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과 북으로 나뉜 한반도는 지리의 통일만 시급한 게 아니다. 거리를 다니는 사람들의 얼굴에는 화가 잔뜩 난 채로 ‘나한테 걸리기만 해봐라’ 하는 인상을 풍기고, 저성장의 늪에 빠진 경제는 탈출구를 찾지 못하고 있다. 돈 있는 사람만 받을 수 있는 것으로 변질된 교육의 기회는 계층 간의 멀어진 격차를 체감하게 한다. 여기다 부모와 자식 세대 간의 갈등은 서로를 한 자리에서 편하게 자신의 의견을 꺼낼 수조차 없게 만든다.

조정훈(45) 아주대 통일연구소 소장은 <이코노믹리뷰>에 “현재 한국이 심각한 단절이라는 위기를 맞고 있으며, 이를 서로 이어가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조 소장을 지난달 26일 서울 시내의 한 카페에서 만나 한반도를 마치 ‘섬’과 같다고 한 이유를 묻고 해결 방법을 들어봤다. 

조정훈 아주대 통일연구소 소장. 출처=<이코노믹리뷰> 노연주 기자

세계 빈곤국 다니면서 가난의 참상 목격

조 소장은 한국을 뒤흔든 외환위기 직후인 1999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그는 하버드대 대학원 케네디스쿨을 거쳐 세계은행에 입사했다. 그는 이 과정에서 단 한 번도 단번에 통과한 적 없었다. 여러 번 도전하며 실패의 쓰디쓴 잔을 마셔야 했다. 

세계은행에 들어가서도 근무지는 편리하고 안락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선진국이 아닌 나이지리아, 코소보, 방글라데시, 팔레스타인, 우즈베키스탄 등 갈등과 분쟁, 가난과 피폐함이 가득한 빈곤국이었다. 열악한 상하수도 시설 때문에 제대로 정수되지 않은 물을 마시고, 때로는 총알이 코앞에서 지나가는 현장을 다니며 온몸으로 현지 사람들의 삶을 함께 살면서 조 소장은 빈곤의 참상을 두 눈으로  똑똑히 봤다.

그는 하버드 재학 시절, 스승인 제프리 삭스 교수에게서 '개발도상국의 삶은 싸구려다(Life in developing country is cheap)'는 말을 듣고 충격을 받았는데 이 말을 현실에서 직접 목격한 뒤로는 그 말에 동의했다.

조 소장은 “가난한 나라의 삶이란 가장 중요한 시기에 해야 할 여러 가지 일들을 놓치게 만듭니다. 가난은 우리가 너무나 당연시하는 것들, 먹고 사는 문제와 삶을 연장하는 행위들을 무너뜨립니다. 또한 사람을 비굴하고 거칠게 만듭니다. 살아남기 위해서 무슨 짓이든 하게 될 수밖에 없는데, 이러한 비참함은 물질적인 것을 넘어서 정신적·사회적 피폐로 이어집니다”라고 피를 토하듯 열변을 쏟아냈다.

방글라데시 정부 재정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자문을 하고, 발칸 반도의 작은 나라 코소보의 독립 과정에 참여하는 등 다양한 국제 개발과 협력 업무로 17년을 보낸 그는 돌연히 한국으로 돌아오기로 결정했다. 정년이 보장되는 풍족한 삶, 자녀를 국제학교에 보낼 수 있는 기회를 뒤로 한 채 귀국을 택한 그는 조국 대한민국에서 가난보다 더욱 충격적인 실상을 마주했다.

조정훈 아주대 통일연구소 소장. 출처=<이코노믹리뷰> 노연주 기자

17년 만에 돌아온 한국은 ‘섬’처럼 단절된 곳

외환위기 이후 20년 만에 한국 땅을 밟았을 때 그는 한국이 더욱 부자가 됐다는 것을 알았다. 부자뿐만 아니라 가난한 사람들의 절대 소득도 늘었으며 먹을거리도 풍부해졌음을 실감했다. 유기농 식품이 성행하는 등 건강까지 신경 쓰는 식문화, 서울과 근교 등에서 쉴 새 없이 다양한 축제가 열리는 게 한국의 모습이었다. 그런데 이런 한국의 모습은 아이러니하게도 조 소장에게는 한국을 떠나오기 전보다 덜 행복하게 보였다. 조 소장은 “무엇보다 미디어에서 ‘저소득층 지역’이라는 말이 거리낌 없이 사용되는 것이 가장 큰 충격이었다”고 털어놨다.

