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자리 있나요?”

낡은 배낭 하나를 짊어진 젊은 남자가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인력사무소의 문을 두드렸다. 나이가 지긋해 보이는 사무실 소장이 그를 맞았다. 어떻게 왔는지 묻기 전에 소장은 “일단 거기 앉아서 대기하세요”라고 말한다. 젊은 남성인 A 씨(25)는 몇 해 전 지방에서 서울로 상경했다. 대학교에 다니기 위해서다.

A 씨가 인력사무소를 찾은 이유는 대학 등록금 때문이 아니다. 생활비와 월세를 마련하기 위해서다. A 씨는 방학 기간에는 아르바이트하면서 생활비를 모았으나, 새 학기가 시작되면서 비정기적으로 돈을 벌 수 있는 일용근로 업무를 주로 찾고 있다.

A 씨는 “학자금 대출로 학비를 마련해 학교에 다니고 있다”면서 “학교에 다니며 생활할 돈이 부족해 인력사무소를 찾았다. 특히 월세가 부담된다. 작은 방에서 잠만 자는데 월 40만원씩 낸다”고 말했다.

 

일당노동직 공급과잉…청년층 가세 원인

부동산 앱 ‘다방’을 운영하는 ‘스테이션3’이 지난 8월 발표한 조사결과에 따르면 서울대 인근 월세는 지난해 37만원에 45만원으로 21.62%나 올랐다. 보증금 역시 지난해 627만원에서 1227만원으로 95.69% 상승했다.

대학생들이 인력사무소에서 일거리를 찾기 시작하면서 난처해진 사람들도 있다. 기존에 인력사무소에서 일용직으로 생계를 이어가는 사람들이다.

건설 일용직 3년 차인 B 씨(41)는 “요즘 일이 없다는 소리에 새벽부터 나온 사람들이 집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일이 허다하다”면서 “특히 여름과 겨울은 최악”이라고 하소연했다.

그는 이어 “최근 현장에서는 중장년층보다 젊은이들을 더욱 선호한다”면서 “가뜩이나 못 배우고 기술도 없는 사람들은 이제 어디로 가야 하는지 막막하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S 인력사무소 소장은 “사실 대학생들이 일을 잘한다. 요령은 없지만 빨리 배우고 죽기 살기로 일하는 애들이 많다”면서 “인력사무소 입장에선 어르신들을 최대한 배려하려 하지만 현장에선 젊은이들을 보내지 않으면 거래를 끊겠다고해서 난처한 처지”라고 말했다.

최근에는 이들 사이에 ‘베이비붐 세대’가 끼기 시작했다. 베이비붐 세대는 전쟁 직후 사회적, 경제적 안정에 따른 높은 출산율로 형성된 세대다. 베이비붐 세대 세대는 한국의 경우 1955~1963년에 출생한 사람들이다.

인력사무소에서 만난 C 씨(58)는 올해 초 건설사에서 퇴직한 두 아이의 아버지다. 그는 주저앉을 여유도 없었다. 두 자식이 모두 대학교에 다니고 있어서다.

퇴직 후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전전긍긍하다 인력사무소를 찾게 된 C 씨는 “퇴직한 친구들이 술자리에서 만나면 너나 할것 없이 앞날을 걱정한다”면서 “해고 압박을 매년 견뎌왔는데 자식들을 위해 돈을 벌 수 있다면 일당직이라도 좋다”며 일용직에 발을 들이게 된 계기를 설명했다.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베이비붐 세대는 725만명으로 전체 인구(4799만명 기준) 대비 15%를 차지한다. 특히 가장 많은 연령대는 1960년생으로 87만명(12.5%)인데, 지난해부터 이들을 중심으로 실업자가 증가해 50대 후반 60대 초반 실업자는 2015년 대비 약 3만6000명 증가했다.

이처럼 은퇴한 베이비붐 세대들 중 일부는 새로운 일자리를 구하는 동안 일용근로를 하면서 생계를 연명하고 있다. 생활비를 벌려고 일용직에 뛰어든 대학생과 기존 일용직 건설노동자들이 서로 대치하고 있는 인력시장에서, 은퇴한 베이비붐 세대가 자녀 양육비를 마련하기 위해 등장한 상황이다. 이들은 저마다 사정이 있는 가운데 일용직 세계에선 일자리를 구하기 위한 ‘진흙탕 싸움’이 펼쳐지고 있다.

▲ OO 전문 일용근로자 모임 카페 게시글

일용직 악순환 생태계 여전… 고용주와 신뢰 회복이 관건
일각에선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일용직에 뛰어드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일용근로자의 ‘근로 태도’에 대한 문제가 더욱 심각해지고 있다고 지적한다.

일용직은 매일 일이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다 보니 당장 내일 할 일들이 없어지면 고뇌에 시달리기 시작한다. 일용근로자들은 근무 일수가 중요하기 때문에 하루에 끝낼 일도 2~3일에 걸쳐 일하는 경우가 더러 있다. 이 때문에 일용근로자들은 사회나 고용자로부터 불신을 받기도 한다. 이런 비판은 예전부터 끊이지 않고 있다.

국내 건설기업에서 근무하는 안 모 씨(37)는 “건설 노동자들이 ‘농땡이’를 피우다가 작업 마감 시간이 길어지는 일은 예전부터 허다했다”면서 “업무 마감 상황을 설명해보지만, 건설 현장은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는 경우가 많아 부상이 우려돼 일용직 노동자에게 서두르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며 불만을 토로했다.

