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여행을 더 멀리까지, 더 빠르게 하고 싶어서 도로를 만들고 철도를 깔고 교량을 건설했다. 자동차, 선박, 비행기를 만들어 산 넘고 바다 건너 하늘을 뚫고 여행을 다닌다. 자동차는 이동의 자유도가 가장 높다는 점에서 가장 편리한 교통수단이다.

자동차가 등장하기 이전엔 마차가 교통수단이었다. 증기기관이 발명되자 기차가 칙칙폭폭 증기를 내품으며 철길을 따라 달리기 시작했다. 전기발전 기술이 발명되자 전기모터로 바퀴를 돌려서 달리는 노면 전차가 등장했다. 노면 전차는 1881년에 베를린에서 처음 상업운전을 했다. 노면 전차가 미국에 처음 설치된 시점은 1887년이고, 서울에는 1898년에 서대문과 청량리 간 단선으로 노선이 개통되었다. 전차는 전력선을 따라 전기가 공급되는 곳에만 이동이 가능하다는 단점이 있다. 이를 극복한 교통수단이 자동차다. 처음엔 증기기관 자동차가 등장했지만 매번 보일러에 불을 지펴 물을 끓이고 여기서 발생한 증기로 엔진을 돌리다 보니 자동차 크기가 크고 반면 힘은 약했다.

내부연소엔진 즉 내연기관을 개발한 시점은 1806년으로 거슬러 올라가지만 열량이 높은 액체연료가 없어서 기술이 사장되었다. 기록에 의하면 휘발유를 내연기관에 처음 적용해본 건 1879년이었다. 하지만 엄청난 폭발소음 때문에 실제로 자동차가 실용화된 건 소음기가 발명된 이후인 1888년이었다. 칼 벤츠(Karl Benz)가 처음으로 상업용 자동차를 생산했는데 이 시점 이후로 지난 130년 동안 내연기관은 교통기관의 핵심 엔진 역할을 했다. 이제 배터리와 임무교대를 시작할 시점에 왔다.

 

자동차 성능은 서비스 기술로

테슬라자동차가 전기차를 처음 생산하던 시점만 해도 전기차는 골프카 정도의 저속 이동차량에 불과했다. 하지만 전기차가 안고 있던 세 가지 문제가 모두 해결되어 버렸다. 먼저 1회 충전에 주행거리가 300~600㎞가 기본이 되었다.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는다. 전기차는 이제 고급 스포츠카처럼 순발력이 높은 고급차로 바뀌고 있다. 100㎞까지 가속시간이 4초 정도에 불과하다. 그리고 충전시간도 30분 정도로 단축되었다. 자동차 업체는 엔진만 만들고 나머지는 모두 하청업체에 위탁해서 생산한다. 이젠 휘발유나 디젤엔진을 만들지 못해도 자동차 업체가 된다. 전기차는 누구나 조립 생산할 수 있다. 부품업체, 소프트웨어 업체 등 기술만 가지고도 자동차 생산이 가능하다. 대표적인 기업이 테슬라 자동차다. 자동차를 만들어본 적이 없던 기업이 전기차를 대표하는 자동차 기업이 되었다. 전기차 제조는 배터리와 전기모터를 핵심기술로 삼는다. 전기전자기술이 핵심이다. 그리고 자동차를 통제하는 컴퓨터 운영체계가 더 중요해졌다. 구동 모터 등 전기장치들을 자동 제어하는 소프트웨어 기술이 자동차 제조의 핵심기술이 되었다. 당연히 전기차는 기계장치가 아니고 컴퓨터 장치이다. 가전제품 판매장에서 사고 팔 수 있는 상품이 되어 버렸다. 자동차의 성능이 주행성능보다 운영체제가 제공하는 서비스의 다양성과 원격진단, OS업그레이드 등 첨단기능이 더 중요해지고 있다.

