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은 매력적인 아이템이 등장해도 쉽게 길을 열어주지 않습니다. 새로운 것은 적응할 시간이 필요하며, 초기 사업자들은 대부분 자체 인프라를 확대하려 소비자 진입장벽을 낮추는 방식을 고수합니다.

 

그런데 다이슨은 다양한 경쟁자들이 존재하는 상태에서, 아직 전기차 시대가 열리지 않은 상황에서 프리미엄 카드를 빼들었습니다. 지금까지 가전제품 시장에서 이미 시장을 장악한 경쟁자의 제품에 '새로운 사용자 경험'을 추가하는 방식을 보여준 다이슨답지 않은 전략이기도 합니다.

물론 다이슨이 프리미엄 전기차로 시장을 장악하는 시나리오를 그리고 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후발주자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가설이 사실이라고 해도, 역시 다이슨 나비효과는 제한적일 수 있습니다.

전기차에 대한 시대에 따른 정의부터 할 필요가 있습니다. 내연기관 자동차보다 먼저 개발된 전기차는 왜 상용화되지 못했나?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기술이 부족했기 때문에 내연기관에 밀렸다는 답도 가능합니다. 그렇다면, 지금은 왜 전기차 시장이 열리기 시작했을까? 간단합니다. 이제 전기차를 만들고 운용할 수 있는 기술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두개의 이유가 더 붙습니다. 공해문제와 자율주행차.

공해문제는 전기차의 재등장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중국이 세계 최대 전기차 시장이 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전기차의 친환경 패러다임입니다. 다이슨도 마찬가지에요. 다이슨은 지난 1990년 디젤 배기 미립자를 포집할 수 있는 새로운 사이클론 형 필터 프로젝트를 추진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완성차 업계가 관심을 두지 않아 프로젝트는 중단되었습니다. 그리고 다이슨의 전기차가 등장하며 많은 이들은 '공해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다이슨의 집념이 다시 시작됐다'고 말합니다. 이건 공익적 관점도 있겠지만, 공해문제에 민감한 각국 시장에 빠르게 파고들 수 있다는 뜻이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자율주행차가 더 중요한 키워드입니다. 사실 전기차가 친환경 자동차라는 것은 어폐가 있어요. 전기의 생산이 화석연료에 의존하기 때문입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자율주행차라는 키워드에 더 집중할 필요가 있습니다.

전기차와 자율주행차는 찰떡궁합입니다. 당장 테슬라와 구글 등의 자율주행차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자율주행차는 전기차이기 때문입니다. 이유가 뭘까요? 폭스바겐 사태로 불거진 내연기관 자동차 종말론에 이은 전기차의 비전. 바로 부품 숫자입니다.

생각하면 간단한 이유입니다. 전기차는 내연기관 자동차보다 부품수가 최대 50%나 적기 때문에, 자율주행 시스템을 장착하기에 편하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전기차는 모터를 심장으로 사용하기 때문에 전력을 기본으로 하는 ICT 플랫폼 인프라와 잘 연동되기도 합니다.

자율주행차까지 왔다면, 이제 기간 인프라 이야기를 해야 합니다. 테슬라가 대표적입니다. 테슬라는 전기차 회사일까요? 아니면 자율주행차 회사일까요? 모두 정답이지만 테슬라 스스로는 에너지 기업이라고 말합니다. '테슬라 모터스'라는 사명에서 '모터스'를 떼어버린 것을 봐도 잘 알 수 있어요. 테슬라는 아예 '지속 가능한 에너지(sustainable energy)의 미래를 만든다’는 슬로건을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실제 행보도 에너지 기업과 동일합니다. 지난 2015년 5월 테슬라는 미국 캘리포니아에 있는 자사 스튜디오에서 테슬라 에너지(Tesla Energy) 로드맵을 전격적으로 발표했습니다.

최초 가정용 배터리인 파워월(Powerwall)과 기업용 배터리인 파워팩(Powerpack)이 큰 관심을 끌었어요. 특히 가정용 모델인 파워월은 7kWh(3000달러)와 10kWh(3500달러) 2가지 용량으로 출시됐으며 어떤 형태의 집이든 완벽하게 설치할 수 있습니다. 태양전지패널과 파워월만 있으면 전기를 사용할 수 있고 안전장치가 내장되어 별도의 보관장소가 필요 없다는 점도 눈길을 끌어요. 크기는 1300×860×180mm, 무게는 100kg입니다.