IT 중소기업 대표인 이 모 씨(52)는 “단순 노동 잔업을 할 때는 일용직 근로자를 선호하지 않는다”면서 “일용직 근로자를 찾아 쓸 바에는 차라리 주변 지인이나 가족들에게 임금을 더 주고 일을 해결하는 편”이라고 설명했다.

이러한 문제가 고용주가 제대로 일을 하지 않아 벌어진 일이라는 의견도 있다.

모델 업무를 하는 김 모 씨(29)는 “일반 직장과 비교하면 에이전시(고용업체)는 고용자를 보호해야 할 의무를 제대로 안 하는 경우가 많다”면서 “특히 3.3 소득공제 신고를 제대로 하지 않는 업체들도 많아 일급 받는 입장에서 소득공제 혜택을 받는 데 어려움이 많다. 게다가 일부 업체는 10년 가까이 일당을 동결하고 이마저 몇 달 동안 지급을 미루는 일도 다반사다”라고 비판했다.

‘3.3 소득공제’는 3.3% 원천징수라고도 불린다. 노동자는 4대보험에 가입되지 않은 독립적인 상태에서 용역을 제공하고 급여를 받으면 이 소득을 ‘사업소득’이라고 한다. 이러한 사업소득은 사업소득세로 3%와 사업소득세에 대한 주민세 0.3%의 세금을 고용자가 지불해야 한다. 두 세금을 합쳐 3.3% 원천징수라고 하는 것이다. 이는 프리랜서뿐만 아니라 4대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아르바이트도 포함된다. 노동자가 노동을 대가로 발생한 3.3% 원천징수는 5월 종합소득세 신고로 돌려받을 수 있으나, 고용자가 세금 신고를 제대로 하지 않아 이러한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노동법에서 일용근로자는 1개월 이상 근무하거나, 1개월 동안 8일 이상 근무 시 4대보험에 의무적으로 가입해야 한다. 만약 1년 이상 한 회사와 근로계약을 맺고 일당을 받는 경우에는 퇴직급여도 제공해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혜택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게 일용직 노동자들의 현실이다.

건설 업체에 근무했던 강 모 씨(31)에게 이러한 내용의 질문을 하자 “퇴직금을 지급하지 않기 위해 각종 핑계를 대며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가고 있는 것이 일용직 고용업계에서는 관행처럼 굳어 있다”면서 “특히 건설노동자들은 복잡한 계산법에 크게 신경 쓰지 않고 단순히 일당을 받는 것에 만족하고 있어서 문제다”라고 지적했다.

일용직 노동자 150만시대… 제도보완 나서야

한국노동연구원이 지난 8월 발표한 ‘2017년 국내노동 동향’에 따르면 올 들어 일용근로자는 지난 6월 말 기준 157만7000명을 기록, 지난해 말 146만9000명 대비 10만8000명(7.35%)이 늘었다. 올 들어 매월 2~3만명씩 증가한 셈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일용근로자가 증가하고 있는 가운데 근로자와 고용주 관계 회복이 필수적인 상황이다. 박찬임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일용직 고용시장이 안착하려면 정부는 물론이고 개인과 기업도 각자 분야에서 일찌감치 대비책을 마련하고 철저히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 연구위원은 이어 “특히 개인은 일용근로를 통해 생긴 문제에 대한 정책과 혜택을 명확히 알고 있어야 하며 정부나 기업에만 의존하지 말아야 한다”면서 “고용주는 고용주 의무를 지켜야만 하는 정책 규제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성기정 노무사 사무실 관계자는 이러한 문제를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 “단 1시간을 일하는 노동자라 하더라도 노동법을 숙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일용직 근로자가 임금을 체납하는 고용주를 상대로 체불임금을 받으려면 근로를 했다는 증명이 어렵다. 4대보험과 재직증명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 경우 진정이나 고발을 통해 노동사무소로부터 ‘체불금품확인서’를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 체불금품확인서는 임금이 밀린 근로자가 가장 먼저 확보해야 하는 일종의 임금 미지불 내역서다.

이를 통해 고용노동부에 체불임금 신고가 가능하다. 체납금품확인서를 통해 고용주의 재산을 압류하는 등 민사소송에 대비할 수 있다.

이 관계자는 “일용직 근로자가 임금이 체납되면, 체납금품확인서를 받기 위해 노동부에 진정서를 넣어야 한다”면서 “이 과정에서 일용직이라면 출력일보와 같은 출근 기록을 확인하고 자신의 체납된 임금 여부를 확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근로계약서를 쓰지 않더라도 고용주와 일용근로자의 녹음이나 출근부로 근로관계를 입증할 수 있다면 증거로 활용할 수 있다”면서 “체납금품 확인서를 확보 후 법률구조공단을 이용, 고용주의 재산을 강제집행하는 방법도 고려해볼 수 있다”라고 말했다. 

그는 또 “고용자가 임금을 체납하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노동부가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적극적으로 홍보해 근로자 지식수준을 높이는 것도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정부 역시 일용직 노동시장 구조개선 논의에서 더 강한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배규식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네덜란드 노동시장 구조 개혁의 단초가 된 1982년 바세나르 협약(임금 동결, 노동시간 단축, 시간제 고용확대를 통한 일자리 나누기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노사정 대타협)도 뤼돌퓌스 뤼버르스 총리의 강한 리더십과 정부의 적극적인 역할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