영국의 진공청소기 업체인 다이슨(Dyson)이 최고급 전기차를 개발 중이라고 발표하자 충격이라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다이슨은 전기차의 핵심 부품인 배터리와 전기모터에 관해서는 오랜 전문업체다. 전기차는 가전제품과 마찬가지 원리로 작동되므로 전기전자 전문기술이 더 중요해졌다. JP 모간(JP Morgan)의 분석에 의하면 내연기관 차량에는 움직이는 부품수가 2000개 정도 들어 있는 반면 전기차에는 평균 20개 정도에 불과하다. 따라서 전기차는 조립도 간단하고 정비요소도 적다. 성능향상을 위한 설계에서 배터리 기술이 다른 부품제조 기술보다 월등히 중요하다. 다이슨이 기존 자동차 업체들에 비해 기술력이 뒤질 이유가 없다. 다이슨은 다른 자동차 업체들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전기 자동차를 만든다고 한다. 지금까지의 자동차 외관과 전혀 다른 모습의 전기차 디자인이 등장할 가능성이 높다. 리튬이온 배터리 대신 폭발 위험이 없고 충전이 빠르고 더 강력한 힘을 가진 고체배터리를 채용한다고 한다. 고체 배터리라면 차체 디자인에 따라 배터리를 배치하는 시도가 가능할 것도 같다.

 

전기차 확산의 전환점을 넘었다

현재 상용 판매 중인 전기차 모델 중에서 고속도로 주행이 가능한 모델은 33종 정도 된다. 개발 중인 모델이 20여종이며 이미 단종된 모델도 40여종이나 된다. 현재 판매 중인 전기차들은 배터리 가격이 높아서 수익성 면에서 기존 자동차에 비해 불리하다. 각국 정부의 보조금 지원 없이는 차량 가격이 높아서 시장 형성이 어렵다. 현재는 운행차량 대수가 전체 자동차 시장의 1%도 채 미치지 못하지만 시장의 성장 속도가 연 60%를 넘고 지수적으로 증가하는 현상을 보이고 있다. 올해 프랑크푸르트 모터쇼에 모인 자동차 업체 대표들은 이구동성으로 자사의 전 모델에 해당하는 전기차를 생산하겠다고 선언하고 있다. 이젠 전기차는 모든 수요 계층에서 원하는 차량으로 시장이 형성되고 있다는 의미다. 각국 정부는 앞으로 내연기관차량을 판매하지 못하도록 행정 규제를 한다고 공표했다. 네덜란드와 노르웨이는 2025년까지 배출가스 차량은 판매금지한다고 한다. 독일, 프랑스, 인도, 그리고 중국까지도 2030년을 한계 시점으로 잡았다. 산유국인 사우디아라비아 석유장관이나 석유생산업체인 로얄더치쉘 대표도 석유수요가 5~10년 안에 정점을 보일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석유 전문가인 우드 매컨지(Wood Mckenzie)는 2035년까지 석유소비량이 10% 정도 줄어들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자동차 산업이 급격한 변화를 겪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올해 프랑크푸르트 모터쇼에선 전시장 전체가 전기차 일색이었다. 메르세데스의 모사인 다임러는 2022년까지 모든 차종의 전기차 모델을 생산한다고 발표했다. 폭스바겐도 2030년까지 전 차종에 대해 전기차종을 함께 제작하겠다고 발표했다. 볼보, 재규어, 랜드로버, 혼다 등도 비슷한 선언을 했다. 모든 차량을 전기차로 생산한다는 표현이 아니고 전기차종을 병행해 생산한다는 의미다. 한편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광산업체인 BHP의 임원인 아노드 발후이젠(Arnoud Balhuizen)은 2017년이 전기차 확산의 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장담한다. 현재는 전 세계에 전기차가 약 100만대에 불과하지만 2035년까지 1억4000만대로 증가할 것을 전망하고 있다. 그 근거로 최근 전기차 붐에 민감한 원자재 금속인 구리 수요가 최근 몇 달 동안 급증하고 가격상승이 가파르게 진행되고 있다고 설명한다. 자동차 업체도 투자에 허겁지겁한다. 다임러가 최근에 알라바마 공장에 10억달러를 투자한다고 하자 엘런 머스크는 ‘0’이 한개 빠졌다고 트윗을 날리고 이에 다임러 측은 100억달러 이상 투자하고 배터리에만 10억달러를 추가로 투자할 것이라고 응수하는 일이 벌어졌다. 그러자 머스크는 자신도 그만큼 투자했노라고 트윗으로 답했다. 이에 폭스바겐 CEO인 마디어스 뮐러(Matthias Mueller)는 프랑크푸르트 모터쇼에서 폭스바겐이 전기차 시장을 선도해야 한다면서 2030년까지 300종의 전기차 모델을 개발하기 위해서 총 840억달러를 투자한다고 공표하고 나섰다.

