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존 포비아'라는 말이 광범위하게, 그리고 아무런 위화감 없이 사용되는 세상에 살고있다. 전자상거래부터 클라우드를 비롯해 드론과 증강현실, 인공지능에 단말기까지. 버튼형 사물인터넷 주문 기기 대시가 우리를 스키너의 상자로 밀어넣었다면, 종합 ICT 플랫폼 기업을 표방하는 힘있는 행보는 홀푸드 인수라는 대형 거래와 함께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융합하고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말한다. 조만간 아마존의 시대가 올 것이라고. 아니, 이미 아마존의 시대가 왔다고. 사실일까? 사실일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아직 구시대의 왕자들은 포기하지 않고 있다.

▲ 월마트 매장. 출처=픽사베이

월마트, "나 아직 죽지 않았어"

아마존의 놀라운 행보가 거듭될수록 그에 대비되는 비운의 기업이 있다. 바로 전통의 오프라인 유통 강자 월마트다. 국내 IT 매체들이 계속 아마존의 비상과 월마트의 우려를 대비하다보니 일각에서는 '죽기만을 기다리는 공룡'이라는 이미지가 강하다.

이런 의식의 흐름이다. "131년 역사를 자랑하는 미국의 백화점 체인 시어즈가 올해 총 105개 매장을 폐쇄한다고 하네...JC페니는 무사한 줄 알아? 올해 138개 매장의 문을 닫고 온라인에 집중한다고 하네, 야, 월마트는 어떻고. 지난해 미국에서만 154개, 해외에는 총 115개의 매장 문을 닫았어.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줄 알아? 아마존 때문이야. 월마트 이제 어떻하냐"

국내 분위기만 보면 월마트 당장 망할 것 같다.

그러나 현실은 약간 다르다. 지난 7월28일로 끝난 월마트의 올해 회계연도 2분기 매출은 무려 1233억6000만달러. 미국 내 점포 판매는 1.8%가 늘었고 12분기 연속 상승곡선이다. 온라인 판매는 무려 60%나 늘어났다.

월마트가 선방한 배경은 무엇일까. 물론 아픔도 있었다. 1000명의 직원을 해고하고 소위 납품단가 후려치기 등을 불사하는 등 논란의 중심에 서기도 했다. 그러나 일단 월마트는 살아남았다. 그 중간에 뼈 아픈 순간들이 많았지만 월마트는 살아남은 것이다. "어떻게? 아마존이 다 이기는 시대인데 어떻게?" 이런 질문이 나돈다.

먼저 뼈 아픈 순간이 위기를 넘기는 데 일차 동력이 된 게 사실이다. 인건비 줄이고 매장 수 줄인 것은 사실이다. 납품단가 후려치면 당연히 이득을 보는 것은 상식이다. 중요한 것은 두 번째다. '온라인에 기울인 지속적인 관심. 그리고 제트인수로 대표되는 전격적 결단'이다.

월마트가 덩치만 큰 공룡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오프라인만 맹신하는 바보라고 믿는다면 이 역시 오산이다. 온라인에 관심 의외로 많았다. 실제로 월마트는 2014년 2월 더그 맥밀런 최고경영자(CEO)의 지휘아래 디지털 퍼스트 전략을 구사하며 제2의 도약을 꿈꾸기도 했다. 또 취임과 동시에 월마트닷컴의 대대적 업그레이드를 추진하는 한편 옴니채널까지 아우르는 '모든 것을 위한 전략'(everything strategy)을 구사했다. 심지어 처지가 비슷한 대형 유통공룡과 커런트C 동맹군을 꾸리기도 했다. 물론 신통치는 않았지만.

맥밀런이라는 사람을 유심히 지켜볼 필요가 있다. 소위 '알바 신화'를 쓴 사람이기 때문이다. 아칸소대 입학을 압둔 18세의 더그 맥밀런은 우연히 월마트에 알바를 시작했고,1991년 월마트 유통센터에 보조직으로 입사하게 된다. 이후 그는 쭉 월마트에서만 근무하며 소위 월마트 맨이 됐다.

