용 부정행위는 다른 곳에 비하면 새 발의 피이며 채용비리가 공기관과 공기업 도처에서 벌어졌고 아직도 벌어지고 있다는 의심이 간다는 사실일 것이다. 실제로 산업부 산하로 폐광지역 경제 활성화를 위해 설립된 강원랜드 채용비리를 보면 말이 나오지 않는다. 2012~13년 공채에서 95%가 청탁으로 취직했다고 한다. 국회의원 이름도 나오고 있다.

금융감독원의 채용 비리 소식도 들린다. 감사원 감사 결과 53곳의 공공기관 가운데 39곳에서 100여건의 채용 비리가 드러났다. 도대체 비리가 없는 공기관과 공기업이 어딘지 모를 정도다. 검찰은 채용비리로 의혹을 받고 있는 강원랜드 등 공기업 4곳에 대한 압수수색에 나섰지만 이는 빙산의 일각만 손대는 것이라는 회의도 든다.

그럼에도 감사원과 검찰의 단호한 조치를 환영하고 박수를 보낸다. 이런 일로 국가에 봉사하고 싶어 밤낮으로 공부하는 수많은 힘없는 청춘들이 쏟은 각고의 노력이 이제는 물거품이 되지 않을 수 있다는 위안 때문에 두 기관의 역할에 박수를 보낸다.

동시에 감사원 감사와 검찰 조치에 대해 의구심도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싶다. 공기업과 공기관 채용을 앞두고 정치권이나 권력자들이 청탁을 하는 것을 몰랐다는 말인지 묻고 싶다. 그걸 몰랐다면 직무 태만이요 알고도 견제하지 않았다면 직무유기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채용비리가 어제오늘 일도 아니다. 거의 매년 이쪽저쪽에서 잊을 만하면 터지고 있지 않았는가. 그동안 낙하산으로 내려가 어쩔 수 없이 ‘을’ 위치에 처한 공기업과 공기관 대표가 ‘갑’인 정치인, 권력자의 청을 수도 없이 들어줄 때 왜 사정기관은 철퇴를 가하지 않고 침묵했는가 묻지 않을 수 없다. 시간이 없어서, 인력이 부족해서 등 이유는 많고도 많을 것이다. 청탁을 받은 자를 처벌하면서 청탁한 사람을 처벌했다는 소식을 들어본 적이 거의 없다는 점을 사정기관은 깊이 숙고할 필요가 있다.

이런 공기업과 공기관 채용비리는 우리나라가 경제력에 걸맞은 선진국이 되기 위해서 반드시 뿌리 뽑아야 할 ‘적폐’일 수도 있다. 그런 적폐청산은 하루아침에 이뤄질 수 없다. 일벌백계식의 강도 높은 처벌도 있어야 하겠지만 무엇보다 우리 국민 스스로가 청탁을 하지 않도록 깨끗해져야 한다.

기업 인사담당자 10명 중 4명은 고위층으로부터 청탁을 받고 그중 절반은 실행에 옮겼다는 한 설문조사는 무엇을 말할까? 우리 사회에서 ‘청탁’이 고질 중의 고질로 자리 잡고 있음을 말하지 않는가? 물이 너무 맑으면 물고기가 없다는 말이 통하는 사회라는 것을 말하지 않는가. 일리가 있다. 그럼에도 이번에 드러난 채용비리는 도덕성의 마비, 실업 탈출을 위해 고난의 행군을 하는 우리의 아들 딸의 고통에 대해 가진 자, 갑들의 냉정하고도 잔인한 외면의 생살을 드러냈다고 하다면 지나칠까.

사정당국은 이런 청탁의 고리, 이권카르텔의 구조를 깨고 도덕성과 투명성이 공기관과 공기업에 자리 잡을 수 있도록 해줄 것을 간곡히 당부한다. 그래야만 이번 감사원 조사와 검찰 수사와 압수수색이 새로운 낙하산을 내려 보내기 위한 정지작업, 물갈이의 신호탄이라는 일각의 의혹을 명쾌히 벗어던질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높은 실업률에 허덕이는 청춘들이 허리를 펴고 기댈 수 있는 언덕을 마련해주는 지름길일 것이다. 당신의 아들딸들이 다른 사람들의 청탁으로 탈락의 고배를 마신다면 견딜 수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