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임상시험 신청 건수에서  국내 임상시험수탁기관(CRO)이 외국계 CRO에 크게 뒤처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CRO는 신약을 개발하는 제약사의 임상시험을 대행하는 기관이다. 업체마다 제공하는 서비스의 범위는 매우 다르지만 대체로 임상시험의 설계, 컨설팅, 모니터링, 데이터관리, 허가 등의 업무를 한다는 것은 공통점이다.

▲ 출처=이미지투데이

28일 이코노믹리뷰가 식품의약품안전처의 국내외 CRO의 임상시험 승인 건수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27일 기준으로 임상시험을 허가 받은 해외 CRO는 17곳인 반면 국내 CRO는 단 3곳에 불과했다.

승인 건수도 해외 CRO가 총 155건으로 국내 CRO가 5건을 압도했다. 이는 해외 CRO가 승인받은 승인 건수의 10%도 안 되는 수치다.

CRO 산업은 신약개발 열풍에 올라타며 전 세계에서 뜨거워지고 있다. 미국의 글로벌 컨설팅 업체 프로스트앤설리번(Frost & Sullivan)에 따르면 임상시험수탁산업은 전 세계에서 연평균 10% 이상 급성장하고 있으며 2019년에는 전체 시장 규모가 504억달러(약 58조원)에 육박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 때문에 우리나라도 CRO 산업을 육성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한국은 많은 해외 CRO가 눈독을 들일만큼 석박사 출신의 고급 인재가 많고 국내 대학병원의 임상시험 수준은 세계적으로 인정받는다.

그러나 해외 CRO의 진출이 늘면서 국내 CRO의 입지가 줄어들고 있다. 국내 시장에 진출한 해외 CRO 중 가장 유명한 기업은 퀸타일즈트랜스내셔널코리아다. 미국에 본사를 둔 이 회사는 전 세계 60여개국에 진출해 있으며 업계 매출 1위다. 최근엔 건강관련 데이터 전문회사인 미국 IMS헬스와 합병하면서 퀸타일즈IMS로 사명을 변경했다. 퀸타일즈는 국내에서만 올해 1월부터 9월27일까지 총 23건의 압도적인 승인 건수를 기록했다.

국내 CRO 중에 선전하고 있는 것은 엘에스케이글로벌파마서비스다. 서울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오하이오 대학에서 통계학 석박사를 딴 뒤 미국 국립암연구소에서 통계학을 연구한 이영작 대표가 지난 2000년 설립한 회사다. 이대표는 국내 CRO들을 대표하는 협회인 사단법인 한국임상CRO협회 회장도 4년째 연임하고 있다.

엘에스케이글로벌파마서비스는 4건의 임상시험을 승인받았다. 이는 퀸타일즈(23건)가 받은 승인 건수의 17%에 불과하다. 나머지 국내 CRO도 사이넥스, 씨앤알리서치가 각각 1건을 승인받는 데 그쳤다. 한국임상CRO협회에만 소속된 회원사 수가 12곳인 것을 감안하면 위의 국내 CRO를 제외한 9개 업체는 계약이 거의 전무한 실정인 것이다.

국내 CRO 업체의 임상시험 신청 허가 건수는 왜 이렇게 저조한 것일까. 업계 관계자는 이에 대해 “임상시험 신청을 CRO가 할 때도 있지만 스폰서인 제약사가 임상시험 신청을 한 후 나머지 임상시험수탁업무는 CRO에 맡긴다”면서 “이처럼 제약사가 임상시험을 신청했지만 추후에 CRO에 업무가 넘어간 경우까지 포함하면 국내 CRO의 임상시험 업무 수주 건수는 더 늘어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해외 제약사는 본사부터 이미 해외 CRO와 협력을 맺기 때문에 국내에서도 국내에 진출한 CRO와 업무를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이 관계자의 설명이다. 이 관계자는 “미국 P제약사가 본사에서 Q라는 해외 CRO와 업무를 하기로 했다고 결정하면 국내에 진출한 P제약사 업무담당자들이 국내 CRO와 작업하고 싶어도 그렇게 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 국내외 임상시험수탁기관들의 임상시험 신청 계획 승인 건수(9월27일 기준).출처=식품의약품안전처, 재구성=이코노믹리뷰

작은 국내 제약사도 추후 해외 진출에 유리할 것이라 생각해 파트너로 해외 CRO를 선택한다. 이처럼 해외 CRO에게 임상시험의 알짜 데이터가 넘어가면 국내 임상시험산업을 넘어 신약개발 산업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가 제약업계에서  나오고 있다.

국내 CRO의 한 임원은 “국내 제약사가 해외 CRO에 임상시험 업무를 맡기면 약물감시 자료 등 여러 미가공한 알짜배기 로우데이터(raw data)가 해외 CRO의 본사로 간다”면서 “이 같은 데이터를 국내에 축적해야 국내 제약 산업계가 노하우를 쌓을 수 있고 특히 신생회사가 신약을 개발할 때 참고할 수 있는 자료로 활용할 수 있는데, 해외로 이런 데이터가 가버리니 안타깝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