조 소장은 “TV 뉴스에서 서울 강북의 저소득층 지역의 이혼율과 범죄율이 강남의 고소득층 지역보다 높다는 등 계층을 가르는 어휘들을 마구 사용하고 있었다”면서 “이른바 ‘흙수저’와 ‘금수저’로 상징되는 계층에 대한 인식이 극명해지고, 잘사는 사람들은 그들끼리, 못사는 사람들은 그들끼리 모여 사는 것이 당연한 게 되었다”고 비판했다.

이러한 계층 간의 단절 외에도 그가 목격한 단절은 한둘이 아니다. 세대 간의 단절도 심각하다. 조 소장은 이른바 ‘가난을 극복한 기적의 세대’인 부모들과 그 자식 세대의 단절이 크다고 지적했다.

그는 “한 나라의 가난은 40~50년 안에 극복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면서 “가난을 극복한 한국의 기적은 어디서 나온 것일까요? ‘나는 못살지만 자식은 잘살게 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눈물겨운 희생을 한 부모님 세대는 정말 대단한 일을 한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조 소장은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가난 극복을 위해, 자식 세대의 행복을 위해 이렇게까지 희생하는 세대를 보지 못했다”면서 “그런데 전 세계가 감탄을 쏟아내는 이 기적을 정작 자식 세대는 대단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고 꼬집었다.

부모님 세대는 이에 대해 무척 억울해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그는 두 세대가 대립하지 않고 서로 손을 내밀어야 한다고 해법을 제시했다.   

조 소장이 생각하는 다른 단절은 한반도의 남북 간 단절이다. 그는 최근 <섬나라 코리아>라는 책을 출간했는데, 표지 이미지가 아주 독특했다. 그는 책의 앞뒤 면을 하나로 쭉 펼치며 이것이 갈라진 남과 북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흰 바탕의 앞면에는 태극 문양의 파란색 아래쪽이, 뒷면에는 태극 문양의 빨간색 위쪽이 그려져 있고, 주변에는 검은 점이 흩뿌려져 있다. 두 말할 것도 없이 태극 문양은 각각 남과 북을 의미하며 검은 점은 섬을 의미한다. 계층 간, 세대 간, 남북 간 단절된 한국이 마치 섬과 같다는 뜻으로 ‘섬나라’라는 제목을 붙였다.

통일된 조국을 만들려 돌아왔다

그는 현재 아주대학교 국제대학원 교수 겸 통일연구소 소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다른 곳에서 일할 기회는 많았지만 조 소장은 일종의 부채 의식을 갖고 돌아왔다고 말했다. 그는 “내 인생에서 많은 것을 누리며 살아왔으며, 그동안 ‘국가란 무엇인가, 리더란 어떤 사람들인가’를 생각할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면서 “두 딸에게 현재의 한국이라는 사회를 물려주고 싶지 않았고, 내가 한국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찾고 행하고 있는 중”이라고 설명했다.

‘단절이 없는 조국’을 만들 방법에 대해 조 소장은 “분산과 통합”이라고 간단하게 답했다. 이 둘은 상반된 개념으로 보이겠지만, 둘 다 필요한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조 소장은 “분산은 현재 우리 주변의 불균형을 이루고 있는 것들, 예를 들면 한쪽으로 심각하게 집중된 부와 권력 등을 흐트러트려야 한다는 의미”라면서 “소득불균형을 낮춰 부를 분산하고, 기득권층은 스스로 권력을 양보하는 게 필요하다”고 단언했다. 그는 “통합은 우리 사회에 단절되어 흩어져 있는 것들을 한데 모은다는 의미”라면서 “서로 비난과 부정을 멈추고, 양 진영이 공통적으로 인정하고 존중할 수 있는 보편적인 가치로서 통합을 이뤄야 한다”고 강조했다.

통합에 대한 거대한 담론이 형성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보는 조 소장은 “다행히도 그 움직임들이 있다”고 자위했다. 그중 하나가 협동조합이다. 강원도를 비롯한 국내 곳곳에서 많은 사람이 협동조합을 만들고 있고, 성장과 이윤을 부인하지 않으면서도 공동체 생활을 살려내려 시도하는 중이라고 그는 전했다. 사회 통합이라는 주제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서로 네트워크를 만들고 활동하는 것을 보면서 그는 흔들림 없이 통합의 가능성을 확신한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조 소장은 젊은 청년들을 위한 따뜻한 당부를 잊지 않았다. 조 소장은 “청년들이 자기를 위해 열심히 살았으면 한다”면서 “제대로 자기를 위해 사는 사람은, 주변을 포함한 사회가 나아지는 것이 결국 자기를 위한 것임을 알 것이기 때문”이라며 인터뷰를 끝맺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