 

배터리 기술이 자동차의 핵심

폭스바겐 이사회는 이미 전기차 투자일정을 승인했고 테슬라가 건설한 기가팩토리 크기의 배터리 공장을 2025년까지 40개 정도 건설해야 한다고 한다. 폭스바겐이 전기차 제조에 필요한 배터리 공급을 위해 약 600억달러를 투자하게 되는데 이는 향후 몇 년 사이에 배터리 시장을 크게 요동치게 할 물량이다. 전기차가 확산되면 기존 엔진이나 변속기 부품업체들은 일자리가 줄어들고 대신에 배터리 부품업체들의 일자리가 늘어나게 된다. 컨설팅 업체인 알릭스파트너스(AlixPartners)에 따르면 기계부품업의 일자리에 비해 배터리부품업체의 일자리는 40% 정도 적다고 한다. 만약 독일에서 배터리를 공급하지 못한다면 기존 자동차 배터리 시장을 점령하고 있는 중국, 한국, 일본으로 이들 일자리가 넘어 온다.

독일 노조는 독일 내에서 배터리를 조립하길 원하고 있다. 지금까지는 자동차 업체들이 배터리 제조기술을 주도하지 못하고 전문업체에 아우소싱해 왔다. 테슬라는 파나소닉이고 GM은 LG화학, 그리고 다임러는 삼성SDI에 의존하고 있다. 독일 자동차 업체들이 그동안 배터리 생산에 소극적인 이유는 물량도 적고 기술개발 투자비가 많이 드는 어려움 때문이었다. 하지만 앞으론 상황이 바뀔 것 같다. 전기차는 모터 등 부품 수가 적기 때문에 하청업체 작업도 적고 차량 조립도 훨씬 간단하다. 자동차 산업의 일자리가 급격하게 줄어드는 현상을 막을 방법이 없다. 더욱이 배터리 조립시설은 고도로 자동화되므로 노동자가 끼어들 자리가 거의 없다. 결국 부품소재 산업이 강한 독일 중소기업들이 배터리 소재개발에 주력하게 될 것이고 자동차 업체가 자체적으로 배터리 제조시설을 갖추게 될 것 같다. 그렇다면 국내 배터리 제조업체들이 경쟁력을 잃지 않는 방법은 핵심부품 제조기술을 강화하고 지속적으로 기술우위를 유지할 수 있도록 배터리 성능향상에 주력해야만 하는 상황이다.

자동차 산업의 경계가 허물어졌다. 자동차 제조업체를 별도로 구분하기 힘들어졌다. 부품제조는 전문업체에 위탁생산하고 브랜드만 관리하는 방식이 일반화될 것 같다. 기존의 자동차 업체뿐만 아니라 전장부품업체, 자율주행 소프트웨어 업체, 반도체업체, 가전업체들이 차량운영체제를 구축하고 독자적인 모델을 선보일 수 있다. 유명 패션 브랜드로 전기차를 생산해도 이상할 게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