그가 일개 보조직원이던 당시 유명한 일화가 있다. 월마트 창업자인 샘 월튼이 매장을 방문했을 때 알바생이면서도 용감하게 그에게 이의사항을 전달했기 때문이다. 소위 낚시줄 메모라고 불리는 사건이다. 맥밀런은 하늘같은 창업주에게 "K마트 낚시줄이 월마트보다 저렴해요"라는 메모를 건냈고, 이 일을 계기로 샘 월튼은 그를 총애하게 된다. 디테일한 부분까지 자기 일처럼 파악하는 직원. 샘 월튼이 일개 알바이던 더그 맥밀런을 이후 어떻게 생각했는지는 상상에 맡기겠다.

맥밀런은 그런 사람이다. 만만치 않다는 뜻이다. 그리고 만만치 않기 때문에 야심차게 시작한 온라인 퍼스트 전략이 흔들려도 다른 방법을 찾아냈다. 바로 제트닷컴의 인수다.

여기서 제트닷컴 이야기를 하려면 창업주 로크 모어를 알아야 한다. 일명 '아마존이 두려워하는 남자'. 마크 로어는 통계학과 경제학을 전공했지만 그가 사회에서 손댄 것은 의외로 기저귀 사업이었다. 로어는 소위 충성고객 전략을 펼치며 고객들이 소소한 가격차이보다 편리하고 신속한 서비스를 원한다는 것을 깨달았고, 이를 집중 공략해 고객 감동 마케팅까지 전개했다.

이후 로어는 기저귀 닷컴의 모기업인 쿼드시(Quidsi)를 2010년 아마존에 매각했고 2년간 일했다. 아마존을 공부하기에 충분한 시간. 곧장 업무 파악이 끝난 로어는 옛 기저귀 닷컴의 직원들과 함께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생각해낸다. 그것이 바로 2015년 출범한 제트다. 시범 웹사이트 공개 전부터 2억2500만달러의 투자금을 유치한 그는 알리바바의 지원까지 받으며 화려하게 데뷔했다. 결제과정에서 고객을 할인의 즐거움에 매료시키고 박리다매 전술과 연회비 수익구조로 최상의 플랫폼도 잡아갔다. 1년 만에 매출 10억달러를 기록했으며 회원 360만명, 입점업체 1600곳을 확보했다.

그럼에도 아마존과 맞대결을 벌이기는 역시 어려웠다. 당장 자금이 부족했고, 2015년 11월과 12월에 7600만달러 규모의 펀딩에 나서기도 했다. 그래도 부족. 결국 지난해 8월 제트는 월마트에 인수됐다. 덤으로 월마트는 아마존이 제일 두려워한 로어도 손에 넣었다. 결론적으로 아마존은 제트의 인수와 마크 로어의 합류 등으로 조금씩 온라인 플랫폼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다만 월마트의 앞날에는 여전히 고난이 가득하다. 로어까지 합류했지만 월마트의 비전은 여전히 전자상거래 플랫폼 장악에만 집중돼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마존은 종합 ICT 기업으로 발전하며 전자상거래를 일종의 베이스로 깔고 가려는 분위기를 풍긴다. 전략의 그림이 보여주는 사이즈가 다르다는 뜻이다.  맥밀런이라는 걸출한 CEO와 로어의 온라인 플랫폼 노하우가 빛을 발하며 어느 정도 준수한 성적을 보여주고 있으나, 월마트는 더욱 큰 그림을 봐야 한다. 이건 소소한 전자상거래 인수로 커버할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더욱 주목받는 기업이 있다. 바로 코스트코다.

▲ 출처=제트닷컴

코스트코, 가장 가능성 높은 아마존 대항마?

월마트에 인수되기 전 제트의 방식을 꼼꼼히 살펴보자.   제트는 연간 50달러(약 5만3000원)의 연회비를 내면 이용 가능했으며 한 번에 구매하는 물건이 많을수록 높은 할인율을 적용했다. 구매 품목의 수량을 조절할 때마다 아마존 최저가와 비교한 가격을 보여주면서 구매자가 모든 품목을 아마존보다 저렴하게 구매하도록(다량 구매하도록) 유도했다. 또 소비자가 원하면 빠른 배송(2일 이내)을 선택할 수 있으며, 구매자가 배송 시점에 크게 개의치 않는다고 옵션을 설정하면 한 번에 배송할 물량을 최대한 늘려 그로 인해 줄어든 유통비용을 제품 할인에 적용한다. 이러한 방식으로 제트닷컴은 ‘아마존보다 저렴하다’는 특징을 내세워 많은 소비자들을 끌어 모았다. 

