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여름이면 맨해튼의 센트럴파크에서는 영화를 시민들에게 무료로 상영해주곤 하는데 우연히 찾은 공원에서 보게 된 영화가 <토요일 밤의 열기>였다. 한국에서도 개봉되어 큰 인기를 끌었고 70년대 당시 전 세계에 디스코 음악과 춤의 열풍을 불러왔던 영화다.

영화의 주인공인 이탈리아계 이민자의 아들인 토니(존 트라볼타)의 집과 직장이 있는 곳은 서민들이 모여 사는 브루클린이다. 아버지가 몇 달째 실직 중이라서 토니는 동네의 페인트 가게에서 일을 하고 부모님에게 생활비를 드리고 있다.

늘 똑같은 생활의 반복이지만 원대한 꿈도 없고 삶이 크게 바뀔 것이라고 생각지 않는 토니와 친구들의 유일한 희망은 돈을 조금 더 모아서 강 건너 보이는 스태튼 아일랜드의 교외에서 사는 것이다.

토니에게 일상을 탈출하는 유일한 낙은 주말 저녁마다 디스코텍에 가서 춤을 추는 것으로, 뛰어난 춤 솜씨 덕분에 평생 느껴보지 못한 ‘귀빈’ 대접을 받기 때문이다.

영화 속에서 브루클린은 정돈되지 않고 지저분하고 세련되지 못하며 마치 ‘패배자’들이 사는 곳처럼 묘사된다. 토니의 댄스 경연대회 파트너로 등장하는 스테파니는 토니와 식사를 하면서 자신이 일하는 맨해튼에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다른지 침을 튀기며 비교하고 자신은 꼭 맨해튼에서 살 거라고 강조를 한다.

당시 브루클린은 사람들이 살고 싶어 하는 곳이 아니라 탈출하고 싶어 하는 곳이었다. 이탈리아계 미국인인 토니는 이웃의 스페인계 미국인 패거리들과 일종의 영역싸움과 같은 다툼을 벌였다. 토니의 친구가 길거리에서 스페인계 청년들에게 흠씬 뭇매를 맞아 병원에 입원하자 토니의 친구들은 복수를 계획한다.

당시 브루클린에서는 이민자들끼리의 이런 싸움이 흔한 일이었다. 과거 뉴욕시 전체가 현재에 비해서 비교도 할 수 없이 범죄와 사건, 사고가 많았지만 특히 브루클린은 사람들에게 범죄, 갱집단, 방화 등을 연상시키는 곳이었다.

50년대까지만 해도 브루클린은 서민층 주민들이 평화롭게 사는 지역이었으나 50년대 지역 신문이 문을 닫고 야구팀 브루클린 다저스가 LA로 떠나면서 분위기가 확연히 바뀌었다.

2차대전이 끝나고 전 세계 곳곳에서 일과 희망을 찾아 미국으로 옮겨온 빈곤한 이민자들이 브루클린에 자리를 잡았다. 하지만 일자리가 없어지면서 브루클린의 많은 주민들은 정부의 보조에 의존하는 가난한 사람들이 대다수가 되었다.

브루클린의 부시윅(Bushwick) 지역은 70년대 초가 되면서 늘어나는 범죄 등으로 인해서 많은 건물이 빈 채로 방치되고 마약과 방화가 판을 치는 공간이 됐다. 그리고 뉴욕시에서 발생한 1977년 정전은 브루클린 지역을 완전히 황폐화시켰다.

뉴욕시에 전기를 공급하는 발전소에 벼락이 떨어지면서 전력망이 마비되고 전기 공급이 끊겼다. 77년 7월 31일 오후 8시 30분 뉴욕은 암흑 속으로 빠졌고 사람들은 어둠을 틈타 상점들을 약탈하기 시작했다.

부시윅에서만 수십개의 상점이 약탈, 방화에 시달렸고 대로변의 주택들도 방화로 불이 나서 거리는 화재 잔해물이 가득했고 25개 점포는 다음날 아침까지도 여전히 불이 붙어 있었다.

정전 이후 부시윅 지역의 주택들은 50% 가까이 빈 채로 남겨졌다. 황폐하고 파괴된 지역은 범죄의 공간으로 변모했다.

브루클린의 북쪽 지역인 윌리엄스버그와 부시윅은 갱집단의 싸움으로 10대들이 무참히 살해된 이후 ‘킬링필드’라고 불리기도 했다. 이 지역에서는 1990년 한 해에만 무려 77건의 살인과 80건의 성폭행, 2242건의 강도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킬링필드로 불리던 브루클린은 그러나 90년대부터 점차 범죄가 줄어들고 맨해튼의 높은 집값을 감당하지 못한 예술가들이 이동하면서 전혀 다른 곳으로 변모하고 있다. 과거 공장이나 사무실로 사용되던 삭막한 느낌의 건물들이 ‘멋지고 새로운’ 것으로 각광받으면서 브루클린은 완전히 다른 지역으로 변모하고 있다.

가난한 예술가들은 더 이상 집을 구할 수 없는 비싼 지역이 됐고 예술가들의 뒤를 이어 IT종사자들, 그리고 이제는 월스트리트의 돈 많은 은행가들이 모여 사는 장소가 됐다.

과거 맨해튼에서 사는 것을 꿈꿨던 스테파니나 스태튼 아일랜드에 살고 싶어 하던 토니는 지금이었다면 오히려 다른 사람들의 선망이 대상이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