▲ 테슬라 파워월. 출처=테슬라

생각해보면 2015년은 테슬라가 종합 에너지 기업으로 부상하기 위해 야심을 드러낸 시기이기도 합니다. IP노믹스의 ‘테슬라, 거품인가? 2015 Edition’에 따르면 지난 2008년부터 2015년까지 테슬라가 등록한 특허 203건 중 무려 135건이 배터리 관련 기술이었기 때문입니다. 충전스테이션 관련 특허 포트폴리오도 있으며 리독스 플로우 전지(Redox Flow Cell)과 압축 공기 전지(Compressed Air Energy Storage)의 진출도 거침없습니다.

태양광 패널 제조업체 솔라시티와 배터리의 기가팩토리의 존재도 눈길을 끕니다. 나아가 현재 호주에서 100 MW/129 MWh 규모의 배터리 저장 장치를 건설하고 있습니다. 테슬라는 테슬라의 총 4가지의 태양광 패널 라인업을 보유하고 있으며 이는 텍스터드(Textured), 스무스(Smooth), 투스칸(Tuscan), 슬레이트(Slate)로 구성됩니다. 투스칸과 슬레이트는 내년부터 공급됩니다.

더욱 의미심장한 포인트는 슈퍼차저입니다. 테슬라의 전기차를 충전하는 장소인 슈퍼차저는 일종의 테슬라 오프라인 거점이기 때문입니다. 슈퍼차저가 있는 곳은 테슬라 생태계 플레이어들이 머무는 오프라인 휴식지이자, 에너지 인프라를 촘촘하게 깔아버리는 핵심입니다. 최근 테슬라는 슈퍼차저에 식당을 차리는 방안도 고민하고 있다는 후문입니다.

마지막으로 전기차, 자율주행차, 에너지 인프라 기업으로 이어지는 로드맵에 참고할 수 있는 플랫폼 사업을 소개하겠습니다. 우버와 같은 온디맨드 카셰어링 업체 등입니다. 카풀, 택시, 화물운송트럭 등 다양한 영역에 자율주행차 기술이 삽입되고 이미 시운전에 돌입하는 곳도 나오고 있습니다. 이들은 완성차 업체보다 더욱 자동차를 정교하게 운용하는 기술을 가지고 있어요.

▲ 테슬라 슈퍼차저. 출처=테슬라

전기차는 핵심이 될 수 없다

전기차와 자율주행차, 에너지 인프라와 ICT 플랫폼 사업은 모두 긴밀하게 연결돼 있습니다. 여기서 완성차 업체가 위력을 발휘할 수 있는 지점은 자율주행차에서 끝입니다. 그 마저도 협력의 파트너에 국한되어 있는 것이 최근의 현황입니다.

다시 다이슨으로 돌아가면, 프리미엄 전기차를 판매하는 입장에서 그들이 총 4단계에 걸친 시장의 흐름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을까요? 구글과 테슬라를 보겠습니다. 전기차 제조 인프라를 기본으로 하고 자율주행차까지 거침없이 진격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태에서 자동차를 하나의 ICT 플랫폼으로 인식하고 더 큰 단위인 에너지 종합기업으로 퀀텀점프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우버와 카풀, O2O 기업들이 온디맨드 플랫폼 사업을 하는 것이 진짜 큰 그림입니다. 이 그림에서, 다이슨이 핵심적인 역할을 할 수 있을까요? 전장사업에 매진하는 수준은 아니지만, 상당히 기초적인 인프라만 구축하고 있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이는 다이슨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또 다이슨이 전기차 시장에 뛰어들면 시장 자체가 빠르게 재편될 수 있을 겁니다. 그러나 지금도 글로벌 ICT 기업의 하청업체가 되기를 주저없이 받아들이는 국내 기업들처럼, 다이슨은 그 이상이 될 수 없습니다.

전기차 시대의 새로운 촉매. 다이슨이 전기차 만든다고 너무 신기하게 생각하지 말자고요. 당연한 순서이고, 그들은 모든 플랫폼 업계의 바닥에 막 고개를 들이밀었을 뿐입니다.

[IT여담은 취재 과정에서 알게 된 소소한 현실, 그리고 생각을 모으고 정리하는 자유로운 코너입니다. 기사로 쓰기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한 번은 곰곰이 생각해 볼 문제를 편안하게 풀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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