어디서 많이 본 방식이 아닌가? 바로 코스트코의 방식이다. 연간 유료 회원제.  현재 코스트코는 미국 3위 유통업체다. 1위는 아마존, 2위는 월마트다.  중요한 점은, 매출이 증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코스트코는 2015년 1162억달러, 2016년 1187억달러로 매출이 계속 증가하고 있다.

비록 코스트코는 1국가 1카드를 고집하며 왠지 음울한 비밀주의가 몰아치는 이미지지만, 코스트코만큼 알짜배기 기업은 없다. 연간 유료 회원제의 마법으로 소비자의 대량 구매를 유도하는 방식먼저 살펴보자. 대량구매와 저렴한 가격, 그리고 본전 생각이 나게 만드는 연간 회원제의 삼위일체는 소비자의 지갑을 무차별적으로 열리게 만드는 비결이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할리우드 배우인 라이언 고슬링은 코스트코 CEO인 크레이그 젤리넥에게 “학대받는 닭의 대량납품을 멈추라”라는 공개서한을 보내기도 했을까.

코스트코는 마진이 낮기 때문에 모자란 수익은 연회비 수입으로 채운다. 지난해 연회비를 납입한 회원만 4760만명에 달한다는 후문이다. 앉아서 돈을 버는 셈이다. 여기에 소품종 다량판매 기조를 바탕으로 플랫폼 전략을 재미있게 짜기도 했다. 월마트가 통상 1개 매장 기준 10만개의 상품을 진열하는 반면, 코스트코는 4000개에 불과하다. 광고비도 잘 쓰지 않는다. 왜? '싸니까 알아서 오세요~' 마인드다. 나아가 직원들에게는 신의 직장이기도 하다. 월급 많고, 혜택 많다.

결국 코스트코는 유료 연간 회원제라는 무기와 소품종 다량생산, 여기에 따른 직원 생산성 강화 등으로 성장을 거듭하는 셈이다. 최근에는 구글 어시스턴트와 협력해 매장에 ICT 인프라를 일부 대입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코스트코는 아마존 포비아에 맞설 수 있을까? 아무도 장담하기 어렵지만 최소한 다른 경쟁자보다 가능성이 있다는 평가다. 재미있는 것은 철저하게 오프라인 전략으로 맞서는 전략이 통한다는 것. 월마트가 온라인 진격을 통해 전자상거래 시장으로 전장을 옮긴다면, 코스트코는 우직할 정도로 오프라인에서 뽑아낼 수 있는 경쟁력을 총동원한다. 그리고 이러한 180도 다른 전략이, 또 업의 본질에 충실한 자세가 역설적으로 아마존과의 대결에 힘을 더하고 있다.

결론은 어떻게 날까? 다양한 가능성이 있지만, 유통 공룡들의 전쟁이 벌어지는 상황에서 다소 신선한 실험 하나를 소개하겠다.

미국 고급 백화점인 노드스톰이 최근 제품이 없는 신규 매장컨셉인‘노트스톤 로컬(NordstromLocal)’을 개장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건 뭘까? 온라인과 매장 쇼핑경험을 동시에 제공하는 하이브리드형 매장이다. 다만 매장에 물건은 없다. 그런데 손님이 와서 온라인으로 물건을 구입하는 구조다. 매장에는 스타일러스가 상주하며, 휴식공간을 제공하기도 한다. 미국 LA의 웨스트헐리우드지역에 위치하며, 84평 크기의 소형매장에 중앙에 고객이 앉아서 쇼핑을 할수있는 공간과 그 주위로 한개의 스타일링룸과 8개의 드레싱룸이 있는 형태다.

▲ 노드스톰의 온라인 전용 매장. 출처=노드스톰

일부 고객을 위한 실험적인 매장이다. 그러나 온라인과 오프라인이 적절하게 균형을 이루는 것이 미래 전자상거래 업체의 청사진이라는 것은 파악할 수 있다. 결국 온라인과 오프라인 둘 다 필요한 셈이다.

고양 스타필드가 단순 쇼핑몰일까? 그곳은 놀이터이자 쇼핑몰이며, 주말여행지다. 온라인과 오프라인, 유흥과 라이프스타일이 공존하는 시대. 결국 아마존이든 월마트든 코스트코든 양쪽의 경험을 적절하게 취사선택해 균형을 잡아야 하는 숙제를 받아들게 됐다. 노드스톰의 실험이 의미있